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학업성취라는 허구

이번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그리고 그 정책을 선전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상식으로 통용되는 내용에 편승해서 그럴듯하게 들리는 그런 말들을 많이 한다. 지난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현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바로 자신이 포률리스트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포퓰리스트의 특징은 대중에게 상식에게 거슬리지 않는 말만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종 대중의 감수성과 잘 맞지 않는 독특한 주장을 많이 했다. 그를 독선적이라고 욕을 할수는 있을지언정 포퓰리스트라고는 욕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주장을 한다. 비극이라면 거슬리지 않는 말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거야 뭐 어쩔수 없는 것이고.

이 정부가 가장 잘 써먹는 상식에 편승한 말이 "학교들을 경쟁을 시켜야 학생들의 학력이 증진되고, 나아가 인적자원이 풍부해진다."라는 말이다. 아마 일반인들은 이 심플한 명제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학자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상식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것들 이면에 있는 보고싶지 않는 진실을 끄집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인 것이다. 이제 나 역시 학력의 이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방정식 모형을 좋아하기 때문에 먼저 간단하게 모형부터 세워보려고 한다. 

A(학업성취도)=C(상수)+B1X1+B2X2+B3X3+B4X4+....BiXi


이런 모형을 일단 세워 보자. 이건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임의의 변인들 i개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때 이 변인들을 어떤 것들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학업성취도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가설들이 세워질수 있다. 그럼 남는 것은 그것을 경험적 자료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1. 현 정부의 모델

현 정부가 주장하는 모델은 이렇다.

학업성취도=C+B1교사의노력+B2학생의노력
교사의 노력=C+B경쟁
학생의 노력=C+B경쟁

논의가 복잡해지지 않도록 여기서 말하는 학업성취도의 타당성 등에 대한 교육철학적 논의는 일단 배제하도록 하고, 순전 성적이라고 치자. 또 경쟁의 성격도 변수에서 배제하고, 모두 공정한 경쟁만 한다고 치자. 교사와 학생의 노력도 꼼수나 기타등등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 등이 아니라 순전히 학습 시간,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만 한다고 치자.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경로모형이 세워진다.

[모형 1]

한 눈에 봐도 이 모형의 설명력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그야말로 30년대, 40년대때 머리띠 졸라 매고 죽기살기로 하면 뭘 못해 사고방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부모세대의 사고방식과 이 모델이 다른 점이 있다면 '교사의 노력'이 상수항에서 변수항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며, 노력을 자극하는 원인으로 경쟁이라는 변인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세대의 모형과 비교해 보자. 우리 부모세대의 학업성취도 모형은 이랬다.

[모형2]

이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잔인한 모형이었다. 한 마디로 노력을 안하니까 공부를 못한 것이고, 노력을 안한 이유는 본인의 심지가 굳지 못한 탓이다. 아마 지금 40대들은 부모로부터 이런 요지의 잔소리를 질리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형1]은 이 부담에서 실패자들을 해방시켜준다.  실패자들에게 가장 손쉬운 비난할 대상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교사다. 즉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와 나란히 선생이 열심히 안가르쳐서가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열심히 안가르친 이유는 바로 경쟁이 없어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정리하면 이렇다.
 
1) 학생들은 원튼 원하지 않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어 있다.
2) 그런데 교사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3) 따라서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
4) 따라서 학업성취도가 낮다.


사실 이건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교사들을 경쟁시킨다는 것은 결국 학생들을 더 경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차라리 [모형2]를 선호할 것이다. 현재 정부의 선동질에 넘어가 [모형1]과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집단은 중고교 재학생이 아니라 졸업생 그리고 그 중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집단들일 가능성이 많다. 한마디로 재수없는 교사들 엿먹어봐라 이 심리다. 즉 내가 철밥그릇 직장 가질 가망이 없으니, 지금 그 직장 가진 놈들 엿먹어라 심리다. 코메디 버전으로 하자면 날씬한 것들은 다 사라져버려라 심리다. 사실 이건 사회조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필자는 다음의 가설이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가설1 중고교 재학생보다 졸업생이 학교간 경쟁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주장에 더 많이 동조할 것이다.

가설2 졸업후 자신의 진로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록 학교간 경쟁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주장에 더 많이 동조할 것이다.
 
이런 심리에 편승한 정책이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퓰리즘은 꼭 돈을 퍼주고 혜택을 주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보다 복잡화된 모델(탐구과제)

우리는 위의 모델이 현실의 극히 일부만 반영함을 알고 있다. 그건 경험칙이다. 세상 일이 저렇게 간단할 것 같으면 누가 못하겠는가? 학력이 저렇게 쉽게 설명될 것 같으면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노예 감독관을 교육부 장관으로 삼아 교사와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긴 지금 이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노예감독관과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모델은 다음의 중요한 사실들을 망각하고 있다.

1) 노력으로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2) 경쟁이 꼭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3)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은 매우 많다.

1)의 경우는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좌절한 많은 학생들의 경험이 그것을 이미 반증하고 있다. 교사로서 나는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상한선 이상을 절대 넘지 못하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봤다. 대체로 평균 80점대 학생들 중에 그런 성실군자들이 많다. 반면 그들의 반의 반 밖에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교1등 하고, 서울대 가고 연고대 가고 하는 얄미운 학생들도 자주 봤다. 노력으로 안되는 것이다.

