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01일
굿바이 맨큐의 경제학, 하지만 대안은 어디에?
“굿바이 엉터리들(hacks: 속어인데 뜻이 무척 많다.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사람들이란 뜻에서 전세마차에서부터 삼류소설가를 지나 매춘부까지..). 뭔가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는 걸 환영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이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 다가오자 던진 한 마디다. 당연히 졸병들은 부시 정부의 경제 정책 담당자들, 즉 통화주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고, 뭔가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통칭 케인지안,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일 것이다.
그러자, 노발대발한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 크루그만이 노벨상 받기 전만 해도, 그리고 전세계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번지기 전만 해도, 그래서 미국적 경제가 최상의 경제라고 믿고 있던 시절만 해도, 마치 경제학의 대명사, 거의 유일한 경제학자 처럼 떠받들어졌던 그레고리 맨큐다. 당연히 노발대발할수밖에 없는 것이 맨큐는 부시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냈으니, 굿바이 소리듣는 엉터리가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뻔한것 아닌가?
그러자 크루그먼은 부랴부랴 “친애하는 그렉(그레고리의 애칭). 나는 팀 가이트너(오바마의 재무장관 지명자)와 존 스노(부시의 재무장관)를 비교한 것이지 당신을 말한 건 아니었다”라고 둘러대었지만, 그걸 믿을 맨큐도 아니고, 또 믿을거라 기대한 크루그먼도 아니다.
이 치열하면서 잔혹하기까지 한 비방전(?)은 오늘날 보수/진보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바로 경제학을 두고 벌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이야 말로 중세의 기독교를 대신하는 세속의 종교임을 간파했다. 그가 온갖 잡다한 철학적 논설에서 대담하게 경제학으로 전환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적 중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지만, 이제 이데올로기 대결은 그 곳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일부 무지함으로 인해, 일부 무능함으로 인해 우파적 경제학의 독주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바로 "맨큐의 경제학"이 "맨큐"의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학" 행세를 하도록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그건 그 동안 한국의 진보진영(혹은 자칭 진보진영)의 다수를 점한 엔엘 계열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반지성주의적 성향(품성론의 영향을 받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래서 조금만 머리를 쓰게되고 머리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이론이 무슨 소용이냐! 중요한건 실천이다, 투쟁!"을 외쳐대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맨큐
의 경제학은 배웠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를 익히는 유일한 관문으로 자리잡았고,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도대체 특정 진영의 경제관 외의 것은 이해할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사실 맨큐조차 넓게는 케인지안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맨큐의 경제학 책에서는, 특히 간추린 맨큐의 경제학 책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수 없다).
심지어 어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 대신 맨큐의 경제학을 이용해서 수업을 한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 무지한 교장의 발언의 배후는 "우리는 신통화주의 경제학을 가르친다"가 아니라 "우리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책을 가르친다."였다.
이건 진보진영이 신경썼으면 충분히 막을수 있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그 반대편에 선 경제학자들 역시 훌륭한 교과서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비로소 새로이 서점에 마구 공급되기 시작하는 폴 크루그만의 경제학 입문만 해도 그렇다. 앞의 자사고 교장에게는 어쩌면 이게 더 매력적일수도 있겠다. "우리는 노벨상 받은 사람의 책을 교재로 쓴다."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실, 이 책이 이미 2판이 넘어간 1997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유행에 따라 슬그머니 나온것이 불만이다. 10년전부터 크루그먼이 맨큐의 대항마로 경제학 교육에 널리 보급되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미네르바가 탄생할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진보진영은 크루그먼을 외면했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엔엘 쪽에서는 그래봐야 미국놈이라는 논리였을 것이고, 피디쪽에서는 그래봐야 자본주의 범위 안에 있는 주류경제학이라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마르크스라도 꼼꼼히 독해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각종 논쟁의 핵심은 경제 아니면 생태, 혹은 경제와 생태다. 경제에는 경제학이, 생태에는 자연과학이 필수적이 교양이 되고 있다. 이 두 학문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으면 아예 논쟁이 먹히질 않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당국자에게 마르크스를 들먹이며 논박해봐야 먹히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케인즈까지도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먹힌다. 이건 아주 중요한 차이다. 게다가 맨큐의 경제학조차도 잘 분석해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점을 많이 찾아낼수 있다. 이건 더더욱 중요한 차이다.
