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01일
치료가 필요한 강수진 혹은 조선일보
나는 강수진 씨가 공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워낙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상하게 큰 발레 공연은 꼭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데(객석수가 많아서 그런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발레나 오페라를 보는 것은 나는 소양은 없고 돈만 많다고 자랑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A석만 되도 까마득히 멀리 개미같은 무용수들이란....소양도 돈도 있으려면 몇십만원짜리 티켓을... 헉. 그래서 나는 강수진씨를 발레리나로서 어떤지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순전히 강수진씨의 특정 발언과, 그 발언을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것이니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예술적 성취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조선일보 기사라 신뢰성에 의심이 가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이 대목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동을 줄지 몰라도, 발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물론 아프죠. 하지만 내 몸 사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통증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아요."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안 할만큼 강수진씨가 솔직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사실 통증을 친구삼을 정도라면 정신 건강에는 상당한 적신호입니다. 일종의 강박신경증의 증후일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은 일종의 억압된 욕망의 승화이기 때문에 신경증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예술, 강박증=종교, 망상증=정치...
하지만 나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말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요? 우연히 화가나서 한 말일까요?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강박증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이건 이 분이 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지금 주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또 그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걸 너무 감격스럽게 전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였습니다. 강수진씨 강연에서 하고 많은 내용은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쉬는 것은 무덤에 가서도 할수있어"하고 타이틀을 달았던 것입니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여기에 감격한 혹은 감격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확실히 병적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강박신경증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투자하는 자본가와 노동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용이 모두 강박적입니다.
투자는? 역사적으로 부자들은 돈을 쓰고자 합니다. 과시합니다.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박으로 대박을 낸 흥보의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묘사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첩까지 거느리며 살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부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떼돈을 벌지먼 번 그 돈은 계좌에서 숫자로만 존재해야지 지갑까지 와서는 안됩니다. 얼른 얼른 재투자 해야 합니다. 막스베버가 말했듯이 계좌의 숫자 그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될 뿐, 그것을 이용한 다른 재화와 용역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이런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수전노" 아닙니까?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돈을 뺏아가려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할때, 나의 돈을 늘리는 것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게 느껴질때... 만약 그 대상이 돈이 아니라면 정신병리학에서는 이것을 편집증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떤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면(예를 들면 여자구두, 속옷 따위) 변태내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데, 유독 돈에의 집착만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병든 것은 별개가 아니겠습니까?
노동은? 세상에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이 인간을 위대하게 하네 어쩌네 하는 노동운동가들도 기회만 생기면 노조 전임자라도 하면서 노동 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동 대신 투쟁을 하죠.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을 문둥병처럼 기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노동(labour)이 아니라 일(work)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작품에 심취한 예술가는 몇시간씩 꼼짝않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표에따라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붓을 집어던지고 말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운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9시는 국회, 10시는 정부, 2시는 법원 앞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피켓팅과 시위를 하고 주말은 쉬라고 한다면 당장 투사노롯 때려 치울겁니다. 투쟁도 필받아서 해야지 시간표대로 하기 시작하면 노역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은 필 받으면 몰아치는 그런 노동이 아니라 시간표에 따라 늘 일정하게 반복하는 이런 이상한 노동입니다. 똑같은 일을 끝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정신병리학에서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모든 행위의 반복은 강박증이지만, 그 반복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노동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을 예찬하는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야 말로 이런 "노동의 예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처럼 기피되는 노동을 끄적끄적 하게 만드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생명줄입니다.
