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3일
우리나라 사교육의 문제는 사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사교육 문제를 핑계로 학교를 초토화시키는 그리고 아이들의 심신을 황폐화시키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국의 공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과학부 장관이라는 자가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하다"라는 발언을 하고 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게 꼭 요즘만의 문제일까? 사실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한 현상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며, 문제라고 할만한 현상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우수했다. 예를 들면 이미 고려시대에도 국자감 등의 공교육 기관이 사교육 기관인 9재학당(문헌공도)등의 사학12도에 미치지 못하여 왕명으로 공교육 지원책을 발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서 관학인 향교, 성균관보다 사교육기관인 서원이 더욱 융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질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공교육 기관은 관료사회의 특성상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만이 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사교육 기관인 서원은 누구나 학문과 덕망이 있으면 교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는 학문이 높은 선비가 과거나 벼슬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있었고, 설사 벼슬길에 나아간다 할지라도 관학의 선생보다 훨씬 높은 벼슬을 마치 마지못해 하듯이 나아갔다. 따라서 학문하는 선비라면 설사 그가 공명심이 있다 할지라도 선생노릇은 관학보다 서원에서 학자겸 선생으로 명망을 쌓은 뒤 천거되어 나가는 쪽이 관학에서 선생노릇하는 것 보다 훨씬 유리했다. 게다가 관학은 서원보다 통제가 심했다. 어느 쪽으로 유능한 선생들이 몰릴지 명약관화하며, 더 유능한 선생들이 몰려드는 서원을 관학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오늘날의 사교육 문제와 비교하면 매우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사교육 기관은 공교육 기관에 대한 대안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은 관학에 가는 대신 서원에 갈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사교육 기관이라고 알려진 곳은 학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가고 학원에도 간다. 그렇다면 과연 학원을 사교육기관이라고 부를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엄밀히 말하면 각종 대안학교들이 사교육이며, 학원은 사교육이라기 보다는 학교에 덧붙여진 일종의 기생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진의가 의심스러운 교과부 장관은 학교가 학원과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선 학교에서는 학원과 진배없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정말 학원과 경쟁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상황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이다. 정작 학생들은 학교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학원을 가고 있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관학이 쇠퇴할수록 더욱 더 융성했겠지만, 대한민국의 학원은 학교가, 공교육 체계가 사라지면 즉시 존립 근거가 소멸되는 그런 묘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관학과 달리 자신의 고유한 학풍에 따른 학문 체계를 가르쳤지만, 대한민국의 학원은 철저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더욱 더 숙달되도록 하는 요령을 가르친다. 그러니 학교가 어떻게 학원과 경쟁하겠는가? 애초에 다른 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학원에 아이를 보낸다는 부모들의 항변도 그렇다. 공교육이 마저해주지 않는 부분을 학원에서 보충한다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 체제 내에서 서열을 높이려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공교육이 그걸 어떻게 해줄수 있다는 말인가? 공교육의 질은 상수일 뿐 변수가 아닌 것이다. 석차=학교에서 배우는 것+F(추가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많든 적든, 저 추가된 것이 조금이라도 많은 쪽이 이긴다. 막말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구구단만 가르친다면 1차함수만 할줄 알아도 서울대학 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수록, 공교육의 품질이 높아질수록 서열을 높이기 위해 요구되는 '추가된 것'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역설이 나온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취업조건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화려해지는 20대들의 스펙을 보라!
