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전교조와 희망의 싹

무크지 진보평론에 기고한 글입니다. 엄청 긴 글이기 때문에 그냥 패스 하셔도 됩니다.

전교조 위기의 내부 원인과 희망의 싹

 

1. 위기의 전교조

  올해로 전교조는 창설 20주년을 맞이한다. 조직이 성년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지금 잔치는 커녕, 창설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밖으로는 이명박 정부와 네오콘 진영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전교조를 난타하고 있고, 안으로는 정파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내부 응집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탈 조합원의 행렬도 계속되어 2003년 94000명에 달했던 전교조 조합원이 불과 4년 만에 78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젊은 교사들도 전교조를 외면하고 있어 이제 재생산은 커녕 현상 유지조차 힘들다. 전교조는 지금 노쇠해진 활동가들이 하나 둘 일선에서 이탈하면서 일부 지역은 지부장조차 경선이 불가능흔 형편이다. 이를 모두 종합해 보면 전교조는 이미 그 세가 기울어진 조직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여전히 진보진영의 중요한 보루이며 몇몇 현실적인 이유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조직이다. 첫째, 전교조는 형식적으로는 민주노총 산하 연맹이지만, 사실상 민주노총과 동급 조직이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민주노총, 전교조 등 단체들은”으로 보도하지만,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이런 식으로는 보도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조직이기 때문에 발언력은 총파업을 할 수 있는 민주노총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다. 둘째, 전교조는 진보진영의 재벌이다. 거의 100명에 육박하는 직원들(교사 수준의 연봉을 받음)과 전국에 수십 개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전교조는 각종 연대체에서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납부하며, 심지어 수십 개 단체의 연대체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비를 감당하기도 한다. 전교조는 넓은 사무실에 여러 개의 소, 중, 대규모 회의실들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각종 단체들에게 무료로 대여한다.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금속노조 대의원 대회도 전교조 회의실을 빌려서 이루어진다. 즉, 전교조는 진보진영의 물주다. 전교조가 무너지면 진보진영은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압박을 심하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전교조의 상태는 외화내빈이다. 전교조의 동원력은 부쩍 줄어들었다. 90년대에는 교사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폭넓게 동원할 수 있었지만, 현재 전교조는 조합원 1만 명을 동원하기 힘들다. 그나마도 교통비, 숙박비, 식대를 모두 제공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전교조는 대규모 집회 한 번 할 때 마다 수 천 만원에서 1억원 씩 돈을 쓴다. 사실상 전교조가 주최하는 각종 집회, 행사, 연수 등은 기껏해야 1~2천 명 정도가 동원되며, 그나마 참석자도 늘 고정되어 거의 동문회에 가깝다. 정치력도 약하다. 2003년 이후 전교조는 “반대 투쟁”만 일삼는 집단으로 낙인 찍혔는데, 이는 이슈를 선점당하고 끌려 다녔다는 의미다.

90년대만 해도 전교조는 참교육, 교육개혁을 내걸고 항상 이슈를 선점했었다. 교육부는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며 전교조에게 손을 내젓기 바빴다. 그런데, 그 순서가 뒤집혔다. 이제 전교조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집단 비슷한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89년에는 전교조가 와해 압력에 처하자 시민들이 이것이 부당하며,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전교조가 탄압받는 것을 부당하다고는 생각할지라도,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전교조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나? 물론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의 전교조를 지켜야 하나? 그것도 아니다. 전교조는 네오콘의 손아귀에 떨어져서도, 지금과 같은 무기력하고 낡은 모습을 유지해서도 안 된다. 이는 무책임한 이데올로기 공세인 “초심론”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교조가 진보진영의 중심에 서기 위해 먼저 스스로 진보해야 함을 말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조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되는 몇몇 진보의 싹을 소개하는 것이 이 소고의 목적이다.

 

2. 전교조 위기의 원인

  위기의 원인을 정리하고, 그 원인에 따른 내부의 희망의 싹을 찾아보는 것이 논의를 간편하게 할 것이다. 전교조 위기의 원인들을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1) 정파 엘리트 주의와 조직 응집력 저하

  전교조의 응집력이 약해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교사 집단 자체가 이미 사회의 기득권층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교사들이 하층 중간계급인 유럽, 미국과 달리 사실상 상위 20%층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산업노동조합 방식, 혹은 분노와 울분의 80년대식 방식으로 동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금 폐지, 방학 폐지 등의 엄청난 불이익이 나타나지 않는 한 교사들이 단체 행동으로 나설 유인은 매우 적다.