처음에는 강제노동이 주어졌습니다. 이른바 폭력적으로 관철된 시초축적(본원적 축적)과정이 그렇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부랑자는 처벌되었고,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강제로 공장에 밀려들어갔으며, 구걸을 하거나 노숙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저항도 만만치 않은대다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동하게 노동윤리를 내면화 하는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바로 훈육입니다. 학교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매일 반복적으로 출퇴근하고 노동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노동자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빵점짜리는 용서받아도 무단결석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곳, 이게 학교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내면화보다 더 강력한 것은 최면을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훈육을 통한 내면화는 의식에 작용합니다. 하지만 최면은 무의식에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노동강박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노동을 안하면 큰 재앙이라도 닥칠것처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노동강박증을 앞에 나왔던 돈에 대한 편집증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고, 벌고, 일하고 벌고를 죽을때까지 반복하게 될겁니다. 만약 이 흐름이 멈추면 신성모독이라도 범한것 같아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겁니다. 휴식은 없습니다. 휴식을 하게되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사우나에서 찜질방에서 알몸으로 휴대전화만 들고 돌아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이건 이미 철저히 물든 강박증입니다. 강박증 환자는 정말 무덤에 가서야 쉴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왜 강수진씨가 조선일보에 의해 칭송을 받고 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강수진씨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만 관심이 있고, 그 성공을 위해 강박적으로 반복연습을 했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기독교는 기가막힌 조합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무덤보다 더 안락한 천국으로 유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릴 생각 말고 일하고, 일하라. 휴식은 죄악이다. 계속 일하면 죽은 다음 천국에서 휴식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수진씨 발언에 대한 비판 댓글에 가장 울컥하는 반응을 보인 분들은 주로 개신교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같은 맥락에서 박태환이 김연아만큼 주류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박태환은 김연아처럼 반복반복 연습벌레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수진, 김연아... 자기도 모르게 조선일보 등에 의해 노동강박증 환자를 생산하는 최면술사의 팬던트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이분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그런 위치를 뿌리치거나 반비판했으면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글루스 가든 - 시사진보가든...시사비평을 통해 ...
조선일보 기사라 신뢰성에 의심이 가지만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이 대목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감동을 줄지 몰라도, 발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기대한 대답은 "물론 아프죠. 하지만 내 몸 사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통증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아요."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안 할만큼 강수진씨가 솔직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사실 통증을 친구삼을 정도라면 정신 건강에는 상당한 적신호입니다. 일종의 강박신경증의 증후일후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은 일종의 억압된 욕망의 승화이기 때문에 신경증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히스테리=예술, 강박증=종교, 망상증=정치...
하지만 나를 더욱 경악하게 만든 말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요? 우연히 화가나서 한 말일까요?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강박증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이건 이 분이 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지금 주변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또 그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파고들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이걸 너무 감격스럽게 전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였습니다. 강수진씨 강연에서 하고 많은 내용은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쉬는 것은 무덤에 가서도 할수있어"하고 타이틀을 달았던 것입니다. 하고 많은 말 중에 여기에 감격한 혹은 감격할 것을 요구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확실히 병적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강박신경증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투자하는 자본가와 노동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용이 모두 강박적입니다.
투자는? 역사적으로 부자들은 돈을 쓰고자 합니다. 과시합니다. 편하게 살고자 합니다. 박으로 대박을 낸 흥보의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묘사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첩까지 거느리며 살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부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떼돈을 벌지먼 번 그 돈은 계좌에서 숫자로만 존재해야지 지갑까지 와서는 안됩니다. 얼른 얼른 재투자 해야 합니다. 막스베버가 말했듯이 계좌의 숫자 그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될 뿐, 그것을 이용한 다른 재화와 용역은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이런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수전노" 아닙니까?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돈을 뺏아가려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할때, 나의 돈을 늘리는 것 외에는 어떤 목적도 없게 느껴질때... 만약 그 대상이 돈이 아니라면 정신병리학에서는 이것을 편집증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떤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면(예를 들면 여자구두, 속옷 따위) 변태내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데, 유독 돈에의 집착만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병든 것은 별개가 아니겠습니까?
노동은? 세상에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이 인간을 위대하게 하네 어쩌네 하는 노동운동가들도 기회만 생기면 노조 전임자라도 하면서 노동 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동 대신 투쟁을 하죠.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을 문둥병처럼 기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노동(labour)이 아니라 일(work)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작품에 심취한 예술가는 몇시간씩 꼼짝않고 작업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매일매일 주어진 시간표에따라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붓을 집어던지고 말것입니다. 투쟁하는 노동운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매일 9시는 국회, 10시는 정부, 2시는 법원 앞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피켓팅과 시위를 하고 주말은 쉬라고 한다면 당장 투사노롯 때려 치울겁니다. 투쟁도 필받아서 해야지 시간표대로 하기 시작하면 노역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은 필 받으면 몰아치는 그런 노동이 아니라 시간표에 따라 늘 일정하게 반복하는 이런 이상한 노동입니다. 똑같은 일을 끝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정신병리학에서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합니다. 모든 행위의 반복은 강박증이지만, 그 반복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노동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을 예찬하는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야 말로 이런 "노동의 예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문둥병처럼 기피되는 노동을 끄적끄적 하게 만드는 것... 이게 자본주의의 생명줄입니다.
