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7일
미국 교육개혁 논쟁사를 읽으며
다이안 래비치의 '미국개혁논쟁사'를 읽고 있다. 이 제목은 내가 멋대로 의역한 것이고, 원래 제목은 Left Back: battles over school reform인가 그렇다.
영어로 된 400쪽이 넘는, 그것도 글자도 깨알같은 책을 읽자니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지만 뭔가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은 든다. 미국이 100년 남짓한 공교육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치열한 논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의미, 나아갈 바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고 근본적인 논쟁이 없었다. 심지어 전교조 조차 교육의 의미, 상, 지향점 등을 놓고 논쟁하지 않았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몇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1) 미국은 공교육이 도입되는 순간부터 이미 논쟁에 휘말렸으며, 이 논쟁은 100년 내내 이어져서 전투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다는 것이다.
2최초의 쟁점은 교육권이 부모와 지역사회에게 있느냐, 아니면 사회, 즉 국가(주)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어느날 갑자기 일부 집단이 "교육수요자"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그게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그런 풍토가 아니었다. 만약 미국이었다면 단번에 학부모는 공교육의 수요자가 아니며, 공교육은 학부모가 아니라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반론이 튀어나오고, 다시 일대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부시 8년 이래 미국의 공교육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재건할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이다.
2) 두번째 쟁점은 교육이 개인의 발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개선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보수와 진보주의 교육학이 갈렸다. 진보주의 교육학은 교육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개선을 위한 참여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여기에는 존 듀이의 강력한 논변이 그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3) 그런데 이 진보주의 교육학이 도리어 각종 계량적 교육평가, 심리검사 등의 원천이 되었다. 교육이 사회의 개선에 기여하려면 그 효과가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에서 교육은 일종의 신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활동이었기에 "어디 감히 교육을 측정해?"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고전의 가치를 어떻게 수치화 하겠는가? 이런 식의 논변이 보수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고전이나 전통이 특별한 자격을 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놓고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이 현재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맡물려서 아주 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결국 문제는 사회의 개선을 "부의 증대"로 볼것이냐, "자유의 증대"로 볼것이냐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 교육이 사회의 부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보적이면서 우파가 되는 것이고, 교육이 사회의 자유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보적이면서 좌파가 되는 것이다. 좌우 스펙트럼과 진보보수 스펙트럼은 이렇게 다른 차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교과를 통해 사회의 부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수우파가 되고, 전통적인 교과를 통해 사회의 자유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보수좌파가 되는 것이다. 이 스펙트럼들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논의하겠다.
4) 그런데 교수방법에 가서는 엉뚱하게 양 진영이 갈렸다. 사회에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도리어 교수학습 방법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학생중심 교육을 주장한다. 반면에 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도리어 교수학습 방법에서는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교사중심 교육을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혼돈이 일어난다. 학생중심 교육을 주장하는 진보주의교육학은 따라서 교사들의 고유한 권위를 부정하고, 교육과정과 내용을 교사의 자의에 맡겨서는 안되며, 사회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별 학교, 개별 교사에 대해 억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보수주의교육학은 고전의 가치는 엄한 스승 아래서 배울수 있는 것이라 보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를 높이고, 개별 학교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 복잡한 그물망에 대해서도 추후 다시 논의하겠다.
어쨌든 이 스펙트럼의 교차 속에서 오늘날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논의할수 있는 기본적인 재료는 충분히 얻을수 있었다. 이 재료들을 통해 이제 이념형을 구상하고 분석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영어로 된 400쪽이 넘는, 그것도 글자도 깨알같은 책을 읽자니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지만 뭔가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은 든다. 미국이 100년 남짓한 공교육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치열한 논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의미, 나아갈 바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고 근본적인 논쟁이 없었다. 심지어 전교조 조차 교육의 의미, 상, 지향점 등을 놓고 논쟁하지 않았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몇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1) 미국은 공교육이 도입되는 순간부터 이미 논쟁에 휘말렸으며, 이 논쟁은 100년 내내 이어져서 전투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다는 것이다.