문제는 그런 엄청난 불이익이 나타나더라도 집결된 행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교조의 통합력이 저하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합의 지도부, 집행부와 조합원들, 즉 교사들 사이에 일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조합원들 사이에 조합에 대한 일종의 냉소와 체념적 지지가 만연해 있다. 이는 지도부가 교사들의 불만이나 희망사항 등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즉 조합이 교사들의 욕망의 흐름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전교조는 거대조직이라 평조합원이 조합 지도부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전교조는 일종의 대의제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대의제에서 필수적인 여론 수렴 기구인 정당의 기능을 하는 조직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비공개 정파들이 정당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교조는 ‘참실련’ 과 ‘교찾사’양대 정파가 선거에 참여하며 마치 양당제처럼 경쟁하는 모양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교조의 정파는 정당과는 전혀 다르다. 다음의 표는 전교조 정파와 대의제의 정당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다.

 

비교 항목

전교조 정파

대의제 정당

여론의 수렴과 정책화

어느 정도 수행

어느 정도 수행

여론수렴과 정책과정의 공개

비공개

공개

조직 운영 방식

비공개 조직

공개 조직

조직 구성원

비공개

공개

조직 가입 통로

비공개

공개

구성원 확보 방법

비공개 접촉

공개 가입

유권자에 대한 책임

사실상 없음

어느 정도 있음

간단히 말하면 전교조의 정파는 평조합원들에게는 그 존재자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공개 결사체다. 이들 정파들은 자체적인 폐쇄망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며 정책을 마련하고 선거를 준비한다. 그 결과 위원장이나 시도 지부장 같은 큰 자리를 조직력 없는 평조합원이 선거를 통해 당선한다는 것은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에 무소속이 당선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정파들이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책임성이다. 대의제 정당의 선출직들은 자신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진다. 그러나 선거가 사실상 정파의 조직력에서 결판나는 전교조에서 선출직들은 사실상 자기 정파에게 1차적인 책임을 진다. 지금 전교조의 운영방식은 사실상 1000여명 정도 되는 양대 정파 구성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과두정이나 다름없다. 특히 이들 1000여명의 정파 구성원들은 89년부터 5년간의 해직기간을 함께 보낸 ‘전우’들이라 다른 교사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남다른 연대감과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전교조에도 유리천정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10년째 계속되자 결국 전교조의 동원력은 어지간한 행사를 개최해도 이들 1000여명과 그들과 가까운 조합원 1000명 정도 해서 2000여명이 한계가 되고 말았다.

2) 민주 집중제에서 비롯된 조직의 비효율적 운영

전교조는 항상 한발 늦는다. 집행력도 크게 떨어진다. 이슈도 선점 못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하지도 못하는 조직은 결국 기회주의적이 되거나 모험주의로 빠지기 마련이다. 이게 현재 전교조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왜 이렇게 집행력이 떨어지는가?

그 이유는 조직 구성 자체가 방만하다는 것, 그리고 민주 집중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중 조직 구성 자체가 방만하다는 것은 거대화된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전교조 활동가들이 아마튜어였다는 의미로, 조직관리 전문가가 구조조정을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민주집중제의 경우는 이것이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전교조 규약에 명시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심각하다.

전교조의 조직은 이른바 ‘민주 집중제’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사실 민주 집중제에서 민주는 장식이며 실제는 집중에 있음은 구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한 뒤, 그들의 가혹하고 독단적인 억압통치, 그리고 지금도 온존하고 있는 북한의 철권통치를 통해 명백히 밝혀졌다. 전교조가 민주 집중제에 입각한 규약을 작성한 시기가 동유럽이 무너진 이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애초에 전교조 운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채로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전교조가 가장 큰 힘을 발휘했던 시기는 민주집중제가 가동되지 못하던 시절, 즉 지도부가 체포되고 ‘전교조 신문’도 몰래 돌려 보고, 조합원이 ‘김*동 교사’ 식으로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막상 민주집중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전교조의 역동적인 힘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일부 정파활동가들의 과두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민주집중제로 구성된 전교조는 관료제의 모든 해악의 집대성이다. 우선 의사결정 과정은 한없이 길다.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는 전국에서 선출된 수백 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되며, 원칙적으로 1년에 5번 개최된다. 그런데, 전교조는 투쟁방향, 투쟁지침, 전술 따위도 일일이 대의원대회에서 의결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대의원대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보다 상세한 지침화를 위해 집행부에 위임되며, 이는 다시 중앙상임집행위원회와 중앙집행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중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실시된다. 사안에 따라 중상집에서 처리할 안건, 중집에서 처리할 안건, 중앙위원회까지 가야 할 안건 등이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한 마디로 무슨 일 하나 하려면 절차 따지고, 과정 따지고, 절차상의 문제는 없는지 밤새도록 입씨름 하고, 그 다음에 표결을 몇 차례 거쳐 가야만 하는 구조다. 이 중 가장 빈번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는 매달 정기적으로, 그리고 거기에 더 하여 수시로 개최되는 중앙집행위원회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의결기구가 위원장과 집행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의결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는 위원장이 임명하는 각 집행 부장들과 선출직인 시도지부장들이 결합하도록 되어 있다. 시도지부장들을 모두 위원장을 반대하는 정파에서 차지한다는 비현실적 가정을 배제한다면, 사실상 위원장을 지지하는 세력이 안정적으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보다 상위의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 역시 중집위원들이 당연직으로 포함되기 때문에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한 마디로 의결이라는 형식을 통해 위원장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다. 민주는 단지 위원장을 선거로 선출한다는 의미일 뿐, 그 밖의 권한은 위원장과 그가 임명하는 조합 관료들에게 집중되고, 여기에 다시 민주의 외양을 갖추기 위한 각종 의결기구와 절차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의사결정 과정은 길면서, 정작 최종 결정된 내용은 위원장의 혹은 집권 정파의 독단에 불과한 최악의 결과가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사람들은 현장 활동가들 (주로 분회장이나 지회장)이다. 이들은 저 정치적이고 지난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거의 소외되어 있으며, 결정된 사항을 공문으로 받아 실제 집행하기에 바쁘다. 마치 민주 집중제 국가의 하위 세포와 같다. 어느 분회장은 전교조 본부와 지부에서 내려오는 공문이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보다 더 많다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한다.

