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9일
노무현의 마지막 친구 제러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나의 점수 : ★★★★
이미 4년 전에 나는 지인들에게 노무현이 적어도 진보진영보다는 더 진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간 빗나간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그들은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하지만 노무현이 마지막 까지 읽고 있었던 책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면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그래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노무현이 이미 자본주의의 토대상의 변화를 캐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혁명이 산업자본주의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토대상에서부터 뒤집어 버린 큰 사건이며, 한국 사회가 이미 1997년을 계기로 산업사회에 종언을 찍고 있었고, 세계화는 이러한 토대상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며 "어떤 세계화냐?'가 문제지 "세계화냐 민족경제냐?"라는 물음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노무현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여전히 산업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산업노동자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해관계가 곧 진보라는, 그리고 민족 자주의 관점에서 세계화는 곧 미국에 대한 종속, 식민화라는 낡은 테제를 외치고 있었다.
노무현이 진보, 보수 양쪽 모두와 대립하게 되고, 모두로부터 욕을 먹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진보고 보수고 모두 결국은 산업사회의 세력들이었고, 산업사회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사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는 산업사회의 낡은 산업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보수세력은 낡은 냉전과 역시 산업개발 독재의 관점에서.
다만 안타까운것은 대통령 재직당시 노무현이 주로 지식정보사회의 변동에 대한 지식을 드러커, 벨, 토플러 같은 우익적인 미래학자의 저서를 통해 습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식정보화의 꿈나라를 설파하고, 세계화의 빛나는 미래를 역설하면서 이제 그만 낡은 산업사회의 계급갈등을 잊어버리자고 한다. 아니, 여전히 가난은 온존하고 과거의 산업프롤레타리아는 이제 프롤레타리아 마저 되지 못하는 처지로 밀려가는데 뭘 어떻게 잊으라는 것인가? 지식 정보화의 혜택은 몇몇 성공한 기업가들의 천문학적인 스톡옵션으로 다 빨려들어가고 그 댓가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늘어나는 맥잡인데 뭘 어떻게 잊으라는 것인가? 그러나 토플러류는 이런 지식정보화의 어두운면을 슬그머니 천지가 개벽하는 낙관적 수사법 아래 감춰버린다.
반면 닉 다이어-위데포트, 제러미 리프킨 같은 개념있는 미래학자들은 지식정보화, 세계화가 원칙적으로는 더 많은 행복을 주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여러 문제점과 억압등을 먼저 제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특히 리프킨의 책을 읽으면 자본의 논리에 맞춘 지식정보화가 얼마나 그 화려한 수사 아래 잔혹한 결말을 감추고 있는지, 그리하여 지식정보화 시대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중점을 두며 개혁에 착수해야 하는지 잘 보인다. 리프킨 뿐이랴? 리프킨 보다 한결 좌파적인 마뉴엘 카스텔, 그리고 안토니오 네그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전히 소비에트 시절의 교조적인 사회주의 교과서, 아니면 80년대식 민족담론에 매몰된 소위 진보진영은 노무현에게 "정보화는 맞는데, 토플러 류의 정보화 책 말고 리프킨이나 카스텔을 한번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할 역량도 되지 못했다. 대체 뭐가 진보란 말인가? 무슨 깡으로 진보를 말한단 말인가?
오호 통재라! 노무현은 권좌에서 물러난 다음에 오히려 제대로 정신박힌 지식정보 사회 관련 책들을 탐독했던것 같다. 얼마 전에 수소혁명을 운운했던 것 역시 리프킨의 "수소혁명"을 읽은 탓이리라. 그렇다면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도 다 읽었을 가능성이 크고,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정체성 정치"도 아마 읽었으리라. 그가 "새로운 진보사상"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같이 고민해 보세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최근의 독서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여담이지만 어쩌면 조정환 선생하고도 말이 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마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과거의 진보이론으로는 도저히 맞출수 없는 엄청난 변화를 몸으로 느꼈을 것이고, 그 변화를 일단은 쉽게 손에 잡히는 토플러, 드러커 류를 통해 학습했지만, 이제는 그 오류를 깨닫고 제대로 된 최신 진보 이론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노무현이 남긴 진정한 유언일 것이다.
"지식정보사회, 세계화" 이 큰 사회변동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저항을 이끌어낼수 있는지 비춰줄수 있는 그런 진보이론을 모색하라.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혹은 사실상 지대임금을 받는 일종의 특권층이 되어버린 조직화된 산업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단지 하나의 마디로 축소되어가는 민족국가 담론에 매몰되지 말아라! 세계화, 정보화라는 변화는 인정하되, 그렇다고 해서 산업사회의 모순과 불의가 해소되었다고 착각하지는 말아라. 그것은 다른 지점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 참에 리프킨 책이 아주 대박들이 나서 토플러, 드러커류의 담론을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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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5/29 19:14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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