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3일
클래식 음악과 좌파?
얼마 전에 예기치 않게 쓸모없는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그 주제가 결국 클래식음악이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소위 진보진영에서 클래식 팬을 만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서로 기뻐해야 마땅할텐데 마구 활퀴며 싸우고 말았습니다. 제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그분은 계속 댓글을 쓰고 계셨더군요. 아마 그 분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그 분의 트라우마는 바로 "음악적 삶과 정치적 삶의 괴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클래식을 부르주아의 취향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음악적으로 클래식을 아니 사실상 클래식만 추구하는 취향과 정치적으로 좌파집단에 속해있다는 것 사이의 괴리가 무척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 때 그 분은 "클래식도 경우에 따라 진보진영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라는 논리를 펴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거의 포기하고 있는 단계로 보였습니다.
여기서 저와 그 분의 결정적인 차이가 몇가지 나타났습니다.
1. 저는 클래식을 주로 듣지 않습니다. 저는 클래식 만큼이나 록 음악도 좋아합니다. 테크노도 좋아하고. 한 마디로 저는 "잘 만든 음악"을 좋아합니다.
2. 정치적으로도 저는 좌파라고 규정되고는 있지만 좌파적 강령들을 정언명령처럼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옳은 것 보다는 멋진 것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클래식을 듣는 것과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것이 괴리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좌파 개념은 "세상을 보다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지 "특정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눌러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장르의 음악이 이 계급의 것인가, 저 계급의 것인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설사 클래식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클래식을 공유하자고 요구할 일이지 폐기하자고 요구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죠. 도리어 거기에서 예술의 전당의 입장료를 3만원 이하로 낮추라거나(차액은 국고 보조), 각 시도에 노동자, 농민도 충분히 그 혜택을 즐길수 있는 문화예술 교육 기회를 부여해 달라거나 등등의 요구가 좌파 정책에 포함될 일이죠.
오히려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때 그 문화적 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좌파들은 부지런히 클래식을 들어야 할 일이죠.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적 감각입니다. 자본주의는 노동하고 계산하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회주의는 놀이하고 향유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경제, 정치 체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세계관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클래식과 사회주의 중 양자택일 해야 한다면 클래식을 택할 것입니다. 특정한 장르의 예술을 그 고유의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기준으로 재단하는 체제라면 사회주의가 아니라 그 무슨 체제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전복의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으로 클래식은 전혀 부르주아의 취향이 아닙니다. 클래식=부르주아 공식이야 말로 우리나라 좌파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선험적 공식들에 매달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을 보면 부르주아들은 전혀 클래식을 향유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클래식을 향유하는 것 처럼 보이기를 원할 뿐입니다. 따라서 클래식은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를 초월한 하나의 이념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념형은 진보적인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념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부정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대적 계몽은 모든 이념, 이상을 비과학, 불합리한 것으로 몰고 주관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적 담론에서 몰아내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예술, 특히 대중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 완전성을 향한 추구인 클래식, 순수예술이 가지고 있는 전복적 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가하는 소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자들의 비판을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도르노와 루카치의 예술논쟁에서 역사는 아도르노를 승자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아, 그 분이 마르쿠제의 미학을 읽으셨다면 바로 이 진리를 깨닫고 그 고통스런 고민을 아니 하셨을 것을....
그 분이 이 글을 읽게 될지 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의 정치적 활동 스타일로 봐서는 읽어도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하실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분은 바그너리안이시니까요. 어쩌면 저의 저 태도는 모차르티안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바그너리안과 모차르티안은 음악이라고 관례상 같이 불리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대상을 감상하거든요. 복싱과 리듬체조가 모두 스포츠로 불리지만 전혀 다른 것들이며, 복싱팬과 체조팬이 같은 취향일수 없듯이.... (이건 나중에 더 논의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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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의 트라우마는 바로 "음악적 삶과 정치적 삶의 괴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클래식을 부르주아의 취향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음악적으로 클래식을 아니 사실상 클래식만 추구하는 취향과 정치적으로 좌파집단에 속해있다는 것 사이의 괴리가 무척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한 때 그 분은 "클래식도 경우에 따라 진보진영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라는 논리를 펴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거의 포기하고 있는 단계로 보였습니다.
여기서 저와 그 분의 결정적인 차이가 몇가지 나타났습니다.
1. 저는 클래식을 주로 듣지 않습니다. 저는 클래식 만큼이나 록 음악도 좋아합니다. 테크노도 좋아하고. 한 마디로 저는 "잘 만든 음악"을 좋아합니다.
2. 정치적으로도 저는 좌파라고 규정되고는 있지만 좌파적 강령들을 정언명령처럼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옳은 것 보다는 멋진 것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클래식을 듣는 것과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것이 괴리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좌파 개념은 "세상을 보다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지 "특정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눌러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장르의 음악이 이 계급의 것인가, 저 계급의 것인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설사 클래식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클래식을 공유하자고 요구할 일이지 폐기하자고 요구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죠. 도리어 거기에서 예술의 전당의 입장료를 3만원 이하로 낮추라거나(차액은 국고 보조), 각 시도에 노동자, 농민도 충분히 그 혜택을 즐길수 있는 문화예술 교육 기회를 부여해 달라거나 등등의 요구가 좌파 정책에 포함될 일이죠.
오히려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때 그 문화적 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좌파들은 부지런히 클래식을 들어야 할 일이죠.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적 감각입니다. 자본주의는 노동하고 계산하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회주의는 놀이하고 향유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경제, 정치 체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세계관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클래식과 사회주의 중 양자택일 해야 한다면 클래식을 택할 것입니다. 특정한 장르의 예술을 그 고유의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기준으로 재단하는 체제라면 사회주의가 아니라 그 무슨 체제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전복의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으로 클래식은 전혀 부르주아의 취향이 아닙니다. 클래식=부르주아 공식이야 말로 우리나라 좌파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선험적 공식들에 매달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을 보면 부르주아들은 전혀 클래식을 향유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클래식을 향유하는 것 처럼 보이기를 원할 뿐입니다. 따라서 클래식은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를 초월한 하나의 이념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념형은 진보적인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념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부정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대적 계몽은 모든 이념, 이상을 비과학, 불합리한 것으로 몰고 주관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적 담론에서 몰아내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예술, 특히 대중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 완전성을 향한 추구인 클래식, 순수예술이 가지고 있는 전복적 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형식주의"라는 비판을 가하는 소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자들의 비판을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도르노와 루카치의 예술논쟁에서 역사는 아도르노를 승자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아, 그 분이 마르쿠제의 미학을 읽으셨다면 바로 이 진리를 깨닫고 그 고통스런 고민을 아니 하셨을 것을....
그 분이 이 글을 읽게 될지 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의 정치적 활동 스타일로 봐서는 읽어도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하실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분은 바그너리안이시니까요. 어쩌면 저의 저 태도는 모차르티안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바그너리안과 모차르티안은 음악이라고 관례상 같이 불리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대상을 감상하거든요. 복싱과 리듬체조가 모두 스포츠로 불리지만 전혀 다른 것들이며, 복싱팬과 체조팬이 같은 취향일수 없듯이.... (이건 나중에 더 논의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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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5/03 23:48 | 예술의 향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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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가 왜 책에서 그런 적이 있죠.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티벳어문학 공부를 선택할 수가 있었다고요.. 이런 순수한 인문학, 순수예술.. 이런 것들이야말로 좌파의 '퐈이야!'라는 걸 몰랐나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