3) 대안 부재 -낡은 운동권 이념의 그림자

비단 전교조 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 각종 진보 진영 단체들 모두에게 던져진 쓴 소리가 “대안 부재”였다. 대중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집단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런데 교육운동은 그 시야 자체가 미래를 향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는가? 따라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교육운동단체에게는 치명적이다. 환원론이란 위험은 있지만, 그 원인을 낡은 운동권 이념에서 찾을 수 있다. 진보이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단지 운동권에게 익숙한 이념일 뿐, 전혀 진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권 이념들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속류화하여 요약한 각종 소비에트 교과서들에 기반했다. 심지어 그것마저 어렵다고 하면서 그저 싸움을 주장하는 단무지파도 있었다. 아예 독자적인 생각을 포기하고 정해진 방침과 지침을 단파라디오로 수신 받으면 되며, 다만 성실성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품성론자(오늘날 뉴라이트의 전신)들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재단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어쨌든 그것은 80년대의 꿈이었다.

그런데 전교조는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가시화되던 89년에 설립되었다. 여러 좌파 이론가들이 회의와 당혹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버리거나 수정할 때, 전교조 활동가들은 뒤늦게 그 이론들을 어렵게 학습해 가면서 조직을 세웠다. 어렵고 까다로운 마르크스주의보다는 단순하고 감성적인 반미자주론, 그리고 세상을 단순하게 민중과 가진 자의 대립으로 보는 다소 인민주의적인 담론이 이들에게 특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른 분야의 활동가, 운동가들은 다양한 상호작용과 갈등, 힘겨운 설득과정과 이념적 혼란을 경험하면서 나름 진화해 나갈 수 있었다(아니면 전향하거나). 그러나 교사들의 경우는 안락하며 안정적인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 덕분에 자신의 신념이 붕괴되거나 의심받는 상황을 별로 만들지 않았다. 교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고립된 교실에서 자기 신념을 고집스럽게 고수해도 직접적으로 간섭받지(사실은 교실마다 CCTV를 달기 전에는 간섭 할 수가 없는)않는 직업이다. 1500명 해직교사들의 끈끈한 집단적 연대는 더더욱 신념과 이념을 안정적으로 공고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중년이 되었다. 낡은 이념은 이제 단지 이념이 아니라 이들의 존재론적 안전감의 한 축이 되어버렸으며, 좀체 수정되기 어렵게 결정화되었다. 반면 활동가가 아닌 평조합원들은 애초에 그런 이념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교육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아쉬움, 그리고 해직교사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가입한 교사들이다. 80년대식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소부르주아 감상주의, 혹은 일반민주주의가 이들의 사상적 기반이다. 이들 역시 안락하고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교직생활의 리듬 속에서 특별히 어떤 이념적인 계기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이리하여 전교조는 소수의 80년대 이념(간략화, 조야화된)을 간직한 활동가와 다수의 양심적 소시민으로 구성된 매우 이질적인 집단이 되었다. 이런 조직에서 활발한 대안이 개발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그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정치력이 빈약한 원인이다. 더구나 전교조 활동가들은 다수의 평조합원들에 대해 자신들을 레닌주의적 의미에서 전위로 인식했다. 문제는 80년대 이념 교과서에 따르면 교사의 계급은 소부르주아였기 때문에, 보조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 활동가들은 자기들 조합원인 교사들의 의식을 계몽하는 일 보다는(물론 이 조차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주력군인 노동자 집단과 그 정치조직, 즉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을 더 중요시하였다. 다른 운동단체에 비해 전교조에서만큼은 의외로 소수인 자주파들은 자주파대로 다른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오직 통일과 친북활동(북한 알리기 따위)에만 매진하였다. 민주노총의 전직 위원장과 현직 수석 부위원장, 그리고 한국진보연대의 공동대표, 민주노동당 대표가 모두 전교조 출신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전교조가 그만큼 진보운동에 헌신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만큼 외도를 많이 했다는 의미로, 대안 개발 능력은 없이 그저 사람만 좋은 활동가들이 득세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실제 전교조가 민주노총의 산하조합인지 모르는 조합원이 대부분이고, 전교조가 한국진보연대에 가입했는지 모르는,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조합의 공식입장임을 모르는 조합원이 거의 대부분인 상황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이미 세계는 네트워크 사회, 접속의 시대, 성찰적 근대화, 혹은 탈근대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름은 서로 달라도 이들의 주장은 한 결 같이 탈중심화, 그리고 삶의 정치의 중요성으로 압축된다. 적대하는 양대 계급, 혹은 적대하는 민족국가들의 단순한 대결과 갈등으로 파악되는 단순한 시대가 아니다. 이는 생산력의 토대에서부터 나타난 변화다. 유연하게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자본, 그리고 여기에 유연하게 접속과 분산을 반복하는 명멸하는 각종 비물질 노동의 네트워크가 오늘날의 생산력을 담당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이 탈장소화되고, 탈시간화되었며, 근대의 구획된 시간, 공간에 기반한, 또한 가부장제에 기반한 종래의 노동계급, 노동조합이라는 조직과 노동운동은 사실상의 해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민족국가 역시 정당성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80년대 이념에 고착된 전교조 활동가들은 이런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며, 심지어 중세적인 민족개념에 매몰되어있다. 담배를 끊으라는 권고에 “금연은 양키들의 이데올로기다”라고 반발하는 어느 활동가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시대 읽기에 뒤쳐진 집단이 내어 놓는 비판은 현실성을 갖지 못하며, 설사 강경투쟁을 하겠다고 나서더라도 실제 갈등의 접점이 되는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영역에서 힘을 소진하며 헛수고를 한다. 그래서 번번히 이슈를 선점당해 끌려 다니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며, 지난해 촛불 국면에서 보았듯이 투쟁과 갈등 국면에서조차 존재감이 사라진다.