2최초의 쟁점은 교육권이 부모와 지역사회에게 있느냐, 아니면 사회, 즉 국가(주)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어느날 갑자기 일부 집단이 "교육수요자"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그게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그런 풍토가 아니었다. 만약 미국이었다면 단번에 학부모는 공교육의 수요자가 아니며, 공교육은 학부모가 아니라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반론이 튀어나오고, 다시 일대 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부시 8년 이래 미국의 공교육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재건할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이다.
2) 두번째 쟁점은 교육이 개인의 발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개선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보수와 진보주의 교육학이 갈렸다. 진보주의 교육학은 교육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개선을 위한 참여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여기에는 존 듀이의 강력한 논변이 그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3) 그런데 이 진보주의 교육학이 도리어 각종 계량적 교육평가, 심리검사 등의 원천이 되었다. 교육이 사회의 개선에 기여하려면 그 효과가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에서 교육은 일종의 신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활동이었기에 "어디 감히 교육을 측정해?"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고전의 가치를 어떻게 수치화 하겠는가? 이런 식의 논변이 보수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고전이나 전통이 특별한 자격을 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놓고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이 현재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맡물려서 아주 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결국 문제는 사회의 개선을 "부의 증대"로 볼것이냐, "자유의 증대"로 볼것이냐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 교육이 사회의 부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보적이면서 우파가 되는 것이고, 교육이 사회의 자유의 증대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보적이면서 좌파가 되는 것이다. 좌우 스펙트럼과 진보보수 스펙트럼은 이렇게 다른 차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교과를 통해 사회의 부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수우파가 되고, 전통적인 교과를 통해 사회의 자유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보수좌파가 되는 것이다. 이 스펙트럼들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논의하겠다.
4) 그런데 교수방법에 가서는 엉뚱하게 양 진영이 갈렸다. 사회에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도리어 교수학습 방법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학생중심 교육을 주장한다. 반면에 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도리어 교수학습 방법에서는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교사중심 교육을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혼돈이 일어난다. 학생중심 교육을 주장하는 진보주의교육학은 따라서 교사들의 고유한 권위를 부정하고, 교육과정과 내용을 교사의 자의에 맡겨서는 안되며, 사회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별 학교, 개별 교사에 대해 억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보수주의교육학은 고전의 가치는 엄한 스승 아래서 배울수 있는 것이라 보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를 높이고, 개별 학교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 복잡한 그물망에 대해서도 추후 다시 논의하겠다.
어쨌든 이 스펙트럼의 교차 속에서 오늘날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논의할수 있는 기본적인 재료는 충분히 얻을수 있었다. 이 재료들을 통해 이제 이념형을 구상하고 분석하는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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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12/17 13:55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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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가 수호할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나눈다는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괜찮으시면 설명좀 해주세요.
즉, 기본적으로 진보/보수는 기존의 것들을 갈아 엎을 것이냐, 아니면 유지할것이냐의 입장입니다. 즉 도덕, 전통, 가치관 등에 대한 태도가 되겠죠. 물론 칼같이 진보, 보수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쪽에 가깝냐로 불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저런 의견을 나누면서(싸울지라도.) 발전하는거죠.
의외네요 망해가는 나라의 교육이 저런 과정으로 나타난다니...
결론, 중요한건 수단이 아니라 결과다.
저리 힘들게 만들고 생각해내봐야, 어차피 망하는 나라...
그건 그렇고, 확실히 다른데요.
저는 교육은 사회에 기여해야하고,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교육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보고요.
여하간 매트릭스의 문제는 명쾌하게 보여주는 한편으로 심층에 감춰진 것을 더욱 은폐하는 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저위에서 보여주신 걸 기준으로 하면 현 정권은 보수우파에 해당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극우파에 해당하긴 하지만 보수냐 진보냐를 따져보면 좌표축위에 설적이 불가능한 변태에 가깝다고 봅니다.
매트릭스의 한계는 분명하고, 그래서 실상 매트릭스 그래프를 읽을때도 어느 구역에 속한다 뿐 아니라 그 구역에서 다시 어느 위치에 자리잡느냐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죠.
현 정권은 진보우파의 담론을 들고 집권해서는 보수우파의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 진짜 보수우파인 이회창이의 욕을 들어먹고 있다고 봐야겠죠. 저 매트릭스는 어디까지나 자기 정치적 입장을 속이지 않고 드러내는 응답자에 한한다고 봐야겟죠. 이명박이나 공정택은 뭐, 측량 불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