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03일
엘리트교육 성공의 전제
수월성 교육이란 말을 지난 정권부터 참 많이 들어왔었다. 참고로 지난 정권인 노무현 정권은 절대 좌파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였고, 세계화론자였으며, 경쟁주의자였다. 또한 지난 정권의 교육 철학도 끊임없이 수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월성이란 해괴한 용어는 excellency를 일본식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어쨌든 간에 탁월한 부분을 교육한다는 의미다. 공부잘하는 애들 따로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상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따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미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말이 항상 "똑똑한 하나가 백명을 먹여살린다."라는 듣기에 그럴듯한 말이다. 철학교육이 부재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말이 들릴때, 분석적으로 씹어보지 않는다. 그냥 듣기에 그럴듯하면 끄덕끄덕해버리고 만다. 대개 이런 부류들이 이명박 지지자로 남아있고, 한나라당을 찍는다. 사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공화당 지지자가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고, 농촌에 거주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이 말을 잘근잘근 좀 씹어 먹어야 하겠다. 우선 여기서 사용된 똑똑한 의 의미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이건 제일 뒤의 서술어인 '먹여 살린다'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똑똑한 의 의미는 먹여살릴수 있는, 즉 가치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획득할수 있는 능력이 탁월함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 똑똑함은 아이큐가 높다거나 등등의 객관적인 특성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먹여살릴 능력은 항상 먹고 살 세상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500년 전이라면 농사 잘 짓는 능력이 먹여살릴 능력이었을 것이고, 산업사회라면 주어진 과업을 빈틈없이 완수하는 성실함과 꼼꼼함이 먹여살릴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정보사회에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인 오늘날에는? 지식 정보를 창출할수 있고, 이를 소통 속에서 획득할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다. 결국 소통과 창조다.
따라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소통능력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가 백명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당장 모순이 발생한다. 소통능력이라 함은 타인과의 활발한 정보교환과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또한 이 관계는 수평적 관계를 전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시가 되지 소통은 아니다. 하지만 백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에는 이미 일방주의가 들어있다. 하나가 열심이 벌어서 백명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전혀 소통적이지 않다. 먹여살리는 하나가 받아먹는 백명에게 지시하는 입장에 설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소통능력이 뛰어난 똑똑한 하나라면 백명을 받아먹게 두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백명과 함께 먹고살거리를 획득하러 나설 것이다.
게다가 소통 그 자체가 자원이 된 오늘날, 백명이 함께 하지 않으면 먹고살 자원을 획득하기도 쉽지 않다. 혼자 머리 싸매고 노력해서 성공하는 고학생의 신화, 그것은 이제 고시 패스가 곧바로 성공을 보장하던 공식의 붕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똑똑하든 아니든 간에 "하나"는 백명은 커녕 혼자 먹을수도 없다. 백명이 함께 하면 2백명을 먹일수 있어도, 하나가 나서면 한명도 먹일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소통능력이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는 백명을 조화롭게 조직하여 함께 잘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인재를 가꾸어 내는 것이 수월성교육이 될 것이다.
이런 말만 나오면 노인네들이 혹은 이해하는 척 하는 그러나 결국은 저들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상은 그렇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다. 이런 말도 다 헛소리다. 내가 제시한 마지막 문장은 나의 이상론이 아니라 사실은 현행 교육과정의 교육목표를 풀어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대로 하겠다는 것 조차 이상론으로 치부된다면, 그 나라 공교육은 그냥 집어치우는 것이 났다. 그러니, "소통능력이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는 백명을 조화롭게 조직하여 함께 잘 살아간다." 이것을 수월성교육의 모토로 삼거나, 아니면 공교육을 아예 포기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경우는 아무리 비틀어 생각해 봐도, 홀로 고독하게 시험문제 푸는 연습을 정진 또 정진 해서 높은 점수 받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은 백명을 먹여살리는 인재가 되기는 커녕, 백명의 지원을 받아야 유지되는 나약한 귀족만 키우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그런데 이 수월성이란 해괴한 용어는 excellency를 일본식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어쨌든 간에 탁월한 부분을 교육한다는 의미다. 공부잘하는 애들 따로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상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따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미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말이 항상 "똑똑한 하나가 백명을 먹여살린다."라는 듣기에 그럴듯한 말이다. 철학교육이 부재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말이 들릴때, 분석적으로 씹어보지 않는다. 그냥 듣기에 그럴듯하면 끄덕끄덕해버리고 만다. 대개 이런 부류들이 이명박 지지자로 남아있고, 한나라당을 찍는다. 사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공화당 지지자가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고, 농촌에 거주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이 말을 잘근잘근 좀 씹어 먹어야 하겠다. 우선 여기서 사용된 똑똑한 의 의미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이건 제일 뒤의 서술어인 '먹여 살린다'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똑똑한 의 의미는 먹여살릴수 있는, 즉 가치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획득할수 있는 능력이 탁월함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 똑똑함은 아이큐가 높다거나 등등의 객관적인 특성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먹여살릴 능력은 항상 먹고 살 세상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500년 전이라면 농사 잘 짓는 능력이 먹여살릴 능력이었을 것이고, 산업사회라면 주어진 과업을 빈틈없이 완수하는 성실함과 꼼꼼함이 먹여살릴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정보사회에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인 오늘날에는? 지식 정보를 창출할수 있고, 이를 소통 속에서 획득할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다. 결국 소통과 창조다.