따라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사교육 문제는 도리어 공교육이 너무 강하다는데 있다. 공교육의 제한된 시야와 제한된 내용을 학습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로도 부족해서 학원까지! 반면 사교육은 너무 미약하다. 공교육의 제한된 시야를 보충해주고, 때로는 그 시야와 반대되는 시야를 보여줄수 있는 그런 폭넓은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교육은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다. 만약 고려시대의 12공도, 조선시대의 서원들이 국자감이나 성균관의 교육과정을 답습하고, 그곳 재학생이 그 안에서의 서열을 높이는 과정으로 운영되었다면, 혹은 단지 과거시험 준비하는 곳으로만 운영되었다면 결코 그렇게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굳어버린 관학들에 자극이 되어주는 신선한 사교육기관들이다. 정부가 진정 사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국가교육과정을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가진 사교육기관들을 허용하고 그들에게 예산을 지급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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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꼭 요즘만의 문제일까? 사실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한 현상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며, 문제라고 할만한 현상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우수했다. 예를 들면 이미 고려시대에도 국자감 등의 공교육 기관이 사교육 기관인 9재학당(문헌공도)등의 사학12도에 미치지 못하여 왕명으로 공교육 지원책을 발표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서 관학인 향교, 성균관보다 사교육기관인 서원이 더욱 융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질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공교육 기관은 관료사회의 특성상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만이 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사교육 기관인 서원은 누구나 학문과 덕망이 있으면 교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는 학문이 높은 선비가 과거나 벼슬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있었고, 설사 벼슬길에 나아간다 할지라도 관학의 선생보다 훨씬 높은 벼슬을 마치 마지못해 하듯이 나아갔다. 따라서 학문하는 선비라면 설사 그가 공명심이 있다 할지라도 선생노릇은 관학보다 서원에서 학자겸 선생으로 명망을 쌓은 뒤 천거되어 나가는 쪽이 관학에서 선생노릇하는 것 보다 훨씬 유리했다. 게다가 관학은 서원보다 통제가 심했다. 어느 쪽으로 유능한 선생들이 몰릴지 명약관화하며, 더 유능한 선생들이 몰려드는 서원을 관학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오늘날의 사교육 문제와 비교하면 매우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사교육 기관은 공교육 기관에 대한 대안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은 관학에 가는 대신 서원에 갈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사교육 기관이라고 알려진 곳은 학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가고 학원에도 간다. 그렇다면 과연 학원을 사교육기관이라고 부를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엄밀히 말하면 각종 대안학교들이 사교육이며, 학원은 사교육이라기 보다는 학교에 덧붙여진 일종의 기생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진의가 의심스러운 교과부 장관은 학교가 학원과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선 학교에서는 학원과 진배없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정말 학원과 경쟁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상황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이다. 정작 학생들은 학교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학원을 가고 있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관학이 쇠퇴할수록 더욱 더 융성했겠지만, 대한민국의 학원은 학교가, 공교육 체계가 사라지면 즉시 존립 근거가 소멸되는 그런 묘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서원은 관학과 달리 자신의 고유한 학풍에 따른 학문 체계를 가르쳤지만, 대한민국의 학원은 철저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더욱 더 숙달되도록 하는 요령을 가르친다. 그러니 학교가 어떻게 학원과 경쟁하겠는가? 애초에 다른 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공교육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학원에 아이를 보낸다는 부모들의 항변도 그렇다. 공교육이 마저해주지 않는 부분을 학원에서 보충한다는 것이 아니다. 공교육 체제 내에서 서열을 높이려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공교육이 그걸 어떻게 해줄수 있다는 말인가? 공교육의 질은 상수일 뿐 변수가 아닌 것이다. 석차=학교에서 배우는 것+F(추가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많든 적든, 저 추가된 것이 조금이라도 많은 쪽이 이긴다. 막말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구구단만 가르친다면 1차함수만 할줄 알아도 서울대학 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수록, 공교육의 품질이 높아질수록 서열을 높이기 위해 요구되는 '추가된 것'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역설이 나온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취업조건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화려해지는 20대들의 스펙을 보라!
따라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사교육 문제는 도리어 공교육이 너무 강하다는데 있다. 공교육의 제한된 시야와 제한된 내용을 학습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로도 부족해서 학원까지! 반면 사교육은 너무 미약하다. 공교육의 제한된 시야를 보충해주고, 때로는 그 시야와 반대되는 시야를 보여줄수 있는 그런 폭넓은 학습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교육은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다. 만약 고려시대의 12공도, 조선시대의 서원들이 국자감이나 성균관의 교육과정을 답습하고, 그곳 재학생이 그 안에서의 서열을 높이는 과정으로 운영되었다면, 혹은 단지 과거시험 준비하는 곳으로만 운영되었다면 결코 그렇게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굳어버린 관학들에 자극이 되어주는 신선한 사교육기관들이다. 정부가 진정 사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국가교육과정을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가진 사교육기관들을 허용하고 그들에게 예산을 지급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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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3/13 12:02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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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343550.html
"이들(신해철, 손주은)은 모두 주입식 교육은 학교보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가 더 잘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알고 있는 교육은 주입식 교육밖에 없다. 그래서 실질적인 결론은 공교육의 폐기, 사교육으로의 투항이다. 신해철과 손주은은 퍽이나 다른 인생 역정과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주입식 교육 패러다임’의 포로들인 것이다."
바른 통찰입니다.
대체재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인데..
이건 뭐, 교육청 사람들은 공교육, 사교육을 .. 돼지고기 소고기 보듯..
사람들이 둘 중에 하나 골라먹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입시교육이나 사교육은 모순형용이고 사교육 대신에 수험산업이라고 부르자,라 얘기했습니다만 ...
아무리 공교육을 지원한다 해도 그 차이는 메꿀 수 없을 겝니다.
