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리,하트 '제국' 읽기 (1)

요즘 네그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 국면에는 그의 ‘다중’ ‘자율주의’ 개념 때문에 관심이 급증했었고, 하반기에는 전 지구적 금융위기와 여기에 대응하는 지구적 공조, 미국의 절대적 위상 격하 등의 현상이 일어나자 그의 ‘제국’ 개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제가 네그리에 정통했거나 그런거는 아니지만, 주변에 저를 자율주의자로, 혹은 네그리언으로 아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 몇 차례 읽었던 『제국』(Empire)를 발췌하고 대략 나름의 소감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Michael Hardt(구텐베르트 프로젝트의 주동자)와 Antonio Neri 의 공저입니다. 공저라고는 하지만 실상 하트가 네그리의 제자나 다름없고, 공식적으로 한 번도 스승에게 대든(?)적이 없기 때문에 네그리 평생의 사상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네그리 사상의 근원에 대해서는 하트가 『네그리 사상의 진화』라는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별로 설득력 있는 책은 아니니까 굳이 사보실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하트는 네그리 사상의 뿌리에서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니체, 들뢰즈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 난해하지 않은 네그리 사상을 오히려 더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오히려 조정환 선생이 쓴 『아우토노미아』가 훨씬 네그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그리는 원래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특히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에 모두 정통하여 20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응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논문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네그리의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본론』이 미완성 저작이며, 마르크스의 웅대한 계획의 1/6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자본론』을 포함한 총 6권 분량의 『경제학』이란 대작을 쓰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였던 『정치경제학비판 개요(이하 그룬트리세)』의 스케치를 참고하여 계속 채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유명한 개념인 비물질 노동의 개념, 그리고 다중지성의 개념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가 탄생합니다.

또 네그리는 그람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람시와 맥을 같이 하는 문화자본주의 비판가들인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영향도 깊이 받았습니다. 이들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네그리는 기존의 정치투쟁의 개념을 확장하여,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에서의 미시적인 투쟁이라는 개념을 끌어냅니다. 여기에 그룬트리세에서 얻은 통찰력을 결합함으로써 네그리는 이제 의사소통의 망, 네트워크는 단지 자본의 지배를 돕는 이데올로기 도구가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생산수단이 되며, 블루칼라, 산업 프롤레타리아는 생산력의 주변부로 밀려나가, 19세기와 같은 계급투쟁의 주력군이 아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기타 자세한 이야기는 제국을 읽어 나가면서 다시 살펴보기로 합시다.

앞으로 발제할 원전은 Hardt, M. , Negri, A.(1999). Empire. Boston: Havard University Press. 이며, 번역본은 윤수종 역(2001). 『제국』. 서울: 이학사.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본의 문장이나 용어가 매우 어색하고, 원전의 영어는 그리 어려운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상 영어 수준이면 그냥 영문판을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책 제국의 후속편이 바로 『Multitude 다중』입니다.

 

그럼, 이제 제국을 같이 읽어 봅시다.

 

머리말

 

이 책 『제국』은 머리말에서 이미 상당히 많은 내용을, 아니 사실상 저자들의 주장 거의 대부분을 제시합니다. 본문은 오히려 머리말에서 가설로 제시한 명제들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입증하고 정당화하는 내용들입니다. 머리말의 내용을 문제의식에 따라 정리해 봅니다.

 

제국이 뭐야?

머리말의 제일 첫머리는 바로 제목인 제국의 개념정의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국은 미제, 일제, 대영제국 할 때 제국이 아닙니다. 이 개념은 알렉산드로스 제국, 로마제국, 혹은 동아시아의 ‘천하’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 제국, 천하 개념은 그때까지 인간이 알던 세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즉 더 이상 외부가 없는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주권을 의미합 니다. 21세기의 제국은 물론 고대의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자본, 생산, 교환, 물론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된 노동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정치적 주체이자,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입니다. 자본의 초국화, 지구화, 탈 정치화(경제 관계들의 자율성)로 인해 20세기 후반 들어 민족국가의 주권은 점차 쇠퇴했고, 이제 민족국가가 이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민족국가의 주권이 쇠퇴하고, 경제적-문화적 교환에 대한 규제가 점차 불가능해지는 것은 제국이 도래한다는 주요한 징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권 그 자체의 쇠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주권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초국적 주권체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네그리는 이런 현상을 통칭하여 비유적 의미에서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와는 뭐가 다르지?