처음에는 강제노동이 주어졌습니다. 이른바 폭력적으로 관철된 시초축적(본원적 축적)과정이 그렇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부랑자는 처벌되었고, 농민들은 농토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강제로 공장에 밀려들어갔으며, 구걸을 하거나 노숙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저항도 만만치 않은대다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동하게 노동윤리를 내면화 하는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바로 훈육입니다. 학교의 탄생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매일 반복적으로 출퇴근하고 노동하는 생활이 몸에 배이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노동자공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빵점짜리는 용서받아도 무단결석자는 용서받지 못하는 곳, 이게 학교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내면화보다 더 강력한 것은 최면을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훈육을 통한 내면화는 의식에 작용합니다. 하지만 최면은 무의식에 작용합니다. 한마디로 노동강박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노동을 안하면 큰 재앙이라도 닥칠것처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노동강박증을 앞에 나왔던 돈에 대한 편집증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고, 벌고, 일하고 벌고를 죽을때까지 반복하게 될겁니다. 만약 이 흐름이 멈추면 신성모독이라도 범한것 같아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될겁니다. 휴식은 없습니다. 휴식을 하게되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사우나에서 찜질방에서 알몸으로 휴대전화만 들고 돌아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이건 이미 철저히 물든 강박증입니다. 강박증 환자는 정말 무덤에 가서야 쉴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왜 강수진씨가 조선일보에 의해 칭송을 받고 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강수진씨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만 관심이 있고, 그 성공을 위해 강박적으로 반복연습을 했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기독교는 기가막힌 조합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무덤보다 더 안락한 천국으로 유혹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릴 생각 말고 일하고, 일하라. 휴식은 죄악이다. 계속 일하면 죽은 다음 천국에서 휴식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수진씨 발언에 대한 비판 댓글에 가장 울컥하는 반응을 보인 분들은 주로 개신교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같은 맥락에서 박태환이 김연아만큼 주류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박태환은 김연아처럼 반복반복 연습벌레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수진, 김연아... 자기도 모르게 조선일보 등에 의해 노동강박증 환자를 생산하는 최면술사의 팬던트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이분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그런 위치를 뿌리치거나 반비판했으면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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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5/01 12:0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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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류의 강박증을 가진듯 싶군요...
쉬면 좀 이상한게.... 일하는게 그나마 편하던..
물론! 일하다 보면 놀고 싶죠.
=_=;; 덕분에 직장 제대로 갖질 못해요...
원래 쉽게 때려치는 성격이라 그랬나 했는데...
저런 안좋은게 있었기 떄문이군요.
사실 발레나 피겨나 정상급이라면 저런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런 면에만 집중하는 건.. 역시.. 그들이죠.. 네..
박태환이 김연아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까지 '(미)소녀'가 아니라서죠.
언론을 비롯해 스타를 만드는 층은 거의 다 꼰대 아저씨들이니까요.
일하지않고 있으면 죄악시되는 사회분위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어쨌든 잘 보았습니다
그거 무릎팍도사에서도 그런 말 했었어요
무릎팍에서 한말을 그냥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리바이벌 했나봐요
어떤 것에 감격할 것을 강요한다...빅터 프랭클이 말한 유일한 자유....태도의 자유,,,태도조차 자유롭게 스스로 정할 자유도 없는 세상인가요.
박지성은 자기 생각 없고 명성을 사랑하는 기계인간이나 연습벌레가 아닙니다.
기자, 언론을 싫어하는 속성때문에 은둔자 이미지로 굳어졌을뿐.
발레리나로서 강수진은 기교에 비해 체형도 그렇지만 예술성이 좀 떨어집니다.
안나 파블로나나 마고 폰테인이나 루돌프 누레예프가 강수진만큼 연습했을까요?
예술이란 것도 인생경험이 중요한데 강수진씨는 본인이 얘기하는 것만 봐도
기계라는 인상을 주더군요.
어떻게 보면 이명박 시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 나라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입지전적 스타죠.
