2009년 09월 04일
케인즈, 맨큐, 스티글리츠, 그리고 정운찬
케인즈, 맨큐, 스티글리츠, 정운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경제학자.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 다음에는? 케인즈주의자. 음. 케인즈가 끼어 있으니 조금 뻘쭘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케인즈주의가 대체 뭐냐라고 물어본다면?


이 때는 대답이 조금 복잡해진다. 케인즈를 이해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를 어떤 이들은 복지국가의 측면에서 읽는다. 아예 케인즈주의복지국가라는 용어도 있다. 테일러주의, 포드주의를 통해 생산성을 혁신하고 이것을 케인즈주의 국가를 통해 분배하는 그런 국가를 말한다. 영국의 사회복지제도는 마르크스의 후예들인 유럽 대륙의 사민당과 별로 관련이 없다. 여기에 J.S 밀 과 같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적자(?) 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의 역할이 있다. 노동자에게, 또 실업자에게 분배가 더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공공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주장은 사민당 없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충분히 사민당이 역할을 하게 만드는 이론적 밑거름이 되어왔다.
그의 따스한 시선은 케인즈의 저작 도처에서 등장한다. 케인즈는 "극한적인 계급투쟁의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부르주아의 편에 서게 되겠지만, 가능하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가난한 계급을 배려하는 것"이필요하다고 정부 지도자들에게 짜증 날 정도로 자주 편지를 보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페이비언들과 친하게 지냈다. 사실 페이비언과 케인지언의 차이가 뭔지 애매하기까지 하다.
요즘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바로 이 마음이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케인즈주의의 측면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거스를수 없는 대세임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혜자들이 소외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실제로 그것을 국제경제정책으로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는 IMF와의 끝없는 투쟁, 그리고 끝내 IBRD 부총재 직에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스티글리츠는 아미타아 센과 더불어 경제학에 따스한 인간애의 시선이 들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몇 안되는 학자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스티글리츠를 존경한다.
또 다른 부류들은 케인즈주의를 국가가 공공사업을 벌림으로써 경기를 진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케인즈주의 하면 대번에 테네시강 개발계획을 떠올리는 부류들이 그들일 것이다. 사실 우리도 교과서에서 상당히 그렇게 배웠다. 또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일반이론"에서도 공급의 감축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촉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공공영역에의 투자를 과감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말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공공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국채를 발행하여 가상의 돈을 시장에 뿌린다는 것이다. 그럼 이 돈은 실물보다 더 많은 상태가 되겠지만, 이것이 소비와 투자심리를 회복하여 경기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즉, 미시적(개별 경제적 행위자)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시적 현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셜 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을 나름 통합해서 하나의 경제학으로 만들었다고 자신한 사무엘슨은 이론들에게 각각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이론은 "화폐는 다만 실물의 시장 가치의 반영일 뿐이다"라는 통화주의적 입장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실물과 완전히 무관하게 놀아나는 화폐의 마력과 경제의 화폐심리적 현상은 이 관점의 케인즈주의를 다시 복권시키고 있다. 본인은 펄펄 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크루그먼이 요즘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자유시장경제의 일반균형이론을 신뢰하지 않는 일단의 경제학자들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은 자동으로 균형을 찾지 못하거나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레고리 맨큐가 바로 이런 입장에서 자신을 케인즈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관점이 아니라 순수 이론적으로 보면 스티글리츠의 이론 역시 시장 행위자의 정보불균등을 이용하여 미시경제학의 자동균형 가정을 비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점은 조금 애매하다. 골수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완전경쟁시장의 자동조절 메카니즘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시장의 불완전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케인즈주의라고 넓게 해석한다면 코즈만 조차 케인즈주의로 분류되는 엉뚱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물론 맨큐는 원래 거시경제학자이니 케인즈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경제학교과서에는 미시적관점만 득실거리고 있으니, 세간에 신자유주의자로 잘못알려져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맨큐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게 대세라고 생각해서 가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시대가 바뀌어 신자유주의자가 폐기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실 나는 케인지언이야." 하고 외치는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걸핏하면 크루그먼의 조롱과 욕을 듣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때 두 명의 세계 최고급 케인지언이 신자유주의의 보루에 진출했다. 백악관에 진출한 맨큐. 세계은행 부총재가 된 스티글리츠. 그 결과 맨큐는 자신이 케인지언임을 일부러 외쳐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의 어두운 면에 조명을 비추어준 그런 그림자를 밝혀내고, 가난한 나라를 대변하여 IMF의 독단과 횡포를 최대한 저지한 그런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마티아 센도 공직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 역시 GDP만을 이용한 생산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선진국을 가려내기 위한 척도에 삶의 질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여 저 유명한 인간개발지수를 만들었다.(참고로 0.900 이상이면 선진국이 되는 지수. 한국은 0.920)
