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28일
바쁜 나날, 그리고 전교조 안의 계급투쟁
요즘 너무 바빠서 포스팅을 며칠째 못했습니다. 새 글이 전혀 없었음에도 방문자 수가 100명을 늘 넘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이 누추한 공간을 사랑해 주셔서 의무감 같은것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요즘 바쁜 이유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내년도 고등학교 사회교과서를 쓰고 있는데, 교과서 쓰는 도중에 교육과정 자체가 정권의 입맛에 맡게 이리저리 바뀌는 것을 보고 제도권 교과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안 교과서를 두 종류 개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듀넷 개편 사업까지 떨어져서 일본 속담을 빌리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을 좀 받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적어도 한 두가지 이상의 일들을 맡아서 바쁘십니다. 이렇게 바쁘신 모습들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 분들이 다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뉴라이트 말대로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길거리에서 팔뚝질 하는 분들뿐 아니라 제도권, 비제도권 가리지 않고 교과서, 교재, 소프트웨어 개발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도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박근혜 희망대로 전교조를 교단에서 몰아내면 공교육은 아마 파탄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교조 선생님들의 활약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들이 전교조의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으로 활동하신다는 겁니다. 혹은 거꾸로 말하면 전교조가 그만큼 이 분들을 자기 조직의 명망을 높일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교조 간부생활 1년을 통해 얻은 결론은 전교조가 이 분들을 자산으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활용하려는 시도에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전교조 주류 활동가들이 폄하하는 용어가 "교과 환원주의"입니다. 교과 활동만 열심히 하고, 소위 정치, 노동 투쟁에 소극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폄하 속에는 정치, 노동 투쟁이 우선이고 교과활동은 그것에 복무하는 한 가치가 있다는 일종의 스콜라 철학적 오만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간의 계급 갈등을 봅니다. 한 부류는 아스팔트를 자기들의 무대로 생각하고 민주노총을 자신들의 상급기관으로 생각하는 노동투사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교실을 자기 무대로 생각하고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교육자, 연구자들입니다. 이들이 모두 전교조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습니다. "교직원노동조합"인가 "교직원노동조합"인가? 결국 이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를 놓고 교실파 교사들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반면 아스팔트파는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실파 선생님들은 전교조가 아니라도 활동할 영역이 많고, 인정받을 영역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스팔트파는 전교조가 아니면, 민주노총이 아니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실현할 공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적으로는 소수인 아스팔트파가 오히려 전교조 조직의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두번다시 교실 교사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노동조합관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교실로 돌아가고, 노조 본부에서 물러나라는 것은 인생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가혹한 요청으로 들릴 지경입니다. 하지만 전교조가 살 길은 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내서 교사로서의 마인드를 되살리는 길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오가 당 간부들을 하방시킨것도 이런 이유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전교조 본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누가 지킬까? 나는 지금처럼 각종 시위 5분대기조 역할이 아니라 연구센터 및 전문성 지원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부는 전임자가 아니라 은퇴한 교사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배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성이 없는 교사는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전교조에서는 더더욱 인정받지 못해야 합니다. 전교조가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90년대에는 전교조교사=스마트&클린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음. 이 정도 해 두고....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제가 요즘 바쁜 이유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내년도 고등학교 사회교과서를 쓰고 있는데, 교과서 쓰는 도중에 교육과정 자체가 정권의 입맛에 맡게 이리저리 바뀌는 것을 보고 제도권 교과서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안 교과서를 두 종류 개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듀넷 개편 사업까지 떨어져서 일본 속담을 빌리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을 좀 받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적어도 한 두가지 이상의 일들을 맡아서 바쁘십니다. 이렇게 바쁘신 모습들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 분들이 다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뉴라이트 말대로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길거리에서 팔뚝질 하는 분들뿐 아니라 제도권, 비제도권 가리지 않고 교과서, 교재, 소프트웨어 개발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도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박근혜 희망대로 전교조를 교단에서 몰아내면 공교육은 아마 파탄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교조 선생님들의 활약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들이 전교조의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으로 활동하신다는 겁니다. 