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요즘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라는 책과 "미네르바의 촛불"이라는 책의 저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전자는 촛불비관론 혹은 한계론을 펴고 있고 후자는 촛불 희망론을 펴고 있다.  나는 촛불에서 지나치게 미래의 꿈을 찾고자 하는 조정환 선생의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지지한다. 여기에는 실제 촛불 항쟁에 성실하게 참여하면서 함께 웃고, 울고, 느꼈던 한 지식인의 꿈과 희망과 절망이 모두 담겨 있다. 조정환의 책인 미네르바의 촛불에서 가장 가치있는 부분은 네그리주의의 입장에서 촛불의 이론적 해명을 하려 한 앞 부분이 아니라 꼼꼼한 일지와 참가기가 수록된 뒷부분이다. 실상 촛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이런 민족지적인 작업인 것이다. 왈가왈부는 그 다음의 일이다. 조정환 선생은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 했지만, 이는 이론적 해명이라기 보다는 민족지 작업을 하기 이전에 미리 어느정도 규정해두는 분석틀, 관찰준거에 가깝다. 본격적인 해명, 해석의 작업은 이제 이 자료들을 근거로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네그리의 틀로 촛불을 보지만 그 이념형을 벗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조정환 선생이 이미 본문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반면 "왜 촛불을 끄셨나요?"의 경우에는 이미 그 제목만으로도 도덕적인 반감을 느끼게 만든다. 왜냐하면 촛불은 끈 것이 아니라 꺼진 것이기 때문이다. "왜 껐냐고?" 이건 정말 무례한 질문이 아닐수 없다. 왜 껐겠나? 몰대포, 곤봉, 색소탄에 집회할 만한 장소에 미리 경찰 알박기, 차벽, 명박산성. 촛불집회가 80년대를 넘어선 다양한 창발성이 폭발한 사건이었다면, 역시 경찰의 진압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촛불은 스스로 끈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필사적인 탄압에 의해 꺼진 것이다. 마스크 썼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인 관광객도 무차별 구타하면서 "외국인 행세하지 말라"며 더 패는 경찰들은 80년대를 능가할 정도다. 80년대에도 길거리만 벗어나서 인파속에 묻혀가면 더 이상 잡혀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가투는 오히려 80년대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니 질문은 "그대는 왜 정부를 전복하지 못했나요? 경찰이 팬다고 안하나요?"로 바꾸어 물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무책임하지 아니한가? 도대체 촛불에게 뭘 기대했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때까지 어떤 모진 탄압을 받더라도 꿋꿋하게 버티기라도 하라는 것인가?

이 무책임한 질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배후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환청일까?
"아, 그러니까 지도부가 있어야 한다니까. 명확한 이론을 가지고 지도하는 지도부의 전술적 지도를 받았다면 어떤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았을 것을...."
그리고 이들은 촛불이 지도부의 명령을 듣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촛불이 중간계급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이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좌파의 명령을 들을 턱이 없지 않은가? 이들(아, 왜 끄셨나요 저자들이 모두 이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의 편집방향이 그런것으로 보인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촛불은 중간계급이다. 따라서 혁명적 이론을 가진 지도부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따라서 꺼졌다. 이제 아무 일도 없었다.괜히 중간계급의 불쇼에 잠시 흥분한 좌파들만 헛꿈 꾼거다"

이렇게 된다.이것은 마르크스가 "프랑스의 계급투쟁"에서 묘사한 중간계급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촛불은 중간계급이 중간계급처럼 행동했다고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중간계급의 항쟁을 보며 중간계급 이상의 행동을 기대했다가 그러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리는 87년 6월 항쟁을 "기껏 대통령 직선제", "기껏 대의제", "기껏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좌파의 기존의 시각을 그대로 연장한 것이다.하지만 역사를 뒤져 보아도 대규모의 민중 봉기로 인해 정부가 전복된 사례는 참으로 손을 꼽는다. 더군다나 선진산업사회에서는 전무하다.무엇을 바라나? 프랑스 혁명이라도 일어나길 바랬나? 기껏해야 정부의 몇몇 양보를 얻어낼 뿐이며, 정부가 국민의 눈치를 보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후퇴를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은 기껏 대통령 선거 하나 얻어낸 것이지만, 그것이 열어낸 공간은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촛불은 87년 6월 만큼의 공간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80년 518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518은 기억을 그리고 원천적인 상처와 원한을 남겼고, 그 점은 촛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정환의 지적대로 촛불의 존재론적 효과는 엄청나다. 촛불의 가운데서치른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달리 촛불이 "꺼진 뒤" 그 아픈 기억 속에서 치른 선거들은 온갖 정치공작과 노무현 타령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무너뜨렸다. 그래봤자 보수야당?  반자본주의는 아니잖아? 그런 정치적 순결주의는 이제 좀 버리자. 촛불 이전에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았나? 우선 여기부터 가는 거다. 이것 조차도 기성 운동권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그러니 촛불은 결코 꺼졌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설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1) 작년 촛불 100일간에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정리하는 작업, 민족지적인 통계적인 기타 등등

2) 촛불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 누가 참석했는가? 중간계급이라고 주장하려면 실제 증거를 대야 한다. 중산층의 판타지를 공유하는 집단이 중간계급이라고 말하면서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전국민의 70% 이상이 중산층이라는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중간계급은 더 이상 분석적 가치가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관심이 웰빙과 관련된 것이라 해서 중간계급이라고 몰고가는 것도 곤란하다. 왜 웰빙은 중간계급만 관심을 가지는가? 좌우간 이런 잡설 역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실제 거리에서 본 바로는 중간계급과 중간계급의 자녀로는 보기 어려운 참가자들이 무척 많았다.