자, 이제 공은 정운찬에게로 넘어왔다. 정운찬은 발언할 기회가 있을때마다 자신을 케인지언이라고 소개했다. 케인즈에 대한 존경심, 애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케인즈주의를 따르는 것일까? 이명박이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찬이 이명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 "시장경제를 믿지만 탈락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해 주는 것"이라는 경제철학은 자뭇 앞에서 소개한 첫번째 케인즈주의와 맥이 닿는다. 실제로 정운찬은 고려대학교 본부 점거 농성자들이 줄줄이 출교, 퇴학 처분을 받을때, 무려 20일이나 본부를 점거했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경징계를 내린 바도 있다( 2005년 기사 참조). 겨우 두명만, 그것도 수위에게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무기정학을 당했을 뿐이었다. 당시 보직교수였던 나의 은사님을 통해 들은 정운찬 총장의 반응은 "아, 요즘, 애들이 들어와 있어서 총장실을 못써. 한 보름 지났으니 잘 얘기 해서 내보내야지. 하하하. 이거 나중에 청소하려면 큰일인걸?" 이 정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불과 3년전 이기준 총장 시절에는 수십명이 중징계를 먹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정운찬의 이미지는 탈권위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온정적인 경제학자였다. 그것은 명백히 페이비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영국에서 페이비언이 보수당 총리를 맡은 경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이명박의 말에 넘어간건지, 자리가 탐이 난건지, 아니면 무엇이가 해 보기 위해서 그가 이명박을 속인 것인지... 답은 셋 중 하나겠지..... 그런데 벌써 그의 말이 바뀐다( http://hantoma.hani.co.kr/newstoron/view.html?uid=327852 ")
분명 이 정부의 경제팀은 경제 철학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철학이 마음에 들어서 입각한다고 한다. 없던 철학이 반년만에 생겼단 말인가? 아니면 이명박은 경제철학이 있는데 장관들이 바보같이 그걸 못 알아먹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철학없다고 욕먹은 강만수를 경제특보로 떡하니 앉힌 이명박은 대체 뭔가? 게다가 "경쟁"을 신뢰하면서 "패배자"를 배려한다고 하였다. 어느새 케인즈의 "시장"이라는 말이 경쟁으로 슬그머니 변신했다. 케인즈는 시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중 하나가 바로 경쟁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왜 경쟁하는가? 경쟁이 없어지는 상황, 즉 독점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이 없는 시장, 블루오션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항상 초과공급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하여간 긴 말하기 귀찮다.
정운찬은 케인즈주의자일 뿐 아니라, 케인즈를 존경한다고까지 헀다. 그렇다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케인즈가 당시 세계 주요 국가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고, 만나서 설득하려 했는지 아마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입각했으니 이제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터전을 닦는 일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그가 자기 말에 책임을 다 한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가 거저 주어지나? 부자감세와 복지국가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설마 그가 그걸 몰랐을까? 그건 아니겠지... 어쨌든 정운찬에게는 스티글리츠의 길과 맨큐의 길이 남았다. 선택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 피해는 온 백성이 같이 본다. 깊이 통찰하기 바란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이 때는 대답이 조금 복잡해진다. 케인즈를 이해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케인즈주의를 어떤 이들은 복지국가의 측면에서 읽는다. 아예 케인즈주의복지국가라는 용어도 있다. 테일러주의, 포드주의를 통해 생산성을 혁신하고 이것을 케인즈주의 국가를 통해 분배하는 그런 국가를 말한다. 영국의 사회복지제도는 마르크스의 후예들인 유럽 대륙의 사민당과 별로 관련이 없다. 여기에 J.S 밀 과 같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적자(?) 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의 역할이 있다. 노동자에게, 또 실업자에게 분배가 더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공공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주장은 사민당 없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충분히 사민당이 역할을 하게 만드는 이론적 밑거름이 되어왔다.
그의 따스한 시선은 케인즈의 저작 도처에서 등장한다. 케인즈는 "극한적인 계급투쟁의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부르주아의 편에 서게 되겠지만, 가능하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가난한 계급을 배려하는 것"이필요하다고 정부 지도자들에게 짜증 날 정도로 자주 편지를 보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페이비언들과 친하게 지냈다. 사실 페이비언과 케인지언의 차이가 뭔지 애매하기까지 하다.