4) 교육전문성의 부재 - 전교조 내의 계급투쟁?

여기에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있다. 전교조처럼 구성원 전원이 전문직으로 이루어진 운동조직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 전교조만큼 자기 전문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대조직도 찾기 어렵다. 전교조는 교육 분야에서 전문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교육 분야에서 전문화될 의지가 없다.

전교조 활동가들은 “교육노동운동”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 말의 의미를 두고 교육이 노동인가, 교육이라는 노동은 어떤 의미의 노동인가 따위의 심오한 논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교육운동이라 부르기에는 노동계급 중심주의에 걸리기 때문에 노동을 하나 더 붙여 놓은 것이 불과하다. 노동운동이야 말로 운동중의 운동이기 때문에 교육운동도 노동운동의 한 부분집합이 된다는 것을 강변하고, 이를 통해 안도감을 느끼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그 증거는 매우 간단하다. 전교조의 관련 문헌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교육에 대한 철학, 그리고 노동에 대한 철학, 그리고 이 둘을 어우르는 교육노동에 대한 철학과 관련된 문헌이 없다. 단지 곳곳에 “교육노동운동의 전망...”따위의 문건만 난무할 뿐이다. 이것은 80년대에 유행한 지식인, 소부르주아적 근성을 건강한 노동자의 품성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품성론의 연장에 불과하다.