때 늦었지만 이제라도 크루그먼의 경제학이 번역되어 출판된 것을 축하해야 하나?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이게 날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격한 단정적 표현을 서슴치 않는 젊은이들에게 쓰레기라는 말로 불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노벨상 효과에 편승한 반짝 마케팅 이상을 생각하지 않은듯한 느낌, 맨큐의 경제학 독점이라는 이상한 한국적 상황을 극복할 경제학의 균형회복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만든 책이 아니라는 느낌, 그래서 35000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값으로 반짝 이윤만 먹고 떨어지려는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번역자 프로필을 보면 기가 막힌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과학사연구소의 연구원을 거쳐 현재서울대 기초교육원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에너지, 힘,물질> <대폭발> <180억 광년의 여행> <물리상수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으로 본우주> <물리학 강의> <우주가 지금과 다르게 생성될 수 있었을까?> 등이 있다....
(이 부분은 제가 잘못알았네요. 사실은 알라딘에 출판사가 제공한 번역자 정보가 엉터리가 간 것이었겟죠. 번역자 분은 물리학과 졸업한 것은 맞지만, 석사부터는 경제학을 하셨네요. 도대체 출판사가 인터넷에 이런 잘못된 번역자 정보를 올려놓고 1년이 다가도록 교정하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이게 무슨 소설책 번역하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가 뚝딱 심보였거나, 아니면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들이 이 책의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발 경제위기, 노벨상 수상,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기대만큼 판매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맨큐의 경제학이 한국을 이렇게 휩쓴것이 꼼꼼하고 세련된 편집작업, 그리고 교보문고의 공들인 마케팅 때문임을 생각하면, 경제학자 중에서도 특히 수려한 문장가로 때로는 독설가로 손꼽히는 크루그먼이 정작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되면서, 이런 취급이나 받는다는 것이, 그리고 소위 진보적인 경제학자라는 분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돈 벌 생각이 아니라, 정말 공공의 이익과 지성을 위해 그야말로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번역부터 시작해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별화될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책의 하드커버본이 150달러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무려 35000원이나 하는가? 오히려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경제를 알아야 하기에 등등의 멋진 수사법을 동원하면서 20000원 이내에 페이퍼북을 낼수도 있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또 하나 안타까운 사례가 스티클리츠의 경제학이다. 사실 스티글리츠는 이미 200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고,
또 경제 사상이라는 면에서는 크루그먼 보다 더 독창적이라고도 할수 있는 학자다.
게다가 그는 애초에 기념비적인 교과서를 목표로 이 책을 저술했다. 1900년의 알프레드 마셜, 1960년에 사무엘슨이라면 2000년에는 스티글리츠라는 대단한 자신감과 야심을 가지고 매우 공들여 만든 경제학 교과서다. 게다가 번역도 잘했다. 진보적인 혹은 중도적인 경제학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번역한 흔적이 엿보인다. 맨큐의 경제학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나중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맨큐의 경제학 대신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을 보아야 할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완역을 하지도 않았다. 총 40개 장중 26개 장을 임의로 골라서 번역해 내고, 완역본은 나중에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이라는 책으로 내겠다고 머리말에 써놓았다. 그러니 망할수밖에 없다. 겨우 절반만 번역된 책은 설사 다 읽을 의도가 없더라도 구매의사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나중에 나올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은 겨우 14개 장 더 추가된 것 때문에 두배의 돈을 내야 한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안팔리고 끝난 것이다. 오호통재! 스티글리츠가 맨큐한테 밀릴 정도의 경제학자가 아니지 않았는가? 