요즘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바로 이 마음이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케인즈주의의 측면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거스를수 없는 대세임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혜자들이 소외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실제로 그것을 국제경제정책으로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는 IMF와의 끝없는 투쟁, 그리고 끝내 IBRD 부총재 직에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스티글리츠는 아미타아 센과 더불어 경제학에 따스한 인간애의 시선이 들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몇 안되는 학자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스티글리츠를 존경한다.
또 다른 부류들은 케인즈주의를 국가가 공공사업을 벌림으로써 경기를 진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케인즈주의 하면 대번에 테네시강 개발계획을 떠올리는 부류들이 그들일 것이다. 사실 우리도 교과서에서 상당히 그렇게 배웠다. 또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일반이론"에서도 공급의 감축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촉효과가 일어나지 않는 공공영역에의 투자를 과감하게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말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공공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국채를 발행하여 가상의 돈을 시장에 뿌린다는 것이다. 그럼 이 돈은 실물보다 더 많은 상태가 되겠지만, 이것이 소비와 투자심리를 회복하여 경기 상승을 견인할 것이다. 즉, 미시적(개별 경제적 행위자)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시적 현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셜 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을 나름 통합해서 하나의 경제학으로 만들었다고 자신한 사무엘슨은 이론들에게 각각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이론은 "화폐는 다만 실물의 시장 가치의 반영일 뿐이다"라는 통화주의적 입장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실물과 완전히 무관하게 놀아나는 화폐의 마력과 경제의 화폐심리적 현상은 이 관점의 케인즈주의를 다시 복권시키고 있다. 본인은 펄펄 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크루그먼이 요즘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자유시장경제의 일반균형이론을 신뢰하지 않는 일단의 경제학자들도 자신들을 케인즈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은 자동으로 균형을 찾지 못하거나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레고리 맨큐가 바로 이런 입장에서 자신을 케인즈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관점이 아니라 순수 이론적으로 보면 스티글리츠의 이론 역시 시장 행위자의 정보불균등을 이용하여 미시경제학의 자동균형 가정을 비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점은 조금 애매하다. 골수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완전경쟁시장의 자동조절 메카니즘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시장의 불완전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케인즈주의라고 넓게 해석한다면 코즈만 조차 케인즈주의로 분류되는 엉뚱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물론 맨큐는 원래 거시경제학자이니 케인즈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경제학교과서에는 미시적관점만 득실거리고 있으니, 세간에 신자유주의자로 잘못알려져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맨큐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게 대세라고 생각해서 가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시대가 바뀌어 신자유주의자가 폐기되기 시작하자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실 나는 케인지언이야." 하고 외치는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걸핏하면 크루그먼의 조롱과 욕을 듣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때 두 명의 세계 최고급 케인지언이 신자유주의의 보루에 진출했다. 백악관에 진출한 맨큐. 세계은행 부총재가 된 스티글리츠. 그 결과 맨큐는 자신이 케인지언임을 일부러 외쳐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의 어두운 면에 조명을 비추어준 그런 그림자를 밝혀내고, 가난한 나라를 대변하여 IMF의 독단과 횡포를 최대한 저지한 그런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마티아 센도 공직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 역시 GDP만을 이용한 생산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선진국을 가려내기 위한 척도에 삶의 질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여 저 유명한 인간개발지수를 만들었다.(참고로 0.900 이상이면 선진국이 되는 지수. 한국은 0.920)