전교조 활동가들의 상당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교사처럼 보이고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노동자처럼 보이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지식이 모자라고, 이론이 없고, 교육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투쟁에 소극적이고, 노동자 문제, 통일 문제에 헌신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예를 들면 전교조 활동가인 어느 영어교사는 미국인과 자유롭게 회화할 수 없음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자랑삼아 말하면서, 이랜드 투쟁에 나가서 몸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엽기적인 풍경은 전교조의 지도급 교사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여전히 전교조의 권력층인 해직교사들 중 해직 기간 5년 동안 자기 전공, 전문성을 계속 연마하고 있었던 교사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해직 교사들의 그리고 전교조의 분위기도 연구와 공부에 시간을 쓸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복직한 이들이 수업에서 자신감을 갖기는 어려우며, 결국 투쟁에서 정체성을 갈구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노동자의 품성을 갖고 싶어 하는 전교조 활동가들에게 노동계급 수준의 보수와 근로시간, 노무관리 방식을 부과한다고 하면 아마 펄쩍 뛰며 교직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운운할 것이다. 그런데고 지난 몇 년간 교원평가 등의 이슈를 둘러싸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 때 부터 전교조는 여지없이 밀리고 말았다. 교직의 특수성과 전문성이라는 말은 꺼내어 놓았지만, 실상 그들에게는 전문성도 특수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전교조 활동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오면서, 전교조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한 교사들, 그래서 각종 공청회나 토론회에 전교조를 대표하여 발언한 교사들은 주로 회화가 안 되는 영어교사, 문제를 못 푸는 수학교사, 경제기사를 해석하지 못하는 사회교사, 고문 사료를 해석하지 못하는 역사교사들이었고, 그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헤비 스모커, 두주불사, 면도하지 않은 얼굴, 더부룩한 머리, 노숙자 겨우 면한듯한 복장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교사도 노동계급임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그게 나쁜 의미에서 노동계급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전교조 교사들이 모두 이렇게 교육에 대해 무지한 것, 나쁜 의미에서 노동자스러운 것은 아니다. 전교조 교사들 중에는 석박사가 즐비하며, 대학에 출강하는 교사들도 즐비하다. 또 전교조 출신의 교수들도 적지 않으며,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모체와 어떻게든 연대할 방안을 찾고자 한다. 또 나름의 학식과 덕망으로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도 도움을 청하곤 하는 그런 교사들도 많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발언권이 전교조의 목소리로 나오기 어렵고, 이들을 전교조의 대표로 내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조의 집행기관과 의사결정기관은 주로 아스팔트 팔뚝질에 능한 “투사”교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밤샘회의, 음주문화, 흡연문화 등을 통해 교묘한 진입장벽을 쳐 놓고 있다. 물론 이들도 최근들어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있다. 그러나 조합의 중심이 투쟁에서 전문성으로 옮겨가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기껏 박사급 조합원을 두명을 본부에 배치해서 전문성의 생색은 내지만, 그들이 농성투쟁에 소극적이고 아스팔트보다 도서관에 더 자주 간다는 이유로 내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계급투쟁을 방불케 한다. 전교조에는 두 가지 상이한 생산수단을 보유한 조합원들이 있다. 한 집단은 팔뚝질과 아스팔트 투쟁의 경험과 의지를 생산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다. 다른 집단은 교육학의 전문지식과 수업능력을 생산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다. 조합의 기본 방침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떤 집단이 조합내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아스팔트 투사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장인 아스팔트 투쟁을 전교조의 중심사업에서 밀어내는 것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전교조를 대표하는 활동가들은 전교조가 교육 전문성이 있음을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이 마지못해 등용한 전문성 있는 인재들마저도 “우리는 마우쓰 탱크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넌더리를 내며 조합을 떠나고 말았다. 아스팔트 투사들은 기본적으로 학문의 중립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직들에게 정치적 결론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닮은 꼴이다. 이명박은 아스팔트를 잠재울 명분을 논문으로 포장하라고 말하며, 전교조 활동가들은 아스팔트로 뛰쳐 나갈 명분을 논문으로 포장하라고 말할 뿐이다. 이러는 동안 전문성과 연구역량이 있는 조합원들은 마침내 전교조에 대해 넌더리를 치며 대학이나 국책연구기관, 혹은 교육청으로 진로를 돌린다.

  3. 전교조 내부의 새로운 운동의 싹

  지금까지 전교조가 무력화된 내부 원인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이러한 위기의 근원을 인식, 혹은 직감하고 여기에 대응하려 한 전교조 내부의 작은 대안적 운동의 싹들을 살펴보겠다. 이미 페이지 비중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위기는 많고, 희망은 적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하지만 내부의 다양성이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조직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전교조의 희망을 읽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절망하지 않을 이유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정파 엘리트주의에의 도전

  2006년 11월,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하나의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전교조 새로운 힘”이라는 이름을 내어 건 공개정파가 선거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교찾사, 참실련 양대 정파가 비공개 카페를 통해 내부 의사소통하는 것과 달리 공개 카페를 개설하고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그들의 슬로건들 중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너무 소중하고 큰 일을 하신 선배님들, 이제는 쉬셔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이었다. 이것은 이른바 전교조 내 진골, 성골 그룹의 원천인 1500 동지회에 대한 공개 도전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전교조 내부에 작은 바람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조직력에서 성패가 갈리는 전교조 선거의 특성을 극복해내지는 못했다. 또 이들은 공개된 정파라는 점에서만 구별될 뿐, 기본적인 이념과 운동 성향 등에서 기존 전교조 활동가들과 크게 구별되지 않았고, 기존 정파에서 탈퇴한 활동가들이 주축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1500 동지회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그리고 “학생에 의한 교원평가”라는 주장 외에 특별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세가 확장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전교조의 정파 엘리트들, 과두정 집단에 대한 최초의 공개적인 도전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도발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우선 교찾사, 참실련이라는 정파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평조합원들이 이런 비밀 정파가 마치 엘리트 집단처럼 권력을 독점해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크다. 그리고 작지만 정파에 대한 공개요구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도 이후 전교조의 변화를 가져올 작은 싹이 될 것이다.