반면 교보문고측은 어땠는가? 무리해서라도 엄청 두꺼운 맨큐의 경제학을 먼저 내었다. 그리고 나서 평판을 얻고 나서 간추린 맨큐의 경제학을 나중에 내었다. 거꾸로가 아닌가? 먼저 뭔가 있어보이지만 너무 버거운 책을 내서 잔뜩 동기유발한 다음에 축약판을 내는게 맞다. 축약판을 내서 먼저 김빼놓고 나서 나중에 완판을 낸다는건 너무 맥빠지는 마케팅이다. 게다가 축약판의 축약 원칙조차 스티글리츠의 권장사항과 다르게 되어있다. 결국 번역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챕터만 골라서 번역했다는 의혹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식있는 교수, 교사들은 이 책을 선뜻 권하기가 어렵게 된다. 나중에 완역본이 두권으로 나왔지만, 이미 시장에 자리잡기에 실패한 다음 나온 완역본은 번역자의 학문적 실적으로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스티클리츠의 경제학이 맨큐의 대항마로 적절하다고 본다. 원전은 어쩐지 몰라도 번역의 질이, 또 터무니없는 가격이 압박을 주는 크루그먼 경제학과 비교할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진짜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라면 이런 훌륭한 경제학 교과서의 페이퍼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 경제학에만 너무 시야를 제한시켜서 나머지를 모조리 결국은 시장주의자로 몰아서 평가절하하는 무지한 짓도 그만했으면 한다. 마르크스가 꿈꾸는 세상도 시장없는 세상은 아니었으니.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그러자, 노발대발한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 크루그만이 노벨상 받기 전만 해도, 그리고 전세계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번지기 전만 해도, 그래서 미국적 경제가 최상의 경제라고 믿고 있던 시절만 해도, 마치 경제학의 대명사, 거의 유일한 경제학자 처럼 떠받들어졌던 그레고리 맨큐다. 당연히 노발대발할수밖에 없는 것이 맨큐는 부시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냈으니, 굿바이 소리듣는 엉터리가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뻔한것 아닌가?
그러자 크루그먼은 부랴부랴 “친애하는 그렉(그레고리의 애칭). 나는 팀 가이트너(오바마의 재무장관 지명자)와 존 스노(부시의 재무장관)를 비교한 것이지 당신을 말한 건 아니었다”라고 둘러대었지만, 그걸 믿을 맨큐도 아니고, 또 믿을거라 기대한 크루그먼도 아니다.
이 치열하면서 잔혹하기까지 한 비방전(?)은 오늘날 보수/진보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바로 경제학을 두고 벌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이야 말로 중세의 기독교를 대신하는 세속의 종교임을 간파했다. 그가 온갖 잡다한 철학적 논설에서 대담하게 경제학으로 전환해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적 중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지만, 이제 이데올로기 대결은 그 곳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일부 무지함으로 인해, 일부 무능함으로 인해 우파적 경제학의 독주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바로 "맨큐의 경제학"이 "맨큐"의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학" 행세를 하도록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그건 그 동안 한국의 진보진영(혹은 자칭 진보진영)의 다수를 점한 엔엘 계열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반지성주의적 성향(품성론의 영향을 받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래서 조금만 머리를 쓰게되고 머리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이론이 무슨 소용이냐! 중요한건 실천이다, 투쟁!"을 외쳐대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맨큐
의 경제학은 배웠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를 익히는 유일한 관문으로 자리잡았고,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도대체 특정 진영의 경제관 외의 것은 이해할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사실 맨큐조차 넓게는 케인지안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맨큐의 경제학 책에서는, 특히 간추린 맨큐의 경제학 책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수 없다). 심지어 어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 대신 맨큐의 경제학을 이용해서 수업을 한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 무지한 교장의 발언의 배후는 "우리는 신통화주의 경제학을 가르친다"가 아니라 "우리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책을 가르친다."였다.