2)의 경우는 몇해 전 휴대폰과 첨단 통신기기를 이용한 대규모 수능 부정 사태가, 서울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학부생들의 집단 부정행위 사태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이 보강되어야 한다.


[모형3]
                   
두 개의 ? 변인이 추가되었다. 하나는 학생과 교사의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으로서 경쟁이 아닌 다른 변인이다. 이 변인은 경우에 따라서 교사와 학생의 노력과 무관하게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 두번째 ?는 경쟁이 교사와 학생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것에 미치는 영향이다. 모형에는 단지 한 칸씩으로 그렸지만 사실은 이 안에 무수한 변수들이 포함될 수 있다. 화살표를 굵게 칠한 것은 경쟁보다 실은 이 감추어진 변인들의 영향력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노력을 거치지 않고 성취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인으로는 지능,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들 수 있다. 지능은 쉽게 이해 할수가 있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배경은 부자일수록 사교육을 더 시킬수 있다는 수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부자일수록 이미 알게 모르게 습득할 수 있는 지식과 문화자원이 많다는 것이다. 꼭 교과서 놓고 문제 연습한것만 성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은연중에 학습한 것들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

게다가 사회경제적 배경은 노력에도 영향을 준다. 통상 사회경제적 배경이 높을수록 적절한 수준의 성취기대가 주어져서 학생들은 학습동기화가 잘 이루어진다. 반면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을 경우 성취기대가 거의 없거나 (무관심) 아니면 지나치게 높아서(네가 우리집의 희망이다 등등)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또 매클렐란 등 많은 사회학자들은 성취에 영향을 주는 퍼스낼리티에 대한 훌륭한 자료를 많이 남겼다. 즉 성취지향적 퍼스낼리티를 가진 사람이 보다 창의적인 성취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취지향적 퍼스낼리티는 8-10세의 경험이 결정적인데 이때 부모가 이미 성취한 수준, 적절한 관심과 응원, 그리고 탈권위적인 부모가 이런 인성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부모는 이미 성취한 수준도 낮고, 관심과 응원이 과소 혹은 과대하며, 아버지가 가부장적인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무수한 변인들이 성취도, 그리고 학생의 노력에 영향을 준다.

교사의 노력에 영향을 주는 변인 역시 다양하다. 많은 교직이론들은 교사들의 직무태도는 보상보다 존중을 바라고 있으며 이게 무너졌을 경우 적절한 동기형성이 기대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뉴욕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우수교사에 대한 보상을 성과급이 아니라 교육과정 편성이나 신임교사 연수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바꾸었고, 실제 그게 보다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금전적 보상보다는 존중감의 보상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거꾸로 교사들은 금전적 박탈감보다 존중감의 훼손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에 더해 학구적인 학교 분위기, 제반 연구 인프라 등도 교사의 노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변인이 될수 있다.

다음은 두번째 물음표다. 경쟁이 증가할수록 어느정도 교사나 학생이 더 노력할 가능성은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올수도 있다. 이른바 부작용이다. 따라서 학교의 경쟁은 이 부작용이 학업성취도보다 더 심각할 경우 완화되어야 한다. 우선 학생의 경우, 우리나라 학생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경쟁을 하고 있다. 문제는 교사들을 경쟁 붙이면, 교사들이 논문 편수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성취도들 놓고 경쟁할 경우, 당연히 학생들도 더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수들의 경쟁을 강화한다면 말도 더 달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이미 임계치 이상의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말의 상태는 기수가 가장 잘 알듯이, 학생의 상태는 교사가 가장 잘 안다. 이렇게 부작용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교사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말이 더 달릴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강요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임실, 대구, 부산 등에서 터져나온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 100년 전, 독일의 교육행정가인 케르센슈타이너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는 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귀가조치 시키는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독일 공교육의 일대 개혁을 시작했다. 아마 지금도 별 차이 없을 것이다.

그 외 더 많은 변인들을 추가할 수 있지만 , 일단 이 정도 해 두자. 이건 블로그지 논문집은 아니니까. 하지만, 연구꺼리로 일단 담아두기로 하자.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9/02/22 22:08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hagi87.egloos.com/tb/131473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kabbala's me.. at 2009/02/23 09:37

제목 : kabbala의 느낌
‘이미 100년 전, 독일의 교육행정가인 케르센슈타이너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는 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귀가조치 시키는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독일 공교육의 일대 개혁을 시작했다.’ — 부정변증법...more

Linked at metal : MB같이 시간을.. at 2009/03/04 00:01

... 말아줬음 한다.이런거 내가 대안이 있다면 내가 이미 장관자리 꿰찼을거다.게다가 세금 먹고 저런 방향으로 대안만드는게 정치인이다.먹은 값좀 했음 한다.http://hagi87.egloos.com/1314734좋은 참고 했습니다. 사회과학적 분석이 잘 되어 있습니다.부탁이니 이글 읽으신 분은 이 분 블로그좀 많이 들러 주십시오. ... more

Commented at 2009/02/22 22: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2/23 12:37
에구 그러네요. 수정하겠습니다.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9/02/23 04:55
굳이 저렇게 안해도 세계 과학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상대평가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평가의 기준이 엄격하고 그 요구치가 명확할 뿐이죠. 결국 한국보다 더 열심히 그것도 진짜 알기 위해서 공부할 수 밖에 없더군요.
Commented by anonymous at 2009/04/11 21:46
그래도 이튼스쿨같은 학교는 있어야하고, 적당한 경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약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