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되기는 진보 되기보다 더 어렵다(1)

요즘 참된 보수, 진짜 보수라는 말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아마 이명박 정부에 신물이난 보수들이 저게 무슨 보수야 하면서 나오는 말이지 싶다. 그런데 한국의 몇가지 특수한 사정은 보수가 과연 있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우파"를 자처하거나 "반공주의"를 자처하는 집단은 동의하지는 않아도 솔직하다고 보지만 "보수"를 자처하는 집단은 매우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이 논문의 목적은 왜 한국에서 보수라는 가치정향이 자리잡기 어려우며 의심스러운가 하는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보수가 뭔지좀 정리해 보자. 수 많은 단체나 개인들이 나름 보수를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 보수주의를 정의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보수는 가치의 문제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매우 현저한 오해인데, 보수도 역시 변화를 요구하는 보수가 있으며 거부하는 보수가 있다. 또 보수에도 귀족적인 보수가 있고 시민적인 보수가 있다. 여기서는 먼저 이 두 종류의 보수 스펙트럼의 기원을 탐색해보도록 하자.

먼저 보수를 변화에 대한 태도로 정의하는 입장은 사실 보수의 자의식이 아니라 진보쪽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정의에 가깝다. 그래서 자신들을 변화에 두고 보수를 고정에 둔 것이다. 이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주의와 헤라클레이토스 주의의 해묵은 논쟁을 재현하는 것 같지만 누구도 전자를 보수, 후자를 진보라고 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는 고정과 변화에 대한 관점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의 기반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통과 가치다. 즉 이미 시간이 지나간 전통을 여전히 가치있게 보는가 아니면 눈을 앞으로 하고 전진하느냐, 어떤 불변하는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그것은 상대적이라고 보는가에 보수와 진보의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수/진보 스펙트럼은 우파/좌파 스펙트럼과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같은 좌파라도 바쿠닌, 레닌은 진보적이지만 마르크스는 보수적이다. 그리고 이 블로그의 주인장 역시 다른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좌파라고 자처하지만 또한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고 하는것은 그 동안 인류가 누적한 과거의 전통과 가치가 충분히 오늘날에도 가치있으며 우리 행동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믿음인 것이다. 다만 그 과거의 것이 새로 등장한 것보다 우월하다고 보거나, 혹은 과거의 것 만이 가치있다고 보면 그 보수성의 정도가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전통의 뜨락을 먼저 지나야 이성의 저택에 도달하게 된다."는 피터즈의 이 경구야 말로 보수가 무엇인지 단 번에 보여주는 훌륭한 문장이다.
 
이런 보수주의는 오히려 변화를 요청한다. 특정 변화에 대해서는 거부하겠지만, 그 거부는 또 다른 변화의 요청인 것이다. 만약 상스럽고 무가치한 것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면 보수는 당연히 그런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보수도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사실 보수는 항상 변화를 추구한다. 왜냐하면 고매하고 고귀한 과거의 전통의 기준으로 볼때 현재가 만족스러울 턱이 없기 때문이다.  단 그 변화는 오랬동안 검증되어 온 전통에 기반한 것이라야 한다는 점이 진보와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의 대표자 처럼 언급되는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영국의 제국주의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왜 수천년간 자기들 문화를 지켜온 인도를 침략하는가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따라서 이미 식민지가 된 인도는 다시 자신들의 전통적 계급과 문화, 규범에 의해 통치되도록 원상회복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식민화가 된 상태에서 보자면 큰 변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보수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정적인 보수도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보수가 어떤 고귀한 과거의 전통과 가치에 대한 확신에 기반하고 있다면 정적인 보수는 회의주의에 기반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흄의 정치사상을 들 수 있다. 철저한 회의주의자였던 흄은 어떤 가치도 과학도 다 믿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인과관계라거나 각종 법칙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각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니 정확한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는 종교적 신념도 거부했다. 그렇다면 급진주의자가 되어야 마땅한데, 그는 정치적으로는 보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무엇도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법칙 따위는 없기 때문에 무엇을 미리 바꾸고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습관, 즉 오랫동안 익숙해져왔던 것을 그대로 지켜 나가는 것 뿐이다. 이를테면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태까지 늘 그래왔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사는 쪽이 그나마 차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전통과 습관은 함부로 뜯어고쳐서는 안되며, 특히 어떤 합리성 등의 이유를 들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

여기서 똑 같은 보수주의지만 전혀 상반된 두 흐름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가치와 전통에 대한 믿음, 역으로 그 어느 것에 대한 확실성도 믿지 않음. 이 상반된 입장에서 모두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보수주의적 행동이 나타난다. 전자는 과거가 더 좋기 때문에, 후자는 새로운 것을 확신할수 없기 때문에.

이 중 전자의 보수주의는 전형적인 귀족의 사고방식이다. 귀족은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의 정당성을 저 찬란한 과거로부터 뽑아오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지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리카르도에게 "지대란 불로소득이 아니라 그 가문이 대대로 제공한 영광과 명예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였다. 즉 현재 귀족의 혜택은 먼 과거 조상의 공덕이다. 전자의 보수주의는 오랜 전통과 고귀한 가치를 보유한 사람이 그만한 대접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보수적이 되려면 전통과 가치를 보유하기 위한 도야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아무나 보수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런 전통과 가치가 몸에 밸 수 있으려면 그는 유한계급, 즉 적어도 신사계급 이상은 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 보수주의는 귀족적이다.