이건 진보진영이 신경썼으면 충분히 막을수 있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그 반대편에 선 경제학자들 역시 훌륭한 교과서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비로소 새로이 서점에 마구 공급되기 시작하는 폴 크루그만의 경제학 입문만 해도 그렇다. 앞의 자사고 교장에게는 어쩌면 이게 더 매력적일수도 있겠다. "우리는 노벨상 받은 사람의 책을 교재로 쓴다."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실, 이 책이 이미 2판이 넘어간 1997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유행에 따라 슬그머니 나온것이 불만이다. 10년전부터 크루그먼이 맨큐의 대항마로 경제학 교육에 널리 보급되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미네르바가 탄생할수도 있었으니.하지만 진보진영은 크루그먼을 외면했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엔엘 쪽에서는 그래봐야 미국놈이라는 논리였을 것이고, 피디쪽에서는 그래봐야 자본주의 범위 안에 있는 주류경제학이라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마르크스라도 꼼꼼히 독해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각종 논쟁의 핵심은 경제 아니면 생태, 혹은 경제와 생태다. 경제에는 경제학이, 생태에는 자연과학이 필수적이 교양이 되고 있다. 이 두 학문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으면 아예 논쟁이 먹히질 않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당국자에게 마르크스를 들먹이며 논박해봐야 먹히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케인즈까지도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먹힌다. 이건 아주 중요한 차이다. 게다가 맨큐의 경제학조차도 잘 분석해보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점을 많이 찾아낼수 있다. 이건 더더욱 중요한 차이다.
때 늦었지만 이제라도 크루그먼의 경제학이 번역되어 출판된 것을 축하해야 하나?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이게 날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격한 단정적 표현을 서슴치 않는 젊은이들에게 쓰레기라는 말로 불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노벨상 효과에 편승한 반짝 마케팅 이상을 생각하지 않은듯한 느낌, 맨큐의 경제학 독점이라는 이상한 한국적 상황을 극복할 경제학의 균형회복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만든 책이 아니라는 느낌, 그래서 35000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값으로 반짝 이윤만 먹고 떨어지려는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번역자 프로필을 보면 기가 막힌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막스 플랑크 과학사연구소의 연구원을 거쳐 현재서울대 기초교육원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에너지, 힘,물질> <대폭발> <180억 광년의 여행> <물리상수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으로 본우주> <물리학 강의> <우주가 지금과 다르게 생성될 수 있었을까?> 등이 있다....
(이 부분은 제가 잘못알았네요. 사실은 알라딘에 출판사가 제공한 번역자 정보가 엉터리가 간 것이었겟죠. 번역자 분은 물리학과 졸업한 것은 맞지만, 석사부터는 경제학을 하셨네요. 도대체 출판사가 인터넷에 이런 잘못된 번역자 정보를 올려놓고 1년이 다가도록 교정하지 않았다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이게 무슨 소설책 번역하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가 뚝딱 심보였거나, 아니면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들이 이 책의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발 경제위기, 노벨상 수상,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기대만큼 판매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맨큐의 경제학이 한국을 이렇게 휩쓴것이 꼼꼼하고 세련된 편집작업, 그리고 교보문고의 공들인 마케팅 때문임을 생각하면, 경제학자 중에서도 특히 수려한 문장가로 때로는 독설가로 손꼽히는 크루그먼이 정작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되면서, 이런 취급이나 받는다는 것이, 그리고 소위 진보적인 경제학자라는 분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돈 벌 생각이 아니라, 정말 공공의 이익과 지성을 위해 그야말로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번역부터 시작해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별화될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책의 하드커버본이 150달러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무려 35000원이나 하는가? 오히려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경제를 알아야 하기에 등등의 멋진 수사법을 동원하면서 20000원 이내에 페이퍼북을 낼수도 있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또 하나 안타까운 사례가 스티클리츠의 경제학이다. 사실 스티글리츠는 이미 200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고,
