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의 시국 선언, 그리고 추억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 선언을 했다.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순간마다 있어왔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5년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공교롭게도 5년 전 그때도 노무현, 지금도 노무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21세기의 첫 decade는 노무현 기간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 하다. 20년 전, 학생운동의 메카였던 서울대의 모습은 그 시절 대학원 생이었던 지금의 교수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서울대는 원래 잘살던 집 아이들이 좀 더 폼나는 액세서리 하나 추가하러 들어오는 곳으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어제 강의를 마치고 교지가 나왔길래 보았더니 "자기계발 동아리"를 비판하는 글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건 이미 아웃사이더의 눈에서 쓴 글이었다. 이미 자기계발 동아리, 그리고 거기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흐름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안에서 부터 삭아들어가는 대학의 모습이다. 교수들은 프로젝트로 돈 벌 궁리를 하고, 학생들은 자기계발서류의 담론에 취해 몸값 높일 생각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고용계약법"이라도 나오면 과연 유럽의 20대처럼 대차게 싸울줄이나 알까? 아니 이미 그런 법 나와있지 않은가? 도대체 입사 시기가 늦다고 해서 똑 같은 일을 하고 월급을 덜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런 *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지금 20대들의 반응은 "그래도 정규직. 그래도 거기 들어가고 보자." 이상은 아닌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어쩌면 국공립 교사나 교수들의 호봉 체계도 임용 연도에 따라 달라질지 모르겠다. 임용연도가 뒤로 갈수록 더 낮아지도록. 그래도 임용고시는 여전히 젊은이들을 빨아먹는 블랙홀의 위세를 잃지 않을 것이다.


20년 전 한국의 대학생들은 특히 서울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민감하게 이 사회의 모순을 먼저 깨닫고, 최초의 행동을 시작하는 집단으로서의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부심을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건 아무래도 그만큼 서울대의 상대적 위세가 위축되었고, 서울대라도 별볼일 없을 정도로 취업문제 등이 절망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절망한 민중들은 봉기 대신 굴종을 택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저항을 하는 것 보다는 꿈을 꾸었으면 한다. 저 너머를 꾸는 꿈. 그래서 최근 미학과 대중적인 책들에 부쩍 관심이 가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을 아래에 첨부한다. 참고로 이명박은 여기에 대해 교수들 중 소수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아무래도 고대교수들이 뭔가 보여 줘야 충격을 받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년 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 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잇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 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을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 있게 대응함으로써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김인걸 김장주 김재범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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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6/04 11:0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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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6/04 11: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0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유치찬란 at 2009/06/04 13:38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없는 시대이겠지요. 삶이 비루해 보일 때, 20대가 기댈것은 취업 이외에 없겠지요. 저도 20대가 꿈꾸기를 바랍니다. 현대는 막말로 저항할 '정명한 적'이 없는 시대이니까요. 할 수 있는일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일 뿐...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1
여기서 더 절망적이 되면 안됩니다. 어떤 적을 설정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괄호 친 뒤 그 외부를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부정변증법이죠.^^
Commented at 2009/06/04 13: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1
차라리 그런 성명이라도 내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유시 at 2009/06/04 16:40
=_=;; 글세요... 뭐 요즘 20대는 비루먹을 걱정 밖에 못하는데요....
어떠어떠한 세대가 사다리 겉어차기 한게 =_= 큰 덕분이랄까요?
80만원 세대 딱 앞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40대~50대 정도 되겟네요.
그 세대에서 =_= 사다리 겉어차기라는 웃지 못할짓을해서...
뭐하러 그랫나 싶네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0
민주노총이 사다리 걷어차는데 도사였다고 할 수 밖에요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6/04 17:53
프랑스는 지식만 빠르게 배우는 애들을 무능하게 보지요.
Ecole polytechnique는 월반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월반을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낙제한 아이들은 국가에서 정하는 박사 나이제한이 있지만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2
심지어 지식만 배우는 교육이 아닌 사람이 되는 교육이라는 구호조차 교육부가 아니라 왜 웅진 씽크빅이 해야 하는지...
Commented by 저련 at 2009/06/05 18:04
본문과는 별 관련 없는데.. 하여간.
http://blog.naver.com/non_organ/70048242403 이와 관련된 일련의 세 글에서 제가 생각해 본 연구를 시행하시는걸 검토해 보시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입증 책임은 당연히 주장질을 한 사람에게 있겠습니다만.. 촛불이야 나름 중요한 주제니까.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29
인류학적 연구를 해야 할텐데.. 촛불이 다시 일어나면 좋겠지만,... 조정환 샘이 주장은 많이 앞질러 나가도 인류학적 자료는 꽤 많이 가지고 계신듯 합니다. 어쨌든 제법 많이 촛불들고 쏴돌아다닌 제 경험으로는 중간계급론은 아니었습니다.
Commented by tsohr at 2009/06/07 13:22
일류대학이라는 데가 이미 있는집 자식들의 장신구가 되었다는 부분... 공감합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를 이명박이 더 힘들게 만든 것은 모르고 먹고 사는데만 급급하다는게... 조금 웃기네요. ㅎㅎ
고려대... 에서 시국선언을 도대체 얼마나 할 지 관심이 갑니다. 뜻있는 교수님들께서 많이들 나가신 뒤라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말이죠....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꾸벅 (__)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6/07 22:32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왜 안하는가 설명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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