  2) 운동 관료주의를 묵살하라 -일제고사 대응 투쟁에서 보여준 자율주의적 전망

  정세는 급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관료제 조직을 기반으로 한 민주집중제의 둔한 몸통을 가진 전교조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일제고사 거부 운동이었다. 결국은 전국적으로 10여명의 교사들이 해임, 파면되고 말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전교조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제고사 거부행동을 함으로써 파면, 해임된 교사들은 전교조 조합원들이다. 그러나 일제고사 거부 행동의 전반은 전교조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런 사안이 발생할 때 전교조의 전형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일제고사 거부운동을 당면 투쟁방향으로 설정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의한다. 이는 통상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의한다. 여기에서 통과되면 정책실에서 일제고사 거부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결정하여 이를 중앙상임집행위원회에 올리고, 여기서 첨삭을 거친 뒤, 다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의결한다. 이렇게 되면 이 방침은 공식적인 전교조의 방침으로 확정되며 지부-지회-분회 연락망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전달된다. 이런 식의 행동 결정은 세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1)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민한 행동을 하기 어렵고, 2)관료적 의사 결정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창의적인 행동방식보다는 관행적 투쟁지침이 나오기 쉽다는 것, 3)모든 조합원이 같은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현장 조합원에게는 그 투쟁 수위가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결정되는 행동방침은 강력하지만 소수만 참가하거나, 다수가 참가하지만 그 수위가 김빠지는 수준이거나 둘중의 하나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의 일제고사 거부운동은 이전과 매우 다른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교사들이 전교조 본부의 의사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의 거부 행동을 알아서 실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현상이다. 해고당한 교사들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거부 행동들이 현장 실정에 맞춘 각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시험감독 사보타지 내지는 거부, 채점 거부 혹은 전원에게 만점주기, 일제고사 독려를 요구하는 교장의 요청을 묵살하기 등등이 그렇다. 둘째는 전교조 본부나, 기존의 오래된 전교조 우군 단체들과의 연대투쟁하지 않고, 이른바 아고라, 촛불 세력, 혹은 비운동권 단체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 해고된 7명의 교사들 중 무려 세 명이 배출된 강동 지역의 경우, 전교조 강동-송파 지회의 무관심 속에서 ‘강동 촛불’ 카페와 연대하여 다양한 홍보, 퍼포먼스 등을 펼치고 있다. 아래의 투쟁 계획서(?)를 보면 그 동안 전교조, 민주노총 등이 공식적으로 펼쳤던 집회, 농성 등과 얼마나 다른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이 싸움을 주도하고 있는 최혜원 해직교사는 전교조의 어떤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 조합원이다.

랄랄라 투쟁 1박2일 계획

7일 밤 7시 반 길동초 앞으로 모여랏!

거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서명도 좀 받고 알리는 종이도 좀 나누어드리고,

9시쯤에는 정리하고 1박 2일을 본격적으로 시이~작!!

일단 모이신 분들 함께 자기소개를 하고 명찰을 답니다.

손팻말이나 이야기 적힌 판들을 쭈욱~ 교문 앞 벽이나 나무에 세워놓고,

함께 살 부대끼며 친해지기 위해서 운동장에 모여 운동장 놀이를 합니다!

놀이는 제가 진행하구요, 놀이 종류는 약 3~4가지!

뛰고 나시면 땀이 쭈욱~ 빠지는 기가 막히는 운동장 놀이! (두구두구두구~~~ 개봉박뚜우!!!)

놀이를 마치면 좀 많이 힘이 들겠지요?

아마 11시쯤 될텐데, 그때 되면 배도 슬슬 고플테니,

복불복 게임~!!!! 으로 맛있는 식량을 나누어 먹어요~*

(냄비 라면과 컵라면 쪼꼬만거를 놓고 복불복 게임 해서 먹고 싶은 거 먼저 먹기!)

라면 말고도 뭐가 가능할까요? 비빔밥 뭐 이런 거 말씀하시던데...

아니면 각자 나누어 먹을 식량을 조금씩 싸오는 건 어떨까요? ^-^*

식량을 나누어 먹으며 촛불을 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며 놀아봅시다~!!

돌아가면서 자기 가진 재주 자랑도 좀 하고요. ^-^*

 

그러면 새벽 1시~ 2시 쯤 되겠지요? 그리고선.. 음, 뭘 할까요?

아! 학교 공포체험, 어때요? 푸하하하하~

둘씩 짝지어서 무시무시한 학교 탐방하기? ;;;;; -_-;;;;

뭐 그리고서 자야죠! 크흐...

원래 1박2일의 묘미는 잠자는 데에 있는데...