또 경제 사상이라는 면에서는 크루그먼 보다 더 독창적이라고도 할수 있는 학자다. 게다가 그는 애초에 기념비적인 교과서를 목표로 이 책을 저술했다. 1900년의 알프레드 마셜, 1960년에 사무엘슨이라면 2000년에는 스티글리츠라는 대단한 자신감과 야심을 가지고 매우 공들여 만든 경제학 교과서다. 게다가 번역도 잘했다. 진보적인 혹은 중도적인 경제학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번역한 흔적이 엿보인다. 맨큐의 경제학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나중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맨큐의 경제학 대신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을 보아야 할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완역을 하지도 않았다. 총 40개 장중 26개 장을 임의로 골라서 번역해 내고, 완역본은 나중에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이라는 책으로 내겠다고 머리말에 써놓았다. 그러니 망할수밖에 없다. 겨우 절반만 번역된 책은 설사 다 읽을 의도가 없더라도 구매의사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나중에 나올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은 겨우 14개 장 더 추가된 것 때문에 두배의 돈을 내야 한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안팔리고 끝난 것이다. 오호통재! 스티글리츠가 맨큐한테 밀릴 정도의 경제학자가 아니지 않았는가? 반면 교보문고측은 어땠는가? 무리해서라도 엄청 두꺼운 맨큐의 경제학을 먼저 내었다. 그리고 나서 평판을 얻고 나서 간추린 맨큐의 경제학을 나중에 내었다. 거꾸로가 아닌가? 먼저 뭔가 있어보이지만 너무 버거운 책을 내서 잔뜩 동기유발한 다음에 축약판을 내는게 맞다. 축약판을 내서 먼저 김빼놓고 나서 나중에 완판을 낸다는건 너무 맥빠지는 마케팅이다. 게다가 축약판의 축약 원칙조차 스티글리츠의 권장사항과 다르게 되어있다. 결국 번역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챕터만 골라서 번역했다는 의혹을 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식있는 교수, 교사들은 이 책을 선뜻 권하기가 어렵게 된다. 나중에 완역본이 두권으로 나왔지만, 이미 시장에 자리잡기에 실패한 다음 나온 완역본은 번역자의 학문적 실적으로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스티클리츠의 경제학이 맨큐의 대항마로 적절하다고 본다. 원전은 어쩐지 몰라도 번역의 질이, 또 터무니없는 가격이 압박을 주는 크루그먼 경제학과 비교할 경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진짜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라면 이런 훌륭한 경제학 교과서의 페이퍼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르크스 경제학에만 너무 시야를 제한시켜서 나머지를 모조리 결국은 시장주의자로 몰아서 평가절하하는 무지한 짓도 그만했으면 한다. 마르크스가 꿈꾸는 세상도 시장없는 세상은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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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1/01 15:39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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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잘되어야 좋은 책이 많이 알려질텐데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2. 맨큐 스스로 학술지 '신케인즈주의'를 내면서 통화주의를 절충한 케인즈주의자임을 내세우는데 신통화주의라고 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3. 크루그먼의 경제학 번역의 질은 차치하고, 물리학자가 경제학책을 번역하는 건 부당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고전학파종합을 이끈 폴 새뮤얼슨도 물리학자였으니까요. 문제는 역자의 경제학 지식과 열정일텐데, 그게 부족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4. 스티글리츠 책에 대해선 경제학도들 사이에도 불만이 많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이상해" 라고 아예 못이 박혔더군요. 아직까지도 맨큐가 경제원론교재로 쓰이는 주요 이유로 스티글리츠 경제학에 대한 잘못된 기획 때문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2. 음. 그건 신자유주의를 생각하고 있으면서 통화주의를 타자하다 나타난 간섭효과에 의한 오타입니다. 그런데 해 놓고 나니까 오타긴 하지만 나름 의미는 있네요. 맨큐가 원론적인 통화주의자는 아니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맨큐가 일부 시장실패에 대해 수긍한다는 점 외에는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통화주의와의 차이를 확인할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통화주의를 가미한 케인즈주의라기 보다는 케인즈주의를 보충한 통화주의에 가깝다는 의미에 신 자가 붙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어떤 공리들에서 연역하는 고전경제학을 공박하면서 그런 공리들을 "특수한 것"으로 축소시키고 더 많은 현실을 포괄하는 더 넒은 일반이론적 종합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케인즈주의의 핵심임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13개의 공리로 출발하는 맨큐의 교과서는 케인즈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국가개입이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아니니까요.
3. 역자의 이전 번역 경력에서 경제관련 문헌이 전무한 것이 뜨악했던 것이죠. 사실 물리학자로서는 손색없는 커리어였지만(음, 막스 플랑크 연구소까지!). 이럴 경우 하다못해 감수,감편자라도 있어야 했는데... 새무얼슨도 결국 전직 물리학자인 것이지, 끝까지 물리학자는 아니었죠.