그런데 김연아 얘기가 있어서 연아빠들이 몰려와서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살짜기 걱정됩니다.
저는 발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확실히 강수진은 지극히 한국적인 발레 스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죽도록 노력'하여 '부와 명성'을 쌓은 전형적인 캐릭터잖아요. 발레는 예술인데, 제가 본 사람들 중 강수진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수진의 예술적인 면모가 아니라 노동자적인 면모를 보고 대단하다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발레리나 강수진의 예술적 성취에 관한 건 아예 무시되거나 당연히 잘 했겠거니- 하고 여겨지는 것 같고....
한때 강수진의 다 망가진 발 사진과 강수진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는가에 대한 글이 중고딩들의 싸이월드 사진첩을 휩쓴 적이 있었죠. 부모님들, 선생님들도 강수진 얘기를 한 번씩은 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본 바로는 그 사람들 중에 강수진은커녕 발레 공연이라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근데 박태환도 연습벌레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저는 크게 관심이 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박태환이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한다더라- 하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는데요. 박태환이나 김연아 둘 다 연습벌레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트랙백하겠습니다.
왜 이런 답을 기대하시죠?
강씨가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나서 적당량의 연습으로도 천재적인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건가요? 연습해서 이룬 게 뭐가 그리 대단한거지? 라는 물음인가요? 아니면 사람이 아닌 걸 바라시나요?
박태환과 김연아로 매듭 지으신 걸 보니 조선일보와는 또다른 괘로 굉장한 생각을 하시는 듯..
(조선이야 원래 저런 계열의 성공 신화를 아주 아주 좋아하는 집단이라 조선 비판 부분은 공감하지만 글쓴 분이 강씨나 김씨에게 갖는 생각은 도대체 뭐지요? 더군다나 언론이 마오와 비교할 때 초연히 이겨낸 게 김연아씨인 걸로 아는데...님도 참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분들 중 한분인 듯)
발레리나 강수진 구글에서 검색해보세요. 655건 나옵니다...--
사실 강수진씨의 발 사진은 참 충격적일듯 하겠지만, 발레리나들의 천형 같은 것입니다. 발톱이 두번은 빠져야 초보를 면한다는 곳이 그 바닥입니다.(말이 쉽지 발톱이 빠진다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문이 문드러진 노동자, 목소리가 변조될 지경인 교사, 등등 정말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신체가 변형될 정도로 독하게 살아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강씨의 발이 칭송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 댓가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류 그 어디에서도 "성공(세속적 의미)"의 칭송은 있어도 "미적 가치"에 대한 칭송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미적가치란 직관적인 것이지 누적적이고 조작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리에리가 노력했다는 이유로 모차르트보다 높은 평가를 요구할수는 없듯(사실 역사적 기록은 모차르트가 상당한 노력파임을 증명하지만 영화 설정에 따라), 강수진씨의 평가는 그가 펼치는 미적표현에서 비롯되어야지 연습과 노력에서 비롯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되면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미학과 근대자본주의는 어긋나는 상대임을 이미 쉴러는 간파한 바 있습니다. 후우... 이건 차후에.
일류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을 모두에게 강요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려면 거기에서 그쳐야지, 각고의 노력에 대한 찬사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하만 부정변증법 님의 비판은 강수진씨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에 대한 비판에 그쳤어야 합니다. 그걸 넘어서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몰입을 병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짓 같습니다.
예수나 부처가 망상증 환자라는 것은 그들을 인간이라고 전제한다면 사실 틀린 말도 아닐것입니다. 원래 종교는 망상증(조발성치매 혹은 정신분열증... 망상은 그 증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있으니까요. 그들을 신이라고 전제해야 환자가 아니게 되죠.
조선일보에서 부정변증법님의 사회 비판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비판의 이유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 보도를 근거로 부정변증법님을 "비판강박증 환자"라고 단정해도 괜찮겠습니까.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발레 감상은 "쉬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기분 전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예술 감상은 그 자체로 고도의 몰입을 필요로 하는 지적 행위입니다. 자신이 무덤에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쉬지않고 몰두하는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참고로 정신의학에서 강박증, 신경증, 우울증은 감기만큼이나 흔한 병입니다. 이걸 정신병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흔히 미쳤다로 표현되는 정신병은 조발성치매, 해리장애, 정신분열 같은 경우에만 사용합니다.