거기다 공교육을 아무리 지원한다고 해도, 내신제 강화와 함께 그놈의 상대평가제인이상 어차피 현실은 시궁창. 다 같이 공교육 열심히 받는데 더 공부할려면 어차피 학원 가야될 겝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교육과정을 지원하고 국가의 교육과정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좀 의문적이군요.
교육이라는 것은 어차피 먹고사는 문제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의 교육과정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라는 것은 사실일겝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지원 가능한 기관을 이미 보고 있습니다. 대학이지요.
보통 사립대나 국립대는 양자가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취업이라는 대의에 밀려 실제적으로 다양한, 혹은 신선한 교육의 양태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만, 사실 아직까지 마음만 먹는다면 다양한 양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취업이나 먹고사는것과 상관없이 명문대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 가능한 곳이지요. (자기가 노력만 한다면야..)
요는, 그리고 문제는 이 대학이라는 곳을 가기 위한 국가교육과정입니다. 그 기준점의 설정이지요. 신선한 사교육으로 신선하게 대학에 가서 하고싶은걸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체계를 어떻게 구상할 것읹가, 국가교육과정을 그것을 위해 어떻게 바꿀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것이 다시 계급분화의 체계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결국 지원은 딥따 많이 해놨더니 결국 옛날이나 다를 것 없이 될것인가? 변수도 많을 뿐더러, 지원하기도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선한, 다양한 사교육을 말해봤자, 고급적인 것을 배우는건 대학이고 대학 이전에 배우는 건 신선하니 뭐니 해도 대학을 가기 위해 봉사되어져야 할 것입니다.(물론 그것이 기초가 되긴 하겠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사교육이나 입시정책을 바꾸기 이전에 바뀌여야 하는것은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형태를 아무리 바꿔봐야 그게 그겁니다. 궁국적으로는 전문성을 가진 '진짜'전문대가 형성이 되거 그러한 전문대학들이 정통성을 가지게 되는 것과, 현재 있는 4년제 대학중 찌질한 것들이 깨져나가고 제대로 된 곳만 남는 것 정도가 일단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전문대학이라면 '신선한 사교육'을 통한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를 통해 4년제 대학, 즉 주류입시 경쟁을 하는 학생의 숫자를 줄인다면 그것을 위한 관리체계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간편해 질 수 있을 것이고, 역량강화나 문제해결또한 쉬워질 테니까요.
각 학과는 정말 특수한 학과가 아니고서는, 독특하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니기 힘듭니다.
현재 교육에서 수능이 대학에 입학하는 강력한 기재가 될 수 있는것은, 수능만으로 평가하는 문제도 있지만, 수능이 그만큼 강력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는 정도는 되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다른 재능은 간단히 평가하기도 힘들 뿐더러, 평가에 돈도 많이 들지요, 거기다 평가된 재능에 대한 판단 기준또한 모호합니다. 수능은 효율의 문제이지요. 판별이 효율적이고, 왠만한 수준의 기준점으로써의 역할 또한 가능합니다. 명문대가 그렇지 않은 대학보다 좋은것은 대학의 지원도 있지만 '수능을 잘본 학생들은' 유능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재능편별과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수능은 노력의 잣대가 될 수 있고, 지식의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재능판별에도 많은 학과에서 가능합니다. 특히 왠만한 공대나, 경상학과분야의 경우는 확신적이고, 그 학과들이 대학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저는 수능이란 기재도 왠만한 잣대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은 대학 이전의 교육자체보다는 고등교육을 대학 이후의 교육에 꽤나 중점을 두는 면입니다만, (한국 경제가 로우로드 산업을 타는것에 대한 우려로써...)
저는 대학 이전의 교육문제에 대해 교육 자체의 질 향상과, 효율성, 그리고 계급분화 이외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 좋아지기 힘들다고 생각도 하고요.
그러한 면에서 입학사정관제도는 반대입니다. 이것은 계급분화의 형태를 가속화시킬겁니다. 부유한 자식들과 가난한 자식들은 나이가 어릴 때 훨씬 많이 차이납니다. 입학사정관제는 가면 갈수록 평가기준에 있어서 나이를 점점 낮출 것이고, 그를 통해 '물론 공산주의 국가와 같이 태어나자 마자 일을 정해주는'형태는 아닐 지라도 어릴때 가난한 자식들보다 훨씬 유능한 부유한 자식들이 훨씬 좋은 자리를 얻어낼 것이고 그것은 훨씬 더 큰 계급적 결락을 이뤄낼 겝니다. 대학 이전에는 동등하던 애들이 대학 이전에도 분화되는 겁니다.