앞에서 미제, 일제, 대영제국과 ‘제국’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뭐가 다를까요? 여기서 네그리는 전자를 제국주의라 부르면서 ‘제국’개념과 대립시킵니다.

제국주의와 달리 제국은 권력의 영토적 중심과 고정된 경계에서 구별됩니다. 제국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족국가와 민족국가의 관계입니다. 한 민족국가가 권력의 영토적 중심이 됩니다. 바로 종주국입니다. 그리고 종주국과 그것의 식민지를 포괄하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른바 런던, 베를린 같은 ‘제국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에는 영토적 중심이 없습니다. 제국은 탈중심화, 탈영토화하는 지배장치입니다. 제국은 명령의 네트워크를 조율함으로써 잡종 정체성들, 유연한 위계들, 복수의 교환들을 관리합니다. 이 개념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본문에서 다시 상세하게 다룹니다. 다만 여기서는 종주국, 중심, 이런 개념이 ‘제국’에서는 사라진다 정도로 알아 둡시다.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제국주의가 제국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는 세계의 공간적 분할을 뒤섞는 과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즉, 영토적 경계에 따라 중심부, 주변부가 나누어지지 않게 됩니다. 종주국보다 훨씬 부유한 식민지의 특정 구역이 있는가 하면, 식민지보다도 비참한 종주국의 구역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제 한 민족국가(종주국)가 다른 민족국가(식민지)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가로질러 나타납니다. 제3세계 속의 제1세계, 제1세계 속의 제3세계 등.<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의 중심가, LA나 뉴올리안스의 흑인 슬럼가)

 

왜 그렇게 되었지?

이는 자본의 주요 잉여가치 획득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산업 시대에는 공장이 착취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은 고정된 장소에 자리잡는 영토적 공간입니다. 따라서 착취의 단위도 영토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업적 공장 노동의 역할은 축소되었습니다(사라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소통적, 협동적, 감정적(어떤 책에서는 정서적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저는 감정적이 더 적당한 번역 같습니다)노동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부는 삶정치적 생산(biopolitical)을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방식, 삶 그 자체가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을 위한 소통, 생산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소통,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잉여가치가 높은 상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정치는 푸코의 개념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상세하게 다룹니다)

어쨌든 이래서 제국의 지배는 제국주의의 지배보다 은근하며 무섭습니다. 이 지배는 사회 세계의 깊숙한 곳까지 확장하는 사회 질서의 모든 등록기위에서 작용하며, 인간 본성에 직접 작용합니다. 제국의 지배 대상은 사회 생활 전체입니다. 또한 제국의 권력은 정치권력 뿐 아니라 삶권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데, 뭐가 탈중심이야?

네그리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민족국가도 오늘날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미국은 제국 안에서 특권적 지위를 점합니다. 하지만, 옛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릅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건국과정부터 제국주의 종주국이 될 수 없는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본문에서 미국 헌법의 변천과정을 분석하면서 상세하게 제시됩니다.

 

그럼 어떻게 투쟁할까?

우선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제국의 엄청난 억압과 파괴력(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예전의 지배 형태(주권국가, 민족국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그리워해서는 안됩니다. 제국으로의 이행과 그 지구화 과정은 해방 세력에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제국은 지배세력들이 지구적 관리를 위하 창출해낸 주권기구입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저항 세력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바로 다중입니다. 권력의 지구화에 맞서 다중 역시 창조적 힘을 통해 대항 제국, 즉 지구적인 흐름과 교환에 대한 대안적인 정치 조직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다중은 제국에 항의하고 전복하는 투쟁들을 통해 제국을 관통하고 넘어설 새로운 구성 권력을 발명해야 합니다. 제국에 항의하고 대안적 지구 사회를 그리는 세력은 스스로를 지리적 지역에 한정시켜선 안 됩니다.