강수진씨는 쉼없이 노력하는 태도를 조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스스로 그렇게 했을 뿐이죠. 조장한 것은 (부정변증법님의 "언외언"적 독법에 따르면) 조선일보죠. 그걸 비판하려다가 강씨도 싸잡아서 비판한 겁니다. 그걸 지적한 것인데 자꾸 비껴가시는군요
그리고, 조선일보를 정신병적이라고 말한 것 역시 병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욕질을 할거면 정신병적이라고 하지 않고 미쳤다고 했겟죠.
사실 쉼없이 노력하는 것 자체도 말려야 하는 삶의 태도이긴 합니다. 발레 좋아하시니 발레로 비유하자면, 디베르티시망이 좀 있어야 발레도 완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 강씨도 살면서 나름의 디베르티시망을 누릴것이라 봅니다.
"만약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좌파의 선동질에 놀아난 군중에 불과하다. 쉽게 선동되고 흥분하는 것은 판단력 부족과 병적 흥분상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겨레와 촛불 참가자들은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래 놓고 "조선일보 기자가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서 한 말이니 문제없다. 촛불 시위자를 싸잡아 비판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면 동의하시겠습니까?
님이 비판해야 할 것은 한 예술가의 부단한 예술혼을 경쟁 조장 논리로 이용하는 보도 태도입니다. 그것도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그런 의도로 썼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때나 정당화될 수 있는 논리죠. 그런데 별로 그런 증명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리고 대다수 사람에게는 병적이라는 말이나 미쳤다는 말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신의 잣대와 어긋난다고 타인을 너무 쉽게 평가하는 태도가 유감스럽습니다.
p.s. 정신병리학적으로만 보면, 아무리 정치적 의사표현을 위해서라지만 제몸에 불을 지른 전태일 씨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행동을 "치료를 요하는 행동"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은 아니죠. 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자가 그런 의도로 썼다는 것을 여기서 어떻게 증명합니까? 표출된 표현에서 거꾸로 분석해 들어갈 뿐입니다. 정신분석학의 기초라도 알고 계신다면 저런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의도를 증명해야 논리가 성립된다고 한다면, 웬만한 권력자는 모두 비판에서 면제될 것입니다.
병적이란 말이나 미쳤다는 말이나 별 차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 참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되는 것이니.
그나 저나 이번이 두번째네요. 파파라치님이 이렇게 와서 한바탕 하시는게. 그나 저나 발레 팬은 아니신 모양입니다.
더 이상의 댓글은 사양합니다.
정신분석학의 기초라... "꿈의 해석" 정도라도 읽고 자신이 심리학에 대해 많이 아는 것마냥 착각하시나보죠? 주류 정신병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은 비주류 취급당한다는 것 정도나 알고 말씀하시죠.
저도 더 이상의 의미없는 대거리는 사양하고 싶네요.
정신병리학에서는 아직도 정신병리의 기질적 요인을 중시하여 생화학적 요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신분석학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취급하는 대상이 달라서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정신병리의 심리적 요인을 중시하여 자유연상과 상담 요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복합적인 처치를 하기도 합니다. 내가 청소년의 중독증 치료와 관련하여 논문과 책을 썼던 사람입니다.
성격심리학, 이상심리학, 상담심리학, 등 어떤 책을 펼쳐보아도 거기에는 대여섯가지 접근이 나오고 그 첫번째 자리는 심리역동적 접근이 차지한다는 걸 모르시나보죠. 아니면 심리역동과 정신분석이 같은거라는 걸 모르셨던가. 내 글을 백만번을 읽어봐요. 비판의 대상이 강수진인가 조선일보식의 논리인가? 다 제대로 읽는데 님만 이상하게 읽으시니...본인 블로그에 댓글 줄달리는건 소망스러워 하지 않으시는 분이 남의 블로그에서는 왜 이리 집요하신지....
솔직히 강수진씨가 무리하고 계신거에 대해서 서두에서 필자분께는 어느정도 연민이랄까 걱정을 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파파라치님께는 너무 감정이 거세된 이성적으로 완벽하다못해 결벽할 것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네요 ^^:
완벽하게 논박과 비판의 여지가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이상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만, 도리어 거기에 강박을 느끼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