반면 후자의 보수주의는 부르주아, 상공시민의 사고방식이다. 누구도 지금까지 이루어진 관행에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렇게 관행에 의해서, 습관에 의해서 그런대로 유지되어온 것 중 시장만한 것이 없다. 시장이야 말로 인간이 미리 합리적으로 조작하고 계획하지 않고 익숙해 온 습관에 의해 행위함에도 불구하고 무질서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러니 애덤 스미스가 흄의 제자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애덤 스미스의 시장주의는 소극적 자유주의이며 보수주의다. 오랜 세월동안 형성되고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 시장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거나 뭘 고치려 하지 말라는 것이지 시장이야 말로 합리적인 것이니 다른 모든 영역을 시장화하라는 공격적 시장주의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보수주의는 결코 동행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장은 보수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팽창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팽창하는 만큼 귀족적 보수주의의 영역인 전통과 가치의 세계는 무너져간다. 결국 전자만이 보수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되고 후자는 자유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되며, 오랜 세월 서로 난투극을 벌이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자유방임주의였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사상은 "자유방임화 전략"으로 변질되어갔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관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 같은 신화를 찾아볼 수 없다. 보수적인 그는 시장이라는 오랜 관행과 습관의 세계에 함부로 손대지 말 것을 이야기 했지, 이 세상이 온통 시장으로 점철되어야 한다는 공격적 생각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산업혁명과 시장의 팽창은 그런 소박한 스미스의 시장주의를 한참 넘어서 버렸다.

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다시 한 편이 된 것은 그들 공통의 적인 사회주의가 등장한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그 동거는 매우 불편한 동거이며 아직까지도 보수? 우파? 수구? 등 다양하게 불리는 집단이 엉거주춤 한편을 이루고 있는 괴이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진정 보수라는 이름에 값할수 있는 집단은 전통과 고결함 가치를 보유한 집단일 터, 함부로 보수를 참칭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명백히 지나간 시대의 향수이자 메아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보수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떤 전통과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럴만한 값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오늘은 이 정도 하고, 다음번에는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보수는 어떤 입장이며,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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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5/07 14:15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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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ELIX at 2009/05/07 15:10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저는 민족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노빠였고 지금은 민노당을 지지합니다.

응?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7 15:33
주로 영국적 보수주의의 전통과 가치에 대한 분석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보수에 대한 분석이 궁금하던 참이었어요.ㅎㅎ;

조금 다른 얘기로, 영국 보수당의 변화는 보수주의의 폭이 강원택 교수의 말대로 유연성을 가지고 확장되는 실용적 기회주의의 현대버전일지 아닐지 흥미로워집니다. 보수당수 데이빗 카메론이 유력한 차기 수상후보로 입에 오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5/07 16:15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같이 과거 전통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전통을 부정하고 새로운걸 시도함으로써 새로운걸 얻는다라는 주의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건가요.ㅜㅜ 전 지금껏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Commented by 유치찬란 at 2009/05/07 18:08
보수의 개념이야 국가마다 다르고, 민족마다 다르고, 뭐 이건 답이 없는 게임이지요.
사실 좌파도 국가마다 다 다른데 보수라면야... 한국진보는 유럽기준으로 우파급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유럽국가도 몇몇 있기도 하고 말이죠.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가 바뀌여야 하는 이유를 굳이 댄다면 시민들에게 민폐라는거 정도.(응?) 철학도 없고, 생각도 없고, 대표성도 낮다는 이유.
사실 보수니 진보니는 그냥 붙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말이죠....;;;;
음 생각해보면 진보쪽도 좀 민폐 (?) 요즘 병신인증 하시는 분들이 팀킬을 너무 많이 하신다는, 애초에 좀 기반이 부실하기도 하지만...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5/07 20:05
댓글에 대한 답글// 이건 일단 서론 격이죠. 그런데 제가 서론만 써놓고 그 다음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죄송합니다. 일단 유럽에서 보수라는 정향이 아니라 보수주의라는 이념은 시민 혁명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게 미국에서 다시 한국에서는 아주 복잡하게 얽히게 됩니다. 그러니 키시야스님과 펠릭스님의 의문은 고 다음에 차차 풀려 나가게 됩니다^^
Commented by 히라케 at 2009/05/07 20:11
한국에서는 사실 보수라 불리는 세력들이 구친일파 수꼴이고..
열우- 민주당 정도가 실제 중도우파죠.
Commented by 착선 at 2009/05/07 20:21
음 저는 흄에 가까우려나요? 사안마다 일관된 사상을 가진다는것도 어려운 일이고 스스로 자신을 판단한다는게 참 어렵네요. 역시 이런건 타인의 평가가 좀더 객관적일듯..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칠칠이 at 2009/09/05 13:15
음. 제가 일년전 한토마 전문 블러그에 반 토막 만 썼던...진작에 찾아 뵙으면 훨! 즐거웠을 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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