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교육론

마르크스는 교육에 대해 논문을 쓰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가 교육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문헌은 단 한편의 짧은 논평 뿐입니다. 여기에 그 논평과 그것에 대한 저의 나름대로의 독해를 올립니다. 모쪼록 많은 비판적 검토 있으시기 바랍니다.



인터내셔널 임시 중앙 평의회 대의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대한 지시들 중(www.marxists.org에서 퍼와서 대충 번역함) 사실상 출판된 문헌으로는 이것이 유일합니다.

 

4. 청소년과 아동의 노동

 

원문) 우리는 근대 산업이 성별을 막론하고 아동과 청소년이 사회적 생산의 거대한 작업에 참여하게 하는 경향을, 비록 자본 아래에서는혐오스러운 것으로 왜곡되지만, 진보적이고, 건전하고 정당한 경향으로 간주한다. 사회가 합리적인 상태일 때 9세 이상의 아동이라면누구라도 신체 온전한 성인이 먹기 위해서는 일해야만 하며 그 노동은 머리 뿐 아니라 손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편적인자연법칙에서 면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읽기)마르크스는 근대 산업에 아동, 청소년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것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사실 생산활동으로부터 격리, 분리된아동, 청소년의 개념은 매우 최근세적 생각이다. 중세때나, 근대초기에나 아동과 청소년은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쉬운 일부터가담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과, 완전히 격리된 공간에서 훈육과 규율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할지는 섵불리 판단할수 없다. 그러니 적어도 학교 안다니고 일나간다는 이유로 불쌍히 여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마르크스는 아동이 자본주의적이윤추구의 동기로 착취되는 것은 혐오스럽다고 못 박는다. 따라서 아동이 노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노동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합리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그 사회에서는 어릴때 부터 일하고, 일을 통해 배우는것이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일은 구상과 실행이 통일된, 이론과 실천이 통일된 그런 일이라야 할 것이다.

 

원문)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아동과 청소년을 서로 다르게 취급해야 할 세 등급으로 나누어서 다루어야 한다; 첫번째등급은 9세부터 12세, 두번째는 13세 부터 15세, 그리고 세번째는 16, 17세다. 우리는 첫번째 등급의 아동의 고용은작업장에서든 가내 노동이든 법적으로 두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며, 두번째 등급의 아동은 네시간, 그리고 세번째 등급은 6시간으로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번째 등급의 경우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의 식사와 휴식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읽기)여기서 '하지만'이 무엇에 대한 하지만인지는 곤혹스럽다. 아마 앞에서는 9세가 넘으면 바로 일 하면서 배운다고 했지만,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자녀들은 자본주의의 혐오스러운 노동에 바로 노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령별로 단계단계 노출시켜야 한다는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동은 하루 두시간, 청소년은 네시간, 그리고 16,17세는 하루 여섯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노동시간 외의 시간이 교육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학교가는 시간+공장가는시간 이런식으로 무식하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이론시간+현장실습 시간, 이런 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이 시절에는 아동과 청소년의 고용과 장시간 노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이 주장은학교에 다니는 애들을 공장에 보내라는 의미보다는 공장에 다니는 애들을 학교에 보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원문)9세 이전에 초등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노동자를 단지 자본 축적을 위한 도구로 격하시키고부모를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녀를 내다 팔아야 하는 노예 소유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체계에 대한 가장 필수적인 해독제에 대해서만다루고 있는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 편에서행동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다.


읽기)마르크스는 의무교육제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의무교육제가 국민교육으로 정착되는 것은 궁극적 답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노동자계급의 자녀가 빈곤의 대물림, 빈곤한 가정형편 때문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억지로 일터로 나가는 그런 상황, 즉 부모가자녀를 노예로 판매하는 그런 상황을 중단시키기 위해 의무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의무교육이 없다면 가장들은 자녀들을일터로 돌릴 것이며, 이들의 심신은 치명적으로 손상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무자비한 부권을 사회가 아동, 청소년 편에서 제한할수 있어야 하며,  이는 사회의 의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의무교육의 의무가 누구의 의무인가가 분명해진다. 프로이센 정부가주장하는 의무교육은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이다. 의무인데 돈까지 내라면 안되니까 국가가 돈을 내어주는 것이다.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의무교육은 사회가 약자인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지는 교육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얼마나 큰가?

원문) 중간계급, 상류계급들이 그들의 후손들에 대한 의무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실책이다. 이들 계급들이 기득권을 공유함으로써 아동들은 그들의 편견에 의해 고통 받을 운명에 처해있다.