따라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소통능력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가 백명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당장 모순이 발생한다. 소통능력이라 함은 타인과의 활발한 정보교환과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또한 이 관계는 수평적 관계를 전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시가 되지 소통은 아니다. 하지만 백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에는 이미 일방주의가 들어있다. 하나가 열심이 벌어서 백명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전혀 소통적이지 않다. 먹여살리는 하나가 받아먹는 백명에게 지시하는 입장에 설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소통능력이 뛰어난 똑똑한 하나라면 백명을 받아먹게 두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백명과 함께 먹고살거리를 획득하러 나설 것이다.
게다가 소통 그 자체가 자원이 된 오늘날, 백명이 함께 하지 않으면 먹고살 자원을 획득하기도 쉽지 않다. 혼자 머리 싸매고 노력해서 성공하는 고학생의 신화, 그것은 이제 고시 패스가 곧바로 성공을 보장하던 공식의 붕괴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똑똑하든 아니든 간에 "하나"는 백명은 커녕 혼자 먹을수도 없다. 백명이 함께 하면 2백명을 먹일수 있어도, 하나가 나서면 한명도 먹일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소통능력이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는 백명을 조화롭게 조직하여 함께 잘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인재를 가꾸어 내는 것이 수월성교육이 될 것이다.
이런 말만 나오면 노인네들이 혹은 이해하는 척 하는 그러나 결국은 저들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상은 그렇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다. 이런 말도 다 헛소리다. 내가 제시한 마지막 문장은 나의 이상론이 아니라 사실은 현행 교육과정의 교육목표를 풀어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교육과정대로 하겠다는 것 조차 이상론으로 치부된다면, 그 나라 공교육은 그냥 집어치우는 것이 났다. 그러니, "소통능력이 뛰어나고 창의력 높은 하나는 백명을 조화롭게 조직하여 함께 잘 살아간다." 이것을 수월성교육의 모토로 삼거나, 아니면 공교육을 아예 포기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경우는 아무리 비틀어 생각해 봐도, 홀로 고독하게 시험문제 푸는 연습을 정진 또 정진 해서 높은 점수 받는 기술을 획득하는 것은 백명을 먹여살리는 인재가 되기는 커녕, 백명의 지원을 받아야 유지되는 나약한 귀족만 키우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 by | 2009/01/03 21:0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정작 그 현실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 문장에 대한 비판은 첨 봅니다 ㅍㅍ 머릿속에 잘 넣어두고 다녀야겠어요 ㅋㅋ
포스팅 평소에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이래서 저는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정규 교육에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이데올로기로 얼룩져 말만 윤리이고 도덕이지 전혀 윤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교과 내용은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으며,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리고, 도덕이라는 과목은 정말 없어져야 하고 철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실제 교육과정평가원의 도덕과 담당하시는 분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 정보의 소통이 아닌 정보의 통제와 차단.
교육에 대한 생각부터가 정말 잘나가는 나라입니다 OTL
잘 까셨어요.
국어시간에 저 말을 가지고 토론수업하는것도 재미있겠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방에서 인터넷이 안되서 까페에서 밥먹으며 글올리기..ㅜ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르고 일하고 싶어하지 않고 노력없이 댓가만 바라는 사람들이란 거죠. 그걸 항상 잊어버리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