4. 스티글리츠,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폴 새뮤얼슨이 전직 물리학자였다고는 하지만, 발라와 쿠르노, 그리고 마셜의 전통이 있는 신고전학파의 역사를 보았을 때 근대경제학(특히 미시)과 물리학은 무척이나 친한 사이였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자-> 개인, 에너지-> 효용으로 치환되는 아이디어의 차용이 흥미롭더군요.
예전에 부정변증법 님이 에밀 뒤르켐의 주장을 들어 경제학의 유사과학성을 지적하셨던 것도 생각나네요.ㅎ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함수들(distribution function 등)은 미시경제학에서도 잘 맞아들어가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전공이 입자물리다보니...Distribution function과 무지 싸웠는데(아놔 시험에서 못풀었..) 경제학에서도 같은 방법론을 적용한다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분포함수, 프랙탈 같은건 물리학, 경제학 뿐 아니라, 현대사회학에서도 낯설지 않은 개념입니다. 사실 다변량함수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 사회학 분야였죠. 애초에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란 전제를 쓸수 없는 사회학은 "가능한 모든 조건을 몽땅 투입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었죠. 그나마 다중회귀방정식이 선형성의 전제 때문에 사회생활의 실상의 많은 부분을 배제한다는 비판이 많아지면서, 일각은 아예 질적조사로 발전하고, 계량적 연구는 결국 기술적(descriptive)묘사나 종속변수를 연속변인으로 두는 것을 포기하고 몇개의 집합에 소속될 확률을 구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말았죠(판별함수, 로지스틱, 프로빗, 로짓, 군집, 연결망분석).
일관된 흐름이 느껴집니다. 에밀 뒤르껨이 당시대의 경제학자들이 과학자가 아니라 유사과학자라고 했던 비판(결국 케인즈가 고전파경제학을 비판한 것도 같은 이유더군요)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결국 자신의 전제들, 공리들을 성찰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확정된 사실로 간주하고 출발할수 있는 학문은 없다는.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사실 전 경제학을 부정하는 축이랍니다.(유사과학이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긴 하네요) 학문의 의의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함인데, 그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정확하게 해낼 수 없는 경제학을 논리적 분야로 인정하느냐는 매우 복잡한 문제같습니다.(머 그렇기에 유사과학이라고 하겠지만요.)
요즘 물리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네트워크쪽도 실제로는 경제학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학교 교수님중 돈 많이 버셔서 맨날 술사주시던 분이 저 분야셨죠) 저 역시 문학의 관념이 물리학에 영향을 미칠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문학 과학 가리지 않고 공부하고 있답니다.
사실 뭐 볼 책은 많습니다. 묘하게 대학에서 너도나도 채택했을 뿐이지
경제학이 유사과학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공리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도 있겠지만, 경제학 자체가 사회공학으로서, 사회를 개량하고 혁신하는 기술로 존재하기 때문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트워크이론은 우리학교에서도 케인지언인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정보경제학도 가르치시고요.
확실히 통섭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대이후 분절되었던 학문이 다시 만나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맨큐의 메뉴 코스트가 신 케인지안쪽 이론 파트에 항상 가 있던데요.
스티글리츠는 번역과 가독성 그리고 그래프 가독성에서 맨큐에 밀려요. 몇몇 교수님들은 원서로 보게 하지만 사립고에서 맨큐 하면 그래도 대학 교양수준은 가르치는 편이에요. 스티글리츠 발번역책 제외하고~ 경제학 입문서중 젤 보기 좋은건 이준구꺼 아니면 맨큐거인데, 이준구 교수님거도 공명정대하게 자기 계열과 상관없이 쓰지는 않았어요. 이준구 교수님 전공이 사회 후생쪽이라 그런가 맨큐와 비교하면 상당히 국가 개입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내용만으로 보면 큰 차이는 없었던거 같아요. 배우는 입장에서요. 파이기에 내용을 빼먹었다기 보다는 경제 원론이기에 빠진 내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맨큐의 13가지 뭐 어쩌고 하라는 말은 대부분의 수업에서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요. 강의하시는 강사님 교수님 중 맨큐의 주장을 중요시 하기 보다는 그냥 원론책의 내용만 가지고 수업했고, 그걸로 시험 문제를 내서 저는 특정 성향의 문제는 별로 못 느꼈습니다.
