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어와 메세지

한국인들의 화법이 원래 그런가, 아니면 그들이 그런가? 이상하게 요즘 정부 발표는 수식어를 많이 쓴다. 연설을 하던, 발표를 하던 그 긴 글의 앞의 절반은 수식어다. 깊이 숙여 사죄하던, 아니면 국민을 섬기던, 국민이 무섭다고 생각하던,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려 하던, 하여간 이런 저런 사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집어 넣는다.

물론 정부는 앞의 부분을 수식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의 부분은 항상 이유, 근거가 되고, 뒤의 부분은 그것에 따른 대책이 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이유와 근거는 항상 바뀌는데, 그것에 따른 대책은 항상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책이라 불리는 뒤의 부분을 먼저 정해 놓고, 앞의 부분을 상황에 따라 멋대로 가져다 붙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부가 아무리 떠들어도 항상 불변하는 메세지.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규제완화: 즉 기업과 자본이 멋대로 하도록 하겠다.
2) 감세: 즉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덜 지겠다.
3) 법질서 확립: 즉 억압과 통제를 강화하겠다.
4) 대미공조 강화: 항상 미국을 따라가겠다. FTA는 반드시 비준해야 한다.
5) 시장경제 활성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 즉, 모든 영역을 시장화, 상업화 하겠다.

이런 정책들을 통틀어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제공한 근거는 "비대한 복지국가"였다. 비대한 복지국가가 각종 비효율과 관료주의 도덕적 해이를 낳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의 측면을 조금 낮추고 개인적 책임의 측면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이게 1990년대에는 제법 먹혔던 주장이다. 그리고 이 정부가 처음 출범하면서 앞의 다섯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했을때 그 이유, 근거 역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었다. 온 세계 경제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그 홍역의 원인이 바로 과도한 자유시장, 고삐풀린 자본 때문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이에따라 신 브레턴우즈가 논의되는 등 자본을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참 재미있다. 이런 변화된 상황을 앞의 부분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 경제가 금융자본의 지나친 횡포로 인해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도 도리없이 어려운 것이다. "라고 이유를 제시하고는, "따라서 그 대책으로.... 원래 말했던 대로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밀고 나가겠다. 상황이 바뀐만큼 더더욱 원래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

예를 들면 우리가 FTA를 빨리 비준해야 미국도 비준할 것이다였다가 오바마와 민주당이 FTA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FTA를 빨리 비준해야 한다로 말이 바뀌는 식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법이다. 정말 용량이 2메가 밖에 안되서 그러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이해할수 없는 말들을 그럴듯하게 여기고 있는 한국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by 부정변증법 | 2008/11/03 09:16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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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키세츠 at 2008/11/03 16:35
그러게 말입니다........
Commented by 릭블레어 at 2008/11/03 17:09
효과적으로 무언가를 알리거나 전하는 방법이 광고인 이유는 목적과 의도가 효과적으로 축약돼 소비자들이 쉽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바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겠죠.

그들에게 있어서 알리는게 중요하기에 이런 화법을 채택했다면, 정부가 갖는 화법은 목적을 감추고 의도를 흐리게 하는 화법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의를 알 수 없게 하는것만큼 사람을 무지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며, 무지한 사람만큼 말장난에 속아넘기 쉬운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러니 이렇다.'하면 '그렇군'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과 모른척하기 뭣해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이용한 정부식 눈가리고 까꿍 전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수호할 백성을 필요로 하는게 아닌 떠받드는 추종자를 원하는 듯한 당과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런 허무한 음모론도 터무니 없다고 비난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또, 생각해봄직한 문제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한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인의 성질이 급해서 들어야 할 말도 다 안듣는 다혈질적인; 국민성도 한 몫 하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면, 스스로 생각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도 아닐지.


글 재미있게 읽다가 좀 지저분한 덧글 남깁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3
원래 합리성이란 더 나은 논거를 통해 자기 주장을 입증하는 것인데, 주장과 논거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주장을 뻔뻔하게 해대는 이명박을 보면 차라리 뉴또라이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ommented by 카도 at 2008/11/03 19:40
제정신으로 이 글을 읽고 문제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명박 정부가 XX이라는 걸 알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외엔 대체 현정부가 뭘 하고있는지 알 방도가 없거나, 아니면 현정부와 똑같은 XX이라서 뇌회로가 원체 꼬여있거나~ 그런 거 아닐까여! 참 신나고 재미난 얘깁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3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인간들입니다. 미국의 부시 지지자 28%와 아마 비슷한 뇌회로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키프레스 at 2008/11/03 20:41
읽다보니 더더욱 답답해 지는 세상입니다. 아직 재임이 1년도 안 지났는데 이정도면 남은 4년 2개월 어떻게 버텨야 할 지 한숨부터 나오네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4
2010년까지만 참읍시다. 그때가 저 놈을 레임덕으로 만들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 때 안되면, 쩝....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4 03:50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유는 언제나 핑계일뿐.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08:14
전형적인 악당의 담론이죠. 젠장 이것도 사이버 모욕죄에 걸릴려나?
Commented by 炎帝 at 2008/11/04 11:18
창룡전이라는 판타지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에 정치인들 까는 내용이 상당히 많은데,
거기에 나오는 수상이 온갖 수식어 붙이면서 사람 빙빙 돌게 하는 말버릇을 하는 것을 보고
국제적으로도 씹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심지어 일본어의 적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정말 저런 족속들을 보고 있노라면 국어의 적이 따로 없구나 싶습니다.
근데 저렇게 빙빙 돌려 말할 수 있는 한국어 놔두고 영어 몰빵교육하자 한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영어로도 빙빙 돌려말할 자신이 있었던겐가....=_=;;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외치는 작자들,
대부분 거지꼴 되면 국민 손 빌리려 하는데 신자유주의가 싸지를건 다 싸지르고
치우는건 국민에게 맡기는 주의였나요?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11/04 12:53
원래 신자유주의가 그런거였습니다. 이번 미국의 매케인과 오바마의 정책을 보면 확 비교됩니다. 매캐인은 부실 채권때문에 은행이 입은 손실을 세금으로 메꾸자고 합니다. 오바마는 바로 그 부실 채권의 당사자인 채무자들의 채무를 세금으로 보조하자고 합니다.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 관점은 판이합니다.
Commented by 김성일 at 2008/11/05 21:09
다나카 요시키는 원래가 좌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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