자, 이제 공은 정운찬에게로 넘어왔다. 정운찬은 발언할 기회가 있을때마다 자신을 케인지언이라고 소개했다. 케인즈에 대한 존경심, 애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케인즈주의를 따르는 것일까? 이명박이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운찬이 이명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 "시장경제를 믿지만 탈락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해 주는 것"이라는 경제철학은 자뭇 앞에서 소개한 첫번째 케인즈주의와 맥이 닿는다. 실제로 정운찬은 고려대학교 본부 점거 농성자들이 줄줄이 출교, 퇴학 처분을 받을때, 무려 20일이나 본부를 점거했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경징계를 내린 바도 있다( 2005년 기사 참조). 겨우 두명만, 그것도 수위에게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무기정학을 당했을 뿐이었다. 당시 보직교수였던 나의 은사님을 통해 들은 정운찬 총장의 반응은 "아, 요즘, 애들이 들어와 있어서 총장실을 못써. 한 보름 지났으니 잘 얘기 해서 내보내야지. 하하하. 이거 나중에 청소하려면 큰일인걸?" 이 정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불과 3년전 이기준 총장 시절에는 수십명이 중징계를 먹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정운찬의 이미지는 탈권위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온정적인 경제학자였다. 그것은 명백히 페이비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영국에서 페이비언이 보수당 총리를 맡은 경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이명박의 말에 넘어간건지, 자리가 탐이 난건지, 아니면 무엇이가 해 보기 위해서 그가 이명박을 속인 것인지... 답은 셋 중 하나겠지..... 그런데 벌써 그의 말이 바뀐다( http://hantoma.hani.co.kr/newstoron/view.html?uid=327852 ")
분명 이 정부의 경제팀은 경제 철학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철학이 마음에 들어서 입각한다고 한다. 없던 철학이 반년만에 생겼단 말인가? 아니면 이명박은 경제철학이 있는데 장관들이 바보같이 그걸 못 알아먹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철학없다고 욕먹은 강만수를 경제특보로 떡하니 앉힌 이명박은 대체 뭔가? 게다가 "경쟁"을 신뢰하면서 "패배자"를 배려한다고 하였다. 어느새 케인즈의 "시장"이라는 말이 경쟁으로 슬그머니 변신했다. 케인즈는 시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중 하나가 바로 경쟁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왜 경쟁하는가? 경쟁이 없어지는 상황, 즉 독점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이 없는 시장, 블루오션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항상 초과공급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하여간 긴 말하기 귀찮다.
정운찬은 케인즈주의자일 뿐 아니라, 케인즈를 존경한다고까지 헀다. 그렇다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케인즈가 당시 세계 주요 국가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고, 만나서 설득하려 했는지 아마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입각했으니 이제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터전을 닦는 일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그가 자기 말에 책임을 다 한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가 거저 주어지나? 부자감세와 복지국가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는 것이다. 설마 그가 그걸 몰랐을까? 그건 아니겠지... 어쨌든 정운찬에게는 스티글리츠의 길과 맨큐의 길이 남았다. 선택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 피해는 온 백성이 같이 본다. 깊이 통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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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새로운 내용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복지에 대한 그의 입장은 복지국가의 건설은 아닙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소득분배 악화와 대량 실업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사회보장지출을 확대하는 것 정도가 그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
재벌 개혁도 한국 경제에 건전한 경쟁 원리(혹은 시장 내부의 건전한 게임의 룰 )를 도입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고요.
정운찬은 미국 혹은 한국식 리버럴, 잘 봐줘도 사회자유주의자 정도며, 사회민주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운찬의 변신이 자신의 경제철학과 이념까지도 바꾸는 반지성적인
모습처럼 보이는군요, 님의 말씀처럼 지켜봐야 겠네요;;
위키백과의 자료에 따르면 맨큐는 경제(학)에 대한 케인즈주의적인 거시접근을 주로 하되, 미시경제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고 DSGE(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이라는 독특한 거시경제 균형모델을 사용한다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정운찬 총리내정자의 청와대 진출 속내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더 나아가 그를 통해 최장집 교수 등을 비난하는 데에 집중하는 몇 가지 분석에 휘둘리기보다 지금은 꾸준히 관찰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정부 내에서 총리로서의 역할(대통령과 각 부서 간 조율)을 해나갈지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뭐 정운찬교수님이 들어가신게 이상할건 없지만요 '3')
이 글과는 달리 제 생각엔 정운찬씨의 기본적인 노선과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엘리티즘적인 성향을 간간히 드러내던 사람이었으니, 크게 이상할 건 없어보입니다.
다만 실질적인 능력보다는 행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대신 지는 위치가 강한 국무총리직이니 만큼
크게 운신을 할 폭은 없어 보입니다만...
파파라치// 크루그먼이 케인즈를 복권시킨다는 말에 펄펄 뛸거라는 게 아니라, 공공지출에만 관심을 가지는 케인지언이라는 말에 펄펄 뛸거라는 겁니다. 자신을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케이지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알바트로스/ 김대중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정보화기반 공공지출로 유효수효를 창출하려 했죠. 노무현은 도리어 거품을 빼기 위해 경제죽는다는 말에도 꿋꿋하게 인위적 부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대적인 땅파기야말로 이명박표라고 할 수 있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인줄 알았어요..