3) 촛불을 꺼뜨린 강제력과 이데올로기 공세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무력화 하는 작업. 필자는 실제로 음으로 양으로 이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래서 현란한 개념을 동원하며 촛불이 이랬네 저랬네 하는 이론가들의 논전에는 감히 끼여들지 못하지만, 이명박 진영의 헛소리를 논박하고 그들의 이념 공세를 차단하는 역할은 나름대로 해 왔다. 저 이론가들은 대중들에게 이명박 정권의 혹은 자본주의의 교묘한 논리가 스며드는 것을 막을만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뭐? 나 같은 이데올로그를 지도하는게 이론가라고? 됐네요. 누군 왕년에 VO 활동 안해 봤는줄 알아? 나도 왕년에 피디건추 간부였다구! ㅌ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학자와 이데올로그이지 이론가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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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5/17 22:02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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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나는 브리꼴뢰르bric.. at 2009/05/18 14:23

제목 : '촛불논쟁' 초간단 정리
아무리 생각해도알레프님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중요한(#) 거 같아서, 정리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정리는하나도 성실하지는 않으나, 기본 가정만알면 나오는 추론들이 핵심인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쓸데없이비비 꼬아놓을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왕에 보는거 재미도 있어야 하니 정리 부분만은디씨인사이드스러운 문체로 달리겠다. ...more

Commented by FELIX at 2009/05/17 22:10
개인적으로 촛불의 가장 큰 역할은 역시 민영화를 막았다는데 두고 있습니다. '선진화'의 가장 첫 걸음이 박살났지요.

두번째로는 mb공에 대한 레임덕. 처음이랑 겹치지만 5~60%를 넘나덜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그 이후 2~30%에 머물고 있지요. 그 덕에 그쪽에서는 1년을 날렸다고 생각하고 저는 1년을 벌었다고 생각하고. 그 여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나라당 정책의 95%에 반대합니다. 좌파적 관점에서든 우파적 관점에서든요. 그런 저에게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리신 기회였지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5/19 21:31
촛불은 이명박의 정책을 1년간 아니 1년 이상 지연시켰습니다. 아마 다시 시도하기 어려울겁니다. 참 대단한 일을 한겁니다.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5/18 02:25
2번은 밝혀졌습니다. 모두 불법폭력시위단체에서 참가했더군요. 시위 = 불법이 되는 나라가 민주주의 붙이고 있는건 위도만 좀 높여도 나오던데 말이죠. 그동네도 아마 민주라는 단어를 쓰던가요? 그나저나 자본주의 논리를 현 정권이 세우던가요? 자본론은 성선설을 바탕으로 나온 이념이고, 이미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고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자본론에서 혐오하는 천민 자본주의가 나오는데 굳이 안나서도 인간을 선하다고 믿지 않는 자들이 무슨 자본론이냐며 몰아세우는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leph at 2009/05/19 08:25
키시야스// "자본론은 성선설을 바탕으로 나온 이념"이라는 구절은 약간 이상합니다. 일단 <자본론>이라는 책은 성선설과 관련이 없다는 게 분명하고, "공산주의 이념"이나 "자본주의의 이념"은 정당화를 위해 인간 본성론을 종종 끌어들이긴 하지만 사실 인간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이념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아담 스미스만 보더라도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자본주의 찬양은 인성론과는 먼 차원에 있으니까요 (그는 이기심이 협동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했지만, 폭주하는 이기심은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매우 현실적인 인간관 위에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5/19 10:10
현실적으로 사회주의는 성선설을 전제하지 않으면 유지될수 없었다는 아담 쉐보르스키의 비판은 있었습니다. 아마 키시야스님은 자본론의 사상이 사회주의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본론은 단지 자본주의에 대한 냉정한 분석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기본적인 정서는 휴머니즘, 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정당한 분노가 깔려있음이 보이지만.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5/19 22:15
일단 전후관계 틀렸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본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본주의라는 극단적 선택은 불가능하며, 자본주의의 극을 달리는 미국에서도 공정한 룰, 타인에 대한 기부등 현실적으로 선한 인간임을 연출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모습을 중요시 하는거 자체가 바로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겠지요. 바탕으로 나왔다는 것은 정정하겠습니다. 내용은 시스템주의에 대한 이공학에서의 비판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것이며, 소프트웨어공학에서도 공산주의 사상과 비슷한 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5/19 22:28
사실 그 문제는 뒤르켐도 많이 고민햇던 문제입니다. 뒤르켐은 자본주의가 오히려 봉건주의보다 더 도덕적 기반에 민감한 체제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스미스 말처럼 빵장수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의 이익동기가 나에게 빵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내가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산 빵이 빵일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이 체제는 유지될수가 없겠죠. 문제는 이 도덕적 기반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유지되느냐, 아니면 이 도덕적 기반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냐라는 것인데, 막스베버 같은 경우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새로운 도덕이 새로운 체제, 즉 자본주의를 만들었다라는 논조를 펴면서 뒤르켐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문득 요즘 이른바 진보지식인들의 논쟁판을 보면 이렇게 스미스, 뒤르켐, 베버 를 운운하는 내가 아주 낡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래도 되는건지.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5/19 22:40
ㅎㅎ 제 동기는 칸트 인용하는걸 즐기는걸요. 20대에도 칸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사실 물리학을 대표로 하는 과학처럼 모델에 대한 한정적 조건을 명확히 한 후에,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것처럼 쉬운 학문은 없지요. 반면 인문학은 언제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문제에 봉착하는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유저들이 절대 착하고 너네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너네들이 의도한 대로만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유저들은 너네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라고 하죠. 전 이 말이 통제를 통한 혹은 제도를 통한 사회 이념적 주장과 많이 닮아있음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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