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즈 미 -미국 진보진영의 힘을 느끼다

슈퍼사이즈 미는 모건 스펄록 감독이 2004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한 이래 전 세계에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다큐멘터리다. 소재도 그렇고 그 유쾌한 터치와 재담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집요한 이슈 추적능력도 그렇고, 참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 자체는 아주 단순하다. 패스트푸드가 얼마나 유해한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30일간 다른 음식을 중단하고 패스트푸드만 먹으면서 스스로의 신체 변화를 필름으로 담겠다는것.

이 작품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블로그나 기사에서 다루어졌으니 이 정도로 해 두자. 여기는 사회교사이자 사회학강사의 블로그니까, 이 영화를 통해 획득하거나 확장된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해서만 한번 읊어보려고 한다.
 






















우선 제일 먼저 제목의 탁월함이다. 표면적으로 이 제목은 맥도날드에서 제공하는 초대형 음식 사이즈를 의미한다. 실제로 모건 스펄록은 슈퍼사이즈 버거, 콜라, 프렌치프라이를 먹다가, 그 엄청난 양에 질려서 구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단지 햄버거 사이즈에 대해서 말하려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고도의 은유가 있다. 그것은 뭐든지 슈퍼사이즈를 추구하는 미국 문명에 대한 조롱과 경고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프롤로그에서는 "미국에서는 뭐든지 크다. 차도 크고, 집도 크고, 그리고 사람도 크다."라고 말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크게 보다 더 크게"를 추구하는 사회는 "끊임없는 확장과 증식"을 생명력으로 삼고 있는 자본이 물질적으로 구현된 것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최대의 미덕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편익"을 뽑는 것이다. 그런데 맥도날드의 슈퍼사이즈는 보통사이즈에서 단 돈 69센트만 더 내면 두배 더 큰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이거야 말로 자본주의의 미덕이 가장 제대로 발휘된 사례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경제학 교과서가 그토록 강조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라면 당연히 푼돈 69센트를 더 내고 두배의 편익을 얻으려 할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경제학자들이 딴지를 걸 것이다. "설사 두배의 편익을 보게 될지라도, 한계효용이 체감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적정한 수준에서 멈출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소비자는 아무리 싸더라도 두배짜리 햄버거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그러나 바보같은 딴지다. 우선 한계효용이 체감하는만큼 그것은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단돈 69센트! 햄버거 값을 두배 받는 것이 아니라 단돈 69센트만 받기 때문에 우리의 합리적 소비자는 여전히 두배짜리 뚱뗑이 햄버거를 사먹을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햄버거는 중독된다. 중독! 중독은 합리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는 병리 상태다. 중독은 엉뚱하게도 편익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더 많이 욕망하게 하는, 그리하여 한계수요를 무한하게 증식시키는 그런 상태다. 실상, 자본주의는 합리적 소비보다는 "중독"에 더 많이 의존한다. 자본은 무한히 확장하고자 하며, 무한히 더 많이 판매하려 한다. 그런데 가장 쉽게(비용을 덜 들이고) 가장 많이 팔수 있는 방법은 상대를 중독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규제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자본주의는 중독의 사회가 된다. 보라,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중독의 부호들이 떠다니는지? 슈퍼사이즈의 햄버거를 "더, 더"하며 먹는 것과, 슈퍼사이즈의 돈덩이, 즉 대박을 향해 "더, 더"하고 달리는 것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이 영화 중간에는 마침내 치밀어 오르는 중독성 식욕을 감당하지 못해서 위장 절제술을 받는 남성이 나온다. 이게 괜히 나온 것일까? 너무 많이 먹어서 마침내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이 사내는, 너무 많이 벌어서(?) 죽음 문턱까지 가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판박이다. 비만증과 거품경제는 부풀어 오른다는 점에서는 닮은 꼴인 것이다. 결국 위장을 잘라야 비만이 치료되듯이, 부풀어 오른 이 자본주의 경제는 그 위장, 즉 욕구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금융허브를 수술하지 않고서는 끝내 각종 질병과 함께 사망의 길로 치달을 것이다.

