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진보, 교육의 진보

이전 포스팅에서 정치적으로 좌우의 스펙트럼과 교육의 진보보수 스펙트럼이 중첩되면서 여러가지 모순된 입장들을 만들게 되고, 그 입장들간의 논쟁이 100년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이 미국 교육의 역사이자 아직 그들이 죽었다고 선언할 수 없는 저력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좌우, 진보보수가 필요 이상의 용어상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 같아서 둘 다 진보보수로 표현하되, 앞에 정치경제, 교육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로 용어를 수정한다.

정치경제상의 진보의 의미는 명확하다. 그것은 경제적인 평등, 그리고 정치적인 자유와 연결된다. 진보주의자들은 소득과 시장기회가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나 제도는 거리의 정치, 즉 민간기구나 비제도권에게 보다 많은 발언권과 통제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치경제상의 보수는 소득과 시장기회는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하며, 정부나 제도는 권위를 가져야 하며, 거리정치는 가능한한 자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또 다시 중첩이 나타난다.

진보주의자는 시장의 영역에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행정의 영역에서는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시장의 영역에서는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행정의 영역에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주의자는 시장에 대해 법치를 외치고, 보수주의자는 거리에 대해 법치를 외친다. 진보주의자는 거리에서 자유를 외치고, 보수주의자는 시장에서 자유를 외친다. 최근에는 생태문제도 여기에 중요한 변수로 집어넣어야 하지만, 이 역시 결국 시장의 규제냐 자유냐, 민간생태운동의 거리의 목소리를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잘 포개어질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치문화의 문제가 개입되자 문제가 복잡해진다. 도덕의 문제, 종교의 문제, 전통과 취향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공동체의 도덕과 관습, 전통, 그리고 고전예술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면 그것은 보수가 된다. 반면에 새로운 것, 파격적인 것, 그리고 공동체의 도덕보다는 개인의 결정권을 더 중요시 한다. 예컨대 가족윤리, 생명윤리에 대해 보수는 엄격하고 진보는 분방하다. 보수는 동성애에 부정적이고 진보는 동성애에 개방적이다. 취향에서도 보수는 고전을 선호하고 진보는 대중예술이나 아방가르드를 선호한다. 흔히 이는 아카데미 취향이라 불리는 론 하워드 류의 영화와 팀버튼 류의 영화로 선명하게 비교될수 있다. 대개는 정치경제적 진보와 가치문화적 진보, 정치경제적 보수와 가치문화적 보수는 나란히 간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에서 여러 특이점들이 발생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바로 이 특이점들을 공략했다. 그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진보주의자들의 도덕적 자유분방함과 가족주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상대주의를 우려하고 있음을 적절히 이용했다. 레이건이나 부시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은 바로 이런 가치문화적 호소력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복지제도가 국고를 낭비한다거나 좌파정책이라거나 하지 않고, 그 대신 개인의 책임과 가족과 지역사회의 책임이라는 전통적인 미덕을 손상시킨다고 메시아적인 열광을 담아 연설했다. 그 사이에 잠시 클린턴의 약진이 있었지만, 이 역시 어떤 문화가치적 대안이라기 보다는 걸프전쟁과 경제난의 여파에 편승한 면이 크다. 오바마의 약진은 경제난에 편승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경제적 진보가 문화가치적 보수를 아울러내면서 역으로 보수진영의 균열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승리다.

교육은 가치문화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당연히 교육의 결과 사회가 개선되기를 즉, 교육이 정치경제적 진보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반면 보수적인 교육자들은 교육이 그 본연의 가치로서 존중받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개인적이다.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오래된 전승, 전통, 학문에 기반한 엄격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필요와 흥미에 기반한 자유로운 교육을 꿈꾼다. 반면 보수적인 교육자들은 전승, 전통, 학문을 엄격한 위계와 예절 아래에서 학생들이 전수받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학생들의 필요와 흥미를 강조하는 대가로 학교, 공동체, 그리고 교사의 권위를 부정한다. 학생들의 필요와 흥미는 전문가가 개발한 척도에 의해 조사되어야 하며, 개별 교사는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 또 교육의 최종 목적이 정치경제적인 진보이기 때문에 교사는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진보를 위해 요구되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진보적인 교육은 개별 교사들에게는 억압적인 교육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진보주의 교육학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930년대 미국에서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오늘날 계량화, 수치화에 기반한 교육은 마치 우파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러한 교육통계학의 태두라 할수 있는 터만, 쏘스틴 등은 정치적으로 좌파였다. 여기에 긴 시간 고민하며 풀어야 할 난맥상이 있다.

반면 보수적인 교육자들은 오래된 전승, 전통, 학문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개별 교사들의 숙련과 경험을 매우 중요시 한다. 이런 고결한 가치들은 매뉴얼을 본다고 해서 뚝딱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수련과 연마의 결과이며, 그런 결과를 담고 있는 교사들은 고결한 모범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사를 존경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며, 교사들의 자율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결과는 사회의 진보가 아니라 개인의 성취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사회 수준을 넘어선 제도나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별 교사들에게는 보수주의 교육이 훨씬 더 친화력이 있고 유리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얼마든지 정치경제적으로 진보적이 될수 있다. 이들은 전통, 전승, 학문적 교과내용들을 학생들이 획득해야 할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 즉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인문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것이다. 이들은 가난한 학생들을 엄히 훈육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들의 계급 상승을 돕는 행위라고 충분히 해석할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정치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교실에서는 보수적인 교사가 될수 있으며, 정치경제적으로 보수적이면서 교실에서는 진보적인 교사가 될수 있다. 이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이런 다양한 중첩된 교육철학들이 엉켜 있는 곳이 교육운동단체이며, 여기에서 백가쟁명이 일어나서 교육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전교조에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며, "진보적 교육"의 개념을 "정치경제적 진보"와 기계적으로 결합하려는 동일성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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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12/20 12:03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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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YS at 2008/12/20 12:46
아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네요.

스스로 분류하자면 저는 정치경제적 진보, 교육적으론 보수네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22 08:57
그렇다면 인문교육의 혜택을 계급, 계층과 무관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되죠.
Commented by 사띠현정 at 2008/12/21 10:02
님의 왕성한 탐구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정치경제적 진보가 문화가치적 보수를 아울러내면서 역으로 보수진영의 균열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승리다" 이 귀절, 한국 교육운동이 새기고 새겨야 할 대목이군요.

재미삼아 울리아노프와 요지프는 둘다 '진보'로 여겨지겠죠? 울리아노프는 당 활동에서 모든 비판 공개토론 허용했듯 교실에 대한 견해에서도 진보였답니다.

울리아노프 :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물론 비판까지 허용되어야 한다.

요지프 :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다니 있을 수 없다. 교사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 분들이 한국에 오면 울리아노프는 자교조 가입했을까요? 요지프는 전교조와 한교총중에 저울질했을까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22 08:58
문제는 한국의 교직단체는 어느것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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