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02일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죠...

그러다가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기 위해 저 시디들을 야금야금 엠피스리 파일로 압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작업을 거의 마쳤을때, 그만 허무해 지고 말았습니다. 저 시디 무더기가 바로 아래 사진에 있는 책 한권보다 훨씬 작은 외장하드 하나에 쏙 들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 그러고도 저장 공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절친한 사람이 자기 아들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기에 저 하드를 복사 시켜 주었는데, 30분 걸렸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 사망한지 꽤 되기 때문에 저작권 무관합니다. 아, 물론 연주자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적용되지만, 나는 엠피스리로 옮기면서 어떤 연주자가 녹음한 몇년도 판인지 따위의 정보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으니까요. 또 발터 벤야민의 "수집가 푹스씨"라는 글을 읽고서 "몇년에 나온 누구의 몇번째 판"어쩌고 하면서 수집하는 것이 자본주의 물신숭배에 포획되는 첩경임을 깨닫고 집어치웠습니다. 음악은 그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죠. 그게 희귀한 연주인지 아닌지 알게 뭡니까?
어쨌든 한 음악 매니아가 수십년에 걸쳐 수집한 시디들이 단 삼십분만에 공유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푹스씨의 수집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 귀한 것을 공유할 마음이 없었겠죠. 하지만 막상 해 보니 이토록 쉬운 일이라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즉, 지식정보재는 실물자산과 달리 애시당초 배타적인 소유가 불가능한 공유재인 것입니다. 지식정보화와 자본주의가 모순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문득, 저 음반들이 달랑 저 하드 하나로 압축되는 세상에서 교사란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금의 교육문제의 근원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훌륭한 지식을 가진 선생님을 전국의 모든 학생이 공유하는 게 당연한게 아닐까요? 그게 꼭 우리학교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사든 서로 특출난 부분이 다를테니 결국 각 선생님들의 가장 좋은 면을 널리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이상적인 교사망(?)을 만들 수 있는게 아닐까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구획을 나누어 놓은 학교라는 틀은 저 시디장에 시디 꽂아놓고 나 혼자 듣던 시절에나 통하는 교육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비유하자면 엠피스리 파일이 주지 못하고 실제 공연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겠죠? 그것은 한 공간에서 같은 주제에 대해 흥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그 생생함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 학교는 어쩌면 팬들이 어떤 사람들이 오거나 관계없이 시간표에 따라 록 팬들 앞에서 클래식을 연주하고, 클래식 팬들 앞에서 메탈을 연주하는 공연장이 아닐까요?
여러가지로 복잡합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할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또 주어야 하는 존재일까요?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 by | 2009/08/02 22:35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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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학교에 대한 단상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죠... - 부정변증법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포스팅 안 하겠다고 해놓고 금방 하는군요;;; 이제 D-96인데(...) 교사란 어떤 사람이고 학교는 어떤 공간인가... 교사라면 누구나 생각해볼 문제일 거예요. 저도 예비교사인 만큼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만약 학생이 좋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가지고 있고 훌륭한 강사의 인강 파일을 갖고 있다면?" 그렇다면 학교와 교사의 존재 이유란 무엇......more
문제는 '소통'이라는 문제로 나아갈 때가 아닐까요.
그나저나.. 저는 교무실 책상 한 학기 내내 정리해야지..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어서 정리해야 되겠어요.
책상 위에 있는 잡동사니들도 하드에 들어가버려랏!
제기해주신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돌아오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위에 소통이라고 표현해주신 분도 계시지만, 자라나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관심과 반응이이겠지요. 산수 교과서는 지식이지만 산수문제를 풀고 칭찬을 받은 것은 경험이 되어서, 아이의 더 큰 부분을 만들테니까요.
종종 들려 지식 나누어 가도 될 런지요.
-5.25인치 디스크 쓰던게 어제 같은데 무서운 세상이 되었군요 @_@;
사람이 교육 받는 궁극적 목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데
각자 그 방법과 목표점이 너무 달라서......
그 옛날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8만 4천 가지나 된다고 한 것은
개인 차를 얼마나 고려한 발상일까요?
각자의 능력이나 소질, 형편에 맞게 행복을 추구해야 그 과정도 행복할 것이고
그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목에서,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데
각각 아이들의 모든 상황을 파악해서 맞는 방법으로 이끌 수 있는,
다시 말해 8만 4천 가지 방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선생이 몇 이나 될런 지......
다들 지쳐 가는 세상에서
그래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인류의 이상을 꿈 꾸고
그 이상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잠 못 이루고 고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의 길에서
자신의 능력만큼 묵묵히 가 봐야죠......
애초에 지식이 재산이 된다는 얘기는 최근에 등장한 경향이니까요'ㅅ'
그래서 요즘 GPL이나 CC 같은게 나오는거겠죠. 실물자산이야 자연상태에서도 배타적 소유권을 갖지만 지식정보는 아니니까요. 게다가 자연상태에서 공유재인 이것들을 사유화하면 이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질수 밖에 없는 새로운 지식정보의 가격이 올라가고 그럼 치킨게임이 이루어 지겠죠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