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머리말 (1)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머리말

그다지 품위 있는 말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할 때 “시쳇말 한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의 16년 교사 경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저는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는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 이 말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리고 어떤 충고나 지침, 그리고 도움 없이무작정 어떤 과업이나 책무를 감당해야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아무런 도움과 준비 없이 발령과 동시에 무작정교실에 투입되었고, 어떤 사전 지식도 기술의 전수도 없이 그냥 무작정 학생과 부대끼면서 닥치는 대로 교육이라 불리는 행위를해왔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교육을 했다기 보다는 16년 동안 교실에서 그냥 허우적거렸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가르치기나 하긴 했는지 의심스럽고, 또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저를 잘 아는 동료교사들이나 제자들에게 이런 말은 필경 환상을 깨뜨리는 그런 말이 될 겁니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저는 나름 꽤능력있는 교사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허우적거리면서 맨땅에 헤딩했다니! 혹은 이 말은 저를 잘 모르는일반인들에게는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가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한 해에 수백 명의 청소년들에게 어쩌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영향을 끼치는 교사가 아무런 준비도, 지침도, 조언도 없이 무작정 닥치는 대로 교실에서 허우적거리며 다녔다니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걸 의사에게 적용시켜보면 됩니다. 만약 처음 병원에 부임하는 의사가 아무런 지침도 없이, 선배들의 조언이나 도움도 없이, 바로 단독으로 환자와 대면해서 각종 치료나 심지어는 수술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방치했을까요? 아마 당장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의사가 16년 동안 그렇게 의사생활을 해 왔다고 고백한다면? 아마 병원장부터 의대학장, 보건장관까지 이어지는 큰 파문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사들은 의대 6년으로도 모자라서 다시 5년의 고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단독으로 환자를상대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의사들에게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직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방금 자격증을 획득한 신출내기 기사가 대뜸 혼자 달려드는 그런 정비소에 자동차를 맡기지 않습니다. 그 어느 직종에서도 소정의 교육을 마쳤고 약간의 실습과 자격고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불쑥 실무를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실무를 맡은 뒤 그 분야 선배들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선배들과 같은 종류의 업무를 대뜸 들이대는 경우도 없습니다. 어느 직종에서나 신참자는 베테랑의 인도를 받아 업무에 친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유독 교사는, 그렇게 중요하고 고결한 직업이니 “노동자”를 자처해서도 안 된다는 충고까지 듣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소위 백년지 대계를 다룬다는, 그리고 적어도 통계청 직업분류표 상에는 ‘전문직’이라고 명기된 교사는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자마자 베테랑 교사와 동등한 책임, 자격, 권한을 가지고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교실에 던져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발령장 들고 학교에 찾아가서 착임계 쓰고, 그날 오후부터 바로 수업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병원이나 자동차 정비소에 비유해보니 이건 정말 아찔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물론 그것이 선생님을 워낙 존중하는 유교적 전통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을 워낙 존중하다보니 일단 선생님의 자격을 얻은이상 혼자서 충분히 교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바로 교실에 베테랑 등과 동등한 자격으로 투입한다고 좋게 볼 수도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에서 교사에 대한 존중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곳곳에 교사에 대한 멸시와 모욕의 장치가 도사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규교사를 곧장 투입하는 것도 그러한 멸시와 모욕의장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신규교사를 교실에 곧장 투입한다고 해서 베테랑교사의 혹은 교감, 교장의 조언과 관여가 전혀 없는 것은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교실 수업에 대해서만 선배, 교감, 교장의 조언과 관여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정작 교실에서는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내던져 두고는 엉뚱하게 각종 공문서를 작성하고,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그 외 교실 청소, 질서지도,학생 복장 지도 따위에 대해서는 거의 잔소리라고 할 만큼 소위 조언과 관여가 빈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실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찌 풀어가야 하며, 예상되는 곤란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도리어 연구수업, 공개수업, 시범수업 등의 행사라도 있으면 젊은 저에게 미루었습니다. 그들의논리는 “대학 졸업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아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나한테는 매우해괴하게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대학 때 배운 것에서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은 채 세월이 갈수록 점점 까먹어가는 존재란말입니까? 그런데 처음 교사가 된 1992년에 제 눈에 비친 선배교사들은 실제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수업따위’는 대충 진도만 맞추고,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더욱 무성의하게 그리고 형편없이 하고, 그 대신 공문서 처리, 청소 감독,혹은 자습시간에 조용히 시키기, 운동장 행사 때 줄 잘 세우기 따위의 ‘거룩한 일’에 전념해야 교장, 교감에게 높은 평가를받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교장은 저의 수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교실 상호작용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사 관심이 있었다 해도 저를 지원해줄 지적, 정신적 자원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명색이 한국 최고의 교원양성기관 출신이라는 서울사대 출신 교장인데도그랬습니다. 교장의 관심사는 교육청이 기한을 정한 공문서를 제 때 처리하는지, 혹은 전교조라도 가입하지 않았는지(당시에는 전교조에가입하는 것이 불법이던 시절이었습니다.)따위에나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때로 그들이 교실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기도 했는데,유감스럽게도 그들의 교실 수업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 소란/조용 척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교사란 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습니다.

교사에 대한 표면적인 수사와 실상은 너무 달랐습니다. 표면적으로야 백년지 대계를 책임지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수다스럽게 떠들었지만, 실상은 말단 행정직 노릇과 학생들에 대한 간수 노릇만 잘 하면 되는 그런 자리였던 것입니다. 말로는 입시교육이 아이들을 멍들게 하네 어쩌네 하지만(요즘은 아주 뻔뻔해져서 입시교육을 대 놓고 주장하는 판이니 더 말할 것도없습니다만), 정작 입시교육을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존재가 교사였습니다. 말로는 창의적 지식인, 전문직 어쩌고 했지만 실상은 늘하던 것, 늘 있던 것만 반복 수행해야 인정받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이만 먹고 호방만 올라가면 그게 베테랑교사였고, 행정, 경영 분야의 진짜 전문가가 보면 아마츄어 수준에 불과한 거짓 공문, 거짓 보고서나 잘 작성하면 그게 유능한교사였습니다. 젊은 신임교사가 수업을 더 잘하고 학생들의 호응을 독차지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나도 젊을 때는 그랬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소위 선배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선배교사들은 도대체교사로서 나이 먹어가는 것, 그렇게 교사로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도 가치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이 들더라도 절대 저런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중에 후배 교사들에게 베테랑으로서 많은 지원, 격려, 조언을 주고, 절대 맨땅에 헤딩하지 않게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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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8/22 16:28 |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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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8/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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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8/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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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8/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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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8/2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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