혹은 거꾸로 말하면 전교조가 그만큼 이 분들을 자기 조직의 명망을 높일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교조 간부생활 1년을 통해 얻은 결론은 전교조가 이 분들을 자산으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활용하려는 시도에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전교조 주류 활동가들이 폄하하는 용어가 "교과 환원주의"입니다. 교과 활동만 열심히 하고, 소위 정치, 노동 투쟁에 소극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폄하 속에는 정치, 노동 투쟁이 우선이고 교과활동은 그것에 복무하는 한 가치가 있다는 일종의 스콜라 철학적 오만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간의 계급 갈등을 봅니다. 한 부류는 아스팔트를 자기들의 무대로 생각하고 민주노총을 자신들의 상급기관으로 생각하는 노동투사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교실을 자기 무대로 생각하고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교육자, 연구자들입니다. 이들이 모두 전교조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습니다. "교직원노동조합"인가 "교직원노동조합"인가? 결국 이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를 놓고 교실파 교사들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반면 아스팔트파는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실파 선생님들은 전교조가 아니라도 활동할 영역이 많고, 인정받을 영역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스팔트파는 전교조가 아니면, 민주노총이 아니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실현할 공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적으로는 소수인 아스팔트파가 오히려 전교조 조직의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두번다시 교실 교사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노동조합관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교실로 돌아가고, 노조 본부에서 물러나라는 것은 인생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가혹한 요청으로 들릴 지경입니다. 하지만 전교조가 살 길은 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내서 교사로서의 마인드를 되살리는 길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오가 당 간부들을 하방시킨것도 이런 이유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전교조 본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누가 지킬까? 나는 지금처럼 각종 시위 5분대기조 역할이 아니라 연구센터 및 전문성 지원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부는 전임자가 아니라 은퇴한 교사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배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성이 없는 교사는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데, 전교조에서는 더더욱 인정받지 못해야 합니다. 전교조가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90년대에는 전교조교사=스마트&클린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음. 이 정도 해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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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4/28 09:11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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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을 지향합니다.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교사의 실천은 교실에서 출발하여 광장으로 거리로 아고라로 그리고 다시 교실로 선순환합니다. 저 역시 지난 한해 미친듯이 거리를 쏴돌아다니며 가투를 했습니다만, 그것은 다시 교실로 선순환되었습니다. 저의 이 블로그들에 쌓여있는 논의들을 뒤져보시면 도서관에서만 해결할수 없는 것들임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몸이 교실에 있냐 아스팔트에 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그러나 그렇게 교실로 선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어떤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에 지향을 두거나, 혹은 단지 전교조 내에서의 입지를 위해서 아스팔트에서 영혼없는 팔뚝질을 하고 있는 그런 집단이 분명 존재합니다. 저에게 아스팔트파는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아스팔트 귀족이라고 해 두죠.
선생님의 지금 모습을 뵙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한 선생님을 아스팔트파라 부르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이 해직기간(저는 2년 안에 복직되신다고 확신합니다. 가정통신문 때문에 해임이라면 채점거부를 한 저도 해임되어야 마땅하겠죠. 전수검사 할줄이야^^ 그래서 걸렸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못한것은 결국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죠. 그만큼 이번 징계의 법리적 고리는 약합니다. 행소가서 이기시고 밀린 월급 목돈으로 받으실겁니다^^ )동안 교실을 끊임없이 그리고 준비하지 않으면 아스팔트파 되기 십상입니다.
저는 본부 전임 1년 했었는데, 딱 1년 그렇게 살다 학교에 돌아오니까 벌써 감이 안잡히고 답답도 하고 해서 무척 고생했습니다. 합법화 99년부터 10년간 거의 6~7년씩 전임 하신 분들. 그 분들은 길거리 천막은 익숙해도 이미 교실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되신 분들 많습니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게 항상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투쟁은 힘으로 적을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편을 많이 만들어서 적을 포위하는 것, 심지어 적의 편까지 내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의 생각을 전염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강요나 세뇌가 아니라).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교실은 아스팔트보다 더욱 무서운 전장일지도 모릅니다.
작년 촛불집회때 청소년들이 너무 쉽게 "사회시간에 배운데로 하는건데 왜 그래요?"라고 경찰에게 따지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실제 그런 내용이 사회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그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투쟁은 이편 너머 저편에 정말 아름다운 이상이 있다는 꿈을 주어야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꿀 능력을 어릴때부터 잘라버리려는 것이 저들의 목적입니다.
부디,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꼼꼼히 읽어보실것을 청합니다. 거기에 교사들이 어떻게 전문성, 투쟁을 조합할 것인지, 그리고 교사의 투쟁 상대는 누구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