침낭 가져와서 자는 건 어려울 것 같고;;; 흠. 차가 있으신 분은 가져와서 거기서 주무셔도 좋고,

그게 아니면 진짜로! 돗자리에 침낭깔고 자도 좋겠네요!

-_-;; 입 돌아가려나? 크흐흐...

다음날 아침 6시! 반짝이는 아침햇살을 등 뒤로 하고,

1박2일 참가자들과 함께 쌩얼로 인증샷(?!) 을 찍고 석봉토스트로 가서

맛난 아침을 먹고 헤어집니다. 빠이빠이~~~*

 

 

이것은 작은 씨앗이지만 장차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다양한 억압과 침탈에 대항하기에 전교조 거대 관료조직에게 기대할 바가 없음을 현장의 교사들이 누구보다 먼저 본능적으로 깨달았음을 보여준다. 이들 해직교사들이 주로 20, 30대 젊은 교사들이라는 사실 역시 기존 전교조 조직의 낡은 운영관행에 경고를 던지는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긴급한 문제가 발생할 시 젊은 교사들은 조합의 공식 결정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나름대로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대망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교조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이런 약동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이 기회의 조직을 관료제에서 네트워크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새로운 기회가 되겠지만, “조직의 공식 방침에 따르지 않는 행동을 중지하라”따위의 발언이나 한다면, 결국 안으로부터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상황은 오히려 후자에 가깝다.

  3) 낡은 이념에의 도전 -탈근대적, 성찰적 교육운동을 향하여

  노동자계급(산업노동자)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중연대에 의한 자본가 계급의 타도, 혹은 범 민족 연대를 통한 미국과 친미세력의 축출. 80년대 출신들의 뇌리에는 이 두 가지 운동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이 두 가지 근본투쟁에 유리하게 복무하는 한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전교조 활동가들의 뇌리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교육역시 아동, 청소년의 권리와 복지보다는 저 근본 투쟁을 위한 도구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했다. “차이”, “다양성” 같은 말은 거의 “악”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교조의 낡은 이념을 낡았다고 선언한 활동가들의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매우 이질적이다. 탈근대 담론이나 들뢰즈-가타리의 영향을 받은 유목주의자들,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영향을 받은 숙의 민주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네그리의 영향을 받은 자율주의자들도 있고, 여기에 건강, 생태주의, 문화운동론, 소수자, 아동-청소년 권리 운동론 등이 다양하게 모여들었다. 심지어 통일운동 세력까지 여기에 끼어들었다. 그 동안 전교조의 주류 담론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던 다양한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던 활동가들이 모여서 “교육운동 네트워크”라는 느슨한 연대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전교조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2006년 12월 위원장 선거에서 자신들의 전문성 부족, 담론 부족을 절감한 참실련 집단은 이들을 영입함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 진영인 교찾사 진영의 “말빨”에 대항하려 했다. 특히 노마돌로지, 네그리주의, 비판이론 등은 마르크스 사상에 어느 정도 정통한 바탕 위에서 학습이 가능한 사상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영입은 교찾사 진영의 논리를 허물어뜨리거나 교란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참실련은 “교육운동네트워크”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 했고, 네트워크 내부의 통일운동 세력은 여기에 동조하였다. 마침내 이를 견디지 못한 노마돌로지, 네그리주의자들이 사실상 네트워크를 자폭시켜 버림으로써 현재 이 운동은 거의 해체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의 일부 핵심 활동가는 여전히 인터넷 공간에서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전교조 외부에 새로운 연대망을 형성해 가고 있다. 특히 이들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참실련을 대신하여 교찾사와 치열하게 논쟁하는 과정에서 교찾사 활동가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4) 교육전문성에의 요구 -먼저 교육의 비전을 보이라

  전교조의 가장 치명적인,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약점인 ‘교육전문성 부족’에 대해 내부 반성이 많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 또 아스팔트 활동가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강한 권력 지향적 성격에 실망하고, 전교조 공식 조직을 통한 교육운동의 한계를 느낀 활동가들이 늘어난 것도 당연하다. 이런 전교조 활동가들이 별도의 교육전문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조직이 ‘스쿨 디자인21’이다. 이는 인터넷 카페인 ‘새로운 학교 연구 모임’에서 확대된 단체로, 주로 핀란드, 북유럽, 그리고 독일의 헬레네 랑에, 프랑스의 프레네 학교 등의 이론과 사례를 연구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교육개혁, 학교개혁의 대안을 개발하려는 모임이다. 아직까지는 그 세가 미약하지만, 전교조 활동가들이 교육의 전문성에 눈을 뜨고 있다는 신호로서의 의미는 있다.