시행착오의 문제라기 보다는 저는 이를 타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분야는 단순히 생각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적 계급양극화에 대한 문제를 포기한다면 모를까, 저는 현재 상태에서 입학사정관제도에 있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애들은 무조건 명문대 보내자 이런건 아닙니다만...)
대학 이전의 교육은 교육계의 기본적인 질과 효율 향상 이외에,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공교육 수준의 상승을 통해 사교육의 질곡을 약화시키는 것 이외에는 사실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도약을 하기에는 위험이 그만큼 큽니다.
하버드가 유연하다고 아무리 말한다 해도 미국에는 그렇지 않은 대학 또한 많습니다. 저건 되려 미국 교육특성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대학특성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유연한 입시제도라기보다는 유연한 대학특성이 가깝지요. 미국의 초-고등 공교육은 사실 한국수준으로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교육이 약한것은 있겠습니다만, 이거는 국가국민들이 가지는 성격탓입니다. 한국과 비교되기는 힘들지요.
저는 한국이 유럽적(특히 독일) 모델로 가는것이 꽤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상과 상관없이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지요. 이 모델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전체적 변혁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한국교육을 시행착오(혹은 초창기의 진통)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행착오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시행착오라기 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변화시키려 해도, 구조적으로 하위에 속해있는 교육이 가능한 문제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사실 현상태에서는 변화가 되려 '시행착오'라 불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정책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책이 어떤 구조내에서 시행되는가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사회구조 개혁이 힘들다면, 현재의 구조에 순응하는 수준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전에 말하신 대로 가장 보수적인 교과서(구조)라 할 지라도 그 수준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육이 가능해야 하는 겁니다.
구조개혁이 불가한 상황에서는 하향평준화 하지 않고 질을 높이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좋은 방법이지요. 고교 등급제니 아직 멈춰야합니다.. 내신또한 절대평가는 힘듭니다. 현재 구조내에서 질곡을 일으킬 수 있는 형태의 방식은 배제되거나 멈춰있는것이 좋습니다. 다른 정책은, 극단적이라면 반대될 것이고, 적당한 것은 결국 구조에 편입되 더 나쁜 결과만 불러올 겁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교사와 '학생'들이 보게 될 겁니다.
물론 사교육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교육의 질곡은 현재 어떠한 방식으로 입시제도가 변화하든지, 변화히기 힘든 질곡이자, 사회적인 패러다임입니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는것은 불가능하지만, 공교육은 의무적이고 사교육은 선택이라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지만 이 해결은 현재 해결될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공교육을 아직 믿고있는 사람이고, 공교육의 역량향상을 통해 사교육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질곡을 희석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나올 수 있는 대책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선택의 폭이 넓을 겁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사교육은 지금 생각되어져서는 안됩니다. 사교육때문에 입시제도를 바꾼다. 이런 생각은 지금 불필요합니다. 사교육 해결을 위한 방책은 모두 '시행착오'라 불리는 구조적 문제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능한 것은 타협을 통해 '학생을 위해' 질은 높이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이외에 평가방식을 논하거나 그런것은 결국 비극으로 회귀합니다. 사교육을 말하는 것은 변명입니다. 사교육과의 대결? 사교육이 공교육의 타자로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사교육과 상관없이 공교육의 질 향상은 교사의, 학생의, 부모의, 정부의, 모두를 위한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현재구조에 양보를 많이 얻어내야 합니다. 비굴하게라도 많은 양보를 얻어내서 교육, 교사, 학교의 질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교실당 학생수 축소와 같은, 또는 교사 재교육과 같은, 혹은 학교 내 방과후 학생교육 프로그램(물론 하고싶은 사람만 입니다.)이 학생과 부모들에게 환영받을정도로 활성화되고 그를 통해 공교육이 가질 수 있는 위상을, 질을, 수준을 일단 높여야 합니다. 사교육에 대한것을 잊어버리고, 일단 공교육 수준을 상향적으로 평준화시켜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수능이라는 질곡내에서일 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 질곡 내에서 질 향상이 가능하다면 향후 구조개혁이후 질곡 외에서의 상향화도 가능합니다.
많은것들이 아직은 미뤄져야 합니다. 공교육이 경멸의 대상이 되려 할 때, 교사가 경멸의 대상이 되려 할 때, 교육의 기능은 극단적으로 제한되게 됩니다. 수능은 사교육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은 아직 유효하고 효과적인 평가방법입니다. 그리고 하위계급이 선택하기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지금 수준에서 '다른 것'(그 다른것에 어떤 이름을 집어넣든지)을 불러들이는 것에 피해를 보는것은 약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