by 부정변증법 | 2008/11/03 13:07 | 철학, 사회학 탐구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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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edGhost at 2008/11/03 14:56
하트와 네그리를 비판한 제국이라는 유령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비판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3 15:18
아, 그건 국제사회주의 동맹(트로츠키주의자)에서 나온 책인데, 그들은 2000년에는 그런 주장을 할수 있겠지만, 2008년에는 그런 주장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미국의 헤게모니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현상, 미국 역시 지구제국의 한 마디로 행세해야지 독불장군이 안됨이 입증되어가고 있는 현상이 분명해지는 지금은...
Commented by 에드슈 at 2008/11/03 22:05
제국을 한 4년 전 쯤 읽고 나서 또 보진 못해서 가물가물하다가, '제국' 요약을 보니 언뜻 생각이 나는군요. :)

읽을 땐 참 흥미진진했는데, 다시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제국'에 대한 정의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인상이 듭니다. 거칠게 말하면 '제국=자본(주의)'였다는 기억은 나는군요. 푸코의 '삶-정치' 개념과 들뢰즈의 '리좀', '기관 없는 신체', '열린 공간-닫힌 공간', '유목주의' 개념의 차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의 포인트는 '제국주의'와 '제국'의 역사적 과정과 '구성 권력'으로서의 제국과 '다중' 부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0
네. 특히 제국주의가 제국이 되면서 다중이 탄생한게 아니라 거꾸로 노동계급이 사회적 노동자로 다중화되면서 여기에 대한 반격으로 제국이 등장한다고 보는게 네그리의 독특함입니다. 여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항상 자본이 갑, 노동이 을인데, 네그리는 노동이 갑, 자본이 을입니다. 이로써 각종 정치체제들을 단지 상부구조가 아니라 자본의 무기이자 공격으로 바라볼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Commented by 다이몬 at 2008/11/03 23:54
미국에서 하는 수업의 교수중 한명이 네그리와 하르트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지요. 수업 시간에 공간이론과 더불어 네그리를 공부했는데, 네그리의 사상의 중심에는 그람시가 있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들뢰즈의 영향이나 스피노자의 영향은 사실 그리 크다고 볼 수 없죠. 오히려 용어들 때문에 오해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네그리와 프랑스 공간주의자들, 폴 비릴로나 앙리 르페브르와의 아나키즘적 연관성이 더욱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2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 들뢰즈의 용어라고 알려진 용어들도 상당수는 다른 데서 차용해 온 것이니까요. 들뢰즈는 기본적으로 베르그송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네그리가 엄청나게 인용하고 있는 마뉴엘 카스텔스를 국내 '프랑스 사대주의자들'은 개무시하더군요.
Commented by 라이히 at 2008/12/06 17:13
미시정치를 강조한 푸코-가타리-네그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입론화 하여 큰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는 측면에서 제국은 의미 있는 테제들이라고 여깁니다....
Commented by 라이히 at 2008/12/06 17:17
요약글, 잘 읽었습니다. 제국이 생산하는 삶정치, 이데올로기 생산공장 현장에서 가장 잘 마주치고 있는 장면이 바로 학교현장인듯 합니다. 예를 들어, 원어민과 수업. 그리고 그 원어민에 대한 제국신민이 되기 위한 꼰대들의 모습들...아양들...젊은 '백'인에 영어를 써서 '제국'삶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그 욕망과 그 욕망이 생산되는 현장! 따라서 제국은, 역설적으로 제국 바깥이 없음을 드러냄으로서 즉자적으로 대항제국을 형성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나랑 같이 근무하는 원어민 존만한 놈은 총기가 미국헌법에 보장되었다고 씨부렁대더군요. 대항 제국 세력인 똑똑한 어떤 초딩은 "What's the benefit of having a gun?"이라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들고...문제는촌놈촌년티 못벗은 꼰대들인데...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2/06 17:55
영어교육은 꼭 제국의 뜻대로 되지 않을겁니다. 영어의 보편화가 없었으면 사파티스타 운동이 국제화되지도 못했겠죠.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이 점이 아주 약합니다. 이게 엉뚱하게 민족주의가 좌파행세를 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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