그 밖에도 교육적 전문성이 높은 전교조 교사들이 진보적인 교육학자들과 모여서 진보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고민하는 공식, 비공식 적인 모임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모임이 학술진흥재단에 ‘시민교육철학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소규모 학술단체다. 이들은 상당히 정례화된 콜로키움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구성원들은 장차 대안적인 교육학회를 발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공유하고 있다. 이 모임의 대외적인 대표는 국립사범대학의 교수로 되어 있지만, 실제 세미나는 전교조 교사들 중 학구파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모임들이 차차 조직화 될 경우 진보진영의 독자적인 교육학 이론과 공교육의 모델이 보다 전문적인 모습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발원, 평가원과 동등한 수준의 연구 기관을 수립하는 것은 일개 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학의 다중지성이 끊임없이 접속하고 명멸하는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고 유지시켜주는 일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교조가 자신의 교육학적 위상을 세울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교육학적 위상을 세울 수 있을때 전교조는 비로소 현재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길로 전교조가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은 바로 현재 지도부에게 만연해 있는 산업노동조합주의(Trade Unioism)다. 전교조가 이런 산업노동조합주의를 극복하고 전문직노동조합주의(Professional Unioism)를 공식적으로 채택할 수 있느냐가 장차 전교조 운동의 미래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전교조 위기의 근원과, 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희망의 싹을 살펴보았다. 항상 위기가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는 말은 낡은 격언이 아니며, 이 경우에도 성립된다. 결국 전교조가 이 작은 싹들을 키워나갈수 있느냐에 현재의 위기가 파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이 될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이는 전교조에게 이명박정부의 탄압을 돌파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이는 조직 구성의 유연화, 경직된 이념의 다원화, 노동, 통일운동 헤게모니의 포기, 그리고 산별노조주의(Trade Unionism)의 포기와 전문직조합주의(Professional Unioism)의 채택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전교조 주류 활동가들은 ‘노동’이라는 글자에 주술이 걸려있기 때문에 전문직조합주의를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어쩌면 전교조는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걸어간 사적 이익단체로의 위상 축소의 길, 혹은 모험적 정치주의로 인한 파멸 둘 중의 하나로 굴러갈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 출신 교사들 중 이미 새로운 교육운동의 싹을 지펴나가는 활동가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설사 전교조가 파멸의 길을 갈지라도 89년의 전교조 운동의 위상을 재현할 그런 교육운동의 힘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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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2/11 15:10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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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1 15:49
진보평론은 무크가 아니라 계간지 아닌지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2/11 16:06
아, 그런가요? 글을 내면서도 잡지의 성격도 잘 모르고 있었네요^^
Commented by 여진 at 2009/02/11 22:51
와..시간내서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정말로~^^
Commented by 카구츠치 at 2009/02/12 01:16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원인 분석부분은 대학 운동권이 왜 망해가는가에 대한 논리로도 쓸 수 있겠다 싶네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2/12 20:12
고맙습니다 .지금 진보에게는 우정어린 비판이 너무 절실합니다.
Commented by 롱산 at 2009/02/12 11:02
저는 조합원입니다. 근년들어 전교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회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규모만 커지고, 늘어난 조합원의 대부분은 교육 전교조 모두에 거의 무관심합니다. 이런 점에서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전교조에 대한 회의는 교육과 산업에 대한 현황 전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 교육제도 아울러 정치행위 등 어느 것도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데 기여 작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이에 로령 전교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전교조는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새로운 전망 아래 전교조를 대체할 새로운 조직-소규모 활성조직 이 생겨나야 한다고 봅니다. 무기력하고 로쇠하며 둔해버린 전교조에 신진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전교조 그 이름과 명예 아름답게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요즘 들어 간절합니다.

그리고 글쓴이께서 지적하신 전교조의 '불편한 진실'은 폐해를 두둔하려는 뜻을 떠나 이 나라 로동운동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봐야 할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9/02/12 12:17
결국 전교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전교조가 혁파되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2/12 20:14
이미 진작 혁파되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부대변인이라는 전교조의 고관(?)을 지냈던 저 역시 이 책임에서 비켜갈 수 없습니다만, 이제는 전교조 세대는 교육운동에서 자기 소임을 다 했다고 보여집니다.
Commented by ssed at 2009/02/13 15:55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읽고나니 가슴이 막막해지네요.
촛불교사를 대량 배출한 동네 주민이기도 하고,
그 곳에서도 양질의 사교육을 장기간동안 받아온 저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네요.

현직에 나가서 반드시 전교조의 일원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문제점을 넘어 교육 전문성을 높이고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9/02/15 20:41
정진하시고, 설사 전교조가 떡판이 되더라도 반드시 의식있는 교육자의 조직은 생겨날테니 늘 깨어 있으세요^^
Commented by 교사-1 at 2009/12/01 17:36
답답합니다만 과거 분회장 시절 벽에 부딪힐 때마다 교장, 교감보다 소위 현장활동가와 오히려 싸워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관료조직보다 더 관료적이고 편의적인 조직으로 전락한 지금....우호적인 손길도 보내지 못하는 개인적 아픔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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