아무튼 저는 맨큐의 라이벌로 글리츠 보다는 이준구 꺼 추천하고 싶어요. 더 직관적이라 편했습니다.
사실 그 13개의 공리가 맨큐의경제학을 경제기술이 아니라 경제학이되게 만드는 근거인데... 사실 현대 경제학의 큰 문제가 따라하기에도 벅찬 수학화 때문에 학문이라기 보다는 기술적 매뉴얼이 되어가면서 고유의 성찰성과 비전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라는 하일브로너의 지적이 생각나네요.
맨큐의경제학에 교보문고가 들인 꼼꼼한 편집과 마케팅은 참 대단합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죠. 저는 스티글리츠, 크루그먼의 번역본을 노벨상 이펙트로 한 타를 노리는게 아니라 노벨상 후광이 없어도 충분히 팔릴만한 그런 사명감과 편집력으로 내어 놓았으면 하고 내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제 가 생각하기에는 맨큐는 현재 경제학계에 준합리적 기대이론이나 생태경제학 등 수많은 이슈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원론]을 공부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고전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과서를 저렇게 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나머지는 고전경제학이라는 줄기에 붙었거나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맨큐 자신은 저 교과서 외에도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출판했는데, 그 거시경제교과서는 신케인지언적 요소에 충실했죠.
그렇다면 맨큐는 어디에 가까울까요? 그가 원론에서부터 거시경제학에 이르는 일련의 교과서 시리즈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힌 적이 없고, 맨큐의 경제학 서문에서도 그런 구상, 또 이 책의 전체 경제학에서의 위치 등에 대해 밝히지 않고, 경제학의 공리가 성립될수 없음을 비판하며 시작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과 대칭이라도 시키듯이 13개의 공리에서 시작한다는 점(이게 스티글리츠에게는 경제학자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사실 정도로 표현되죠.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실제 본인의 현실 경제정책 참여 행적도 신케인지안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수 많은 단어 중에 hack(전세마차)이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조롱한것도 은근히 그런 점을 야유한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교과서는 훌륭한 교과서입니다. 게다가 적어도 한국에 소개된 번역본만을 놓고 본다면 맨큐의 경제학을 따라올 책이 없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경제학 교육이 성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이 원리를 현실 경제를 분석, 비판하는 준거가 아니라, 경제의 공리로 바로 수용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비슷한 퀄리티의 교과서들이 필요한 것이죠.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의 교과서가 미국에서는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나저나 현재 크루그먼이 맨큐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건 좀 의외군요. 적어도 경제학의 향연(Peddling Prosperty)를 쓸 때쯤에는 분명히 맨큐라는 경제학자를 신케인지언 부활의 신호탄 정도로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말이죠. (경제학의 향연 초판 7쇄 239쪽)
지만원, 조갑제 같은 원조 라이트보다는 안병직, 신지호 같은 운동권 출신들이 보다 덜 라이트 스러운 발언을 해도 더 미움받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요?
경제에 대해서 책보면서 틈틈이 혼자 공부해보려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경제에 대해서 기초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때문에,
알게모르게,각 책의 저자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포섭될 것같고, '비판적'인 책읽기가 힘들것 같아 걱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공부할 때, 맨큐를 추천해주던데요, 그래서 책을 구한 몇일 뒤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인데, 현재 출판된 책 중에서 맨큐와 비교해가면서 볼 책이 있다면 추천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위에도 단 리플이지만, 이쪽에서 간단한 설명을 보고 들어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사실 맨큐의 경제학이 문제가 있건 없건 쉽고 잘 설명한 책임에는 틀림없거든요.
아니면 이준구씨나 정창영씨의 경제학원론으로 들어가시는것도 좋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는 jkl123.com 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