기본적으로 멘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훗 그럴거같았다' 했는데 요새 보면 상당히 비굴할정도로 말바꾸기 신공까지 시전하려고 하던;;;
정씨는 한마디로 말해 기회주의자라고 볼수 없는..
정말 학자로서 소신이 이었다면, 이념도 없는 정권의 총리 자리를 맏지는 않았을듯.
1. 나름대로의 공리계(그게 외부에서 어떻게 까이던 간에)를 세우고 그 위에서 공통된 방법론으로 이론을 만들고 피어리뷰를 하는 (최소한 주류)경제학자들 내에서 정치적 신념에 기반해서 경제학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2. 그렇기 때문에 "맨큐는 케인즈주의자인가?" "크루그먼은?"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자인가?" 등이 의미있는 질문이 아닌 것 같네요. 그 유명하시고 노벨상도 타신 갱제학자 아무개씨가 이런이런주의자다! 라는건 크루그먼 말마따나 경제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책기획자들의 영역 아닌가요. 더군다나 곡학아세의 자유는 무한정 주어지지만 피어리뷰의 메스를 들이대는 일이 없는 정책기획(아니면 이념논쟁이건 키배건 그 뭐건간에)자들이 누굴 끌어와서 쓰건 간에 의미가 없다고 보는지라..
3. 글에서 언급된 경제학자들 중에서 크루그먼 말고 "정책기획"에 끼어들어서 배틀을 벌이는 사람은 없는 거 같습니다. 물론 그런 맨큐니 스티글리츠니 하는 사람들이 다른 묵묵히 닥치고 연구나 하는 경제학자(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에 비하면 활발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맨큐가 진짜 케인즈주의자인가? 얘 교과서 쓴거 보면 신자유주의 수구꼴통 같은데? 하면서 이념검증 하겠다는건 무의미해 보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맨큐가 알고보니 신자유주의자라면 "역시나 자본가들의 제국주의적 수탈을 정당화하는 주류 경제학계는.." 하면서 드립을 칠수 있고 케인즈주의라면 "역시나 수구꼴통들은 <맨큐의 경제학>도 못 읽어본 무식한 놈들.." 하면서 드립을 칠 수 있지 않나요?
4. 누가 우리 주의인지 니네 주의인지 편 가르는것과 별개로 '누가 케인즈주의인지' 검증하는것 역시 무의미해 보입니다. 뭐 케인즈가 이미 무덤에 들어간지 오래되어서, 외부에서 생각하는만큼 고전->케인즈->신고전 등등의 구분이 명확한것도 아니고 그런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제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서 과거의 이론들이 폐기된것도 아니여서 등등 이유야 많이 댈 수 있습니다만.. 가장 큰건 위의 리플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누가누가케인즈주의자인지 따지다 보면 결국 케인즈주의와는 별개로 이명박-케인즈주의, 정운찬-케인즈주의, 맨큐-케인즈주의 등등.. 키배할때만 좋은 자의적 구분으로 끝나게 마련이기 때문이죠. (다행히 여긴 키배가 없어서 좋네요..)
5. 마지막으로 정운찬 이야기를 해 보자면.. 정운찬은 이론가지고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실험하는 학자도 아니고 티칭교수에 가깝고 티칭교수에 가까운 것보다 훨~씬 더 폴리페서에 가까운 사람 아닌가요? 정운찬이 케인즈주의자면 강만수 장관님도 케인즈주의자고 격동의 시기에 고려대 상과 나오신 이명박 각카도 충분히 케인주의자 같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기대하거나 실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뭐가 달라지기나 한대?' 하는 반응입니다만..
6. 위에위에 맨큐 까는 리플이 있어서 좀 적어보자면.. 스티글리츠 선생은 로렌스 서머스나 팀 가이스너 같은 애들 등쌀에 밀려서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감투 하나 못 쓰시는 처지가 됬습니다. 학자들이 감투를 못 쓰는건 "정책기획활동" 때문에 꼬리가 잡혀서 못 쓰는거 같진 않네요..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는 정치신념이라기 보다는 경제관 아닌가요? 케인즈주의는 경제발전을 유효수요의 진작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고, 신자유주의는 경제발전을 시장원리를 존중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고...둘 다 '경제 발전'이라는 경제적 목적에 어떤 수단이 효과적인지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경제학자를 경제적 입장에 따라 나눈 것에 불과한 것 같은데....
경제학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가 경제학에는 비전이 있다는 것, 즉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자신의 경제 비전이 깔려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케인즈주의라고 이야기할때는 바로 그 지점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면만을 본다면 토목공사하면 다 케인즈주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