글쎄, 모건 스펄록이 여기까지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오버하는 것일수도. 하지만 영화 막판의 대사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스펄록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 음식을 팔아서 온 국민을 뚱땡이로 만드는 대신 돈을 갈쿠리로 쓸어담고 있는 식품회사들이 머리에 총맞기 전에 그 짓을 착한 마음 먹고 중단할 성 싶으냐? 결국 소비자들이 뭉쳐서 싸우는 수 밖에 없다. 이건 단지 소비자 운동이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이다. 당신들이 죽느냐, 아니면 저놈들이 죽느냐?"

스펄록의 메세지는 분명하다. 그는 맥도날드를 반성 시켜서 좀 순한 기업으로 만들 생각 따위는 비웃고 있다. 맥도날드를 더 이상 패스트푸드 기업이 아니게 하던가, 아니면 아예 무덤에 집어 넣어버리던가 둘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들을 무덤에 집어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맥도날드를 두드려 패서 햄버거를 팔지 못하게 할수는 없다. 즉, 레닌주의 처럼 국가 권력을 이용해서 자본가를 때려잡자 식의 방법은 도리어 더 큰 불행과 억압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덜 먹고, 덜 쓰고, 더 불편하게 사는 대신, 보다 고차적인 곳에서 기쁨을 느낄수 있도록 우리의 욕망의 코드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앤서니 기든스가 왕왕 강조하던 생활정치이리라. 오늘 저녁 반찬을 뭘 먹을까 선택하는 것조차 이미 정치적인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모건 스펄록의 여자친구는 끊임없이 모건의 육식을 비판한다. 그건 단지 식성과 건강의 관점에서 하는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이다. 이 발칙한 감독이 햄버거만 먹다가 한달만에 11킬로그램의 살이 찐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왜 성조기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나왔는지, 그리고 맥도날드의 광고문구를 저도 모르게 술술 기억해내는 시민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왜 삽입했는지의 이유가 여기 있다. 덜먹고, 덜쓰고, 덜 욕망하며, 더 나아가 이런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각종 미디어의 흉계를 꿰뚫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 지성 없는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다음 작품은 보다 직설적으로 정치적인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서"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이 슈퍼사이즈 미 보다 더 정치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왕왕 그와 비교되는 마이클 무어는 미국 의료복지 시스템의 처참한 모습을 폭로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슈퍼사이즈 미는 보다 행동 지향적이다. 그리고 단지 식성을 바꾸는 것,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의 시대의 권력은 삶의 내면에 까지 스며들어 인간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생체정치"의 장을 열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모건 스펄록은 그 화답으로 이렇게 "생체정치 시대의 저항"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는 매우 유쾌하고 위트에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참으로 미국의 좌파는 내공이 깊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진영은 은연중에 미국에는 좌파가 없고, 중도파인 민주당이 좌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한국이야 말로 아직도 좌파다운 좌파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삶의 영역에서 아무 성찰도 해내지 못하는 한국의 좌파는 미국적 기준으로 볼떄 영락없는 꼴통,보수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미 좌파냐 우파냐는 그가 가두에서 의회에서 무엇을 주장하는가가 아니라 그가 삶의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생체정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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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12/06 20:41 | 예술의 향기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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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내가사는 세상 우주코딱지 at 2008/12/07 02:39

제목 : 욕망의 극복
슈퍼사이즈 미 -미국 진보진영의 힘을 느끼다"덜 먹고, 덜 쓰고, 더 불편하게 사는 대신, 보다 고차적인 곳에서 기쁨을 느낄수 있도록 우리의 욕망의 코드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뭐. 좌파나 혁명에 대해 말하기보단...(보고 싶은 것만 보이니까..)생물학적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이 먹고 싸서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지성을 통해 넘어선다는 것은 참 ...알고 있어도 여전히 나는 자본의 노예이고 육체의 욕구에 충실하고 있다.아니 이건 아는......more

Commented at 2008/12/0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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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06 22:38
제 이글루 주소와 똑같은 아이디의 한메일로 메일 보내주심 신상명세 보내드리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12/06 22: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8/12/07 09:27
혹시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맥도날드, 맥도날드 화 라는 책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부정변증법님께서 내리신 결론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욕망의 절제, 혹은 다른 방향으로의 변화 같은 것 말이예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07 12:09
오 그렇습니까? 읽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이니드 at 2009/04/18 14:23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아직 못 본 슈퍼사이즈 미에 그런 통렬한 의미가 있군요.
영화 구해서 봐야겠습니다.
글 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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