읽기)물론 의무교육은 세금을 걷어서 시행할 것이고, 그 세금은 중산층, 상류층에게서 걷힐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조세저항을 일으킬것이며, 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를 교육하는데 자기 돈을 쓰냐고 항변할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조금은 상투적인 후손들에 대한의무를 제시한다. 그리고 많은 아동들이 기득권 계급의 욕심 때문에 고통받을 것이라고 인도주의적인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런데인도주의적인 지적이 영 마르크스답지 않다. 이 대목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를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원문)노동 계급의 사정은 이와 사뭇 다르다. 노동자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아이들의 진정한 이해관계나 인간의발전을 위한 정상적인 조건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중 보다 계몽된 부분은, 자라나는노동자 세대의 육성의 자기 계급의 미래, 즉 인류의 미래가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먼저 아동과청소년 노동자들이 현재 제도의 파멸적 영향들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통찰을 사회적 힘으로전환시킴으로써, 즉 주어진 조건 아래서 국가 권력에 의해 시행되는 일반적인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이러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현재 자신들에 맞서 행사되고 있는 그 권력을 자신들의세력으로 바꾸게 된다. 그들은 고립된 개인적 노력으로는 헛수고가 될 일을 전반적인 하나의 행위를 통해 이루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교육과 결합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의 노동 사용이 부모나 고용주 모두에게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기)노동계급 역시 의무교육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건 돈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지한이유는 소외된 노동에 매여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아서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지지기반이중하층이고,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고학력층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가? 자생적인 계급의식은 없다. 어렴풋한 불만, 원한은 있을수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날 벌어 그날 살기 위한 생존 본능, 돈 몇푼에 얼마든지 양심을 팔수 있는 그런 생존본능이 가장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자생적인 의식은 단지 무지일 뿐이다. 노동의 위대함, 노동을 통한 심신의 건강성을 예찬하는무리들은 바로 자본가를 위해 진군나팔을 불어대는 족속들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하면 할수록 편협해지고, 불행해지고,병들고, 무지해지는 일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자연적인 상태는 무지일수밖에 없다. 그리고 루카치가 훗날 지적했듯이 무지한 상태로있는 한, 의식이 없는 한 그들은 계급이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단결만으로 승리할수 없고, 그런 노동자들은 계급이 아니기에 단결하지도 못한다. 이에 노동자들 중에서 선진적인부분(투쟁성이 아니라 지성을 말하는 것이다)은 장차 자본가와의 투쟁은 지적이고 균형잡힌 그런 노동계급의 충원, 즉 자신의2세들, 다음 세대들이 자본가의 2세들을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능가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승리가 자본주의의 미친 고삐를 잡아 채서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할수 있기에, 바로 그들의 2세들을 지덕체가균형잡힌 건강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에 인류의 미래도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들의 2세들은 소외된 노동으로부터보호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고 편협한 기계로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각성한 노동자계급은 아동과 청소년, 그들의 자녀가 저 인간 잡아먹는 공장에서 무한정 노동하지 않게 하는, 그들을 저 파멸적 노동으로부터 국가의 힘을 빌려 강제로 떼어낼수 있도록 하는 의무교육제도의 법제화를 강력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일견 이는 국가가 교육권을 틀어쥠으로써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소외된 노동 대신 학습을 하게되는 노동자의 2세들은장차 지성을 쌓아가게 될 것이, 바로 그렇기에 자기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을 도리어 자기들의 무기로 재전유 하게 되는 것이다. 이대목은 최근 헌장학교(차터스쿨)를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거부하지 않고 도리어 진보적 교육자들이 팀을 짜서 이를 재전유하여 많은효과를 거둔 미국의 진보교육진영의 성과를 예견하는듯 하다. 오늘날은 당연한 의무교육제도는 당시 혁명운동가들에게 차터스쿨보다 더심각한 의혹의 대상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프로이센 왕국 정부가 세운 학교에 다녀야 하다니, 끔찍하지않은가?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전반적인 지성의 향상에 기여하고, 아동, 청소년을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보호하는역할을 하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사유, 전복적 사유의 정수다.

 

원문)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음 세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정신적인 교육

둘째: 신체적인 교육. 체육이나 교련에서 실시되는 종류의 것

셋째: 기술 훈련. 모든 생산 과정의 일반적 원리를 전달하며, 아동들과 청소년들에게 모든 업종의 기본적인 도구의 사용법을 실제 사용을 통해 전수하는 것.


정신 훈련, 체육 훈련, 기술 훈련 등의 과정은 앞서 이루어진 아동, 청소년 노동자의 분류에 따라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기술학교의 비용은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생산품의 판매를 통해 충당되어야 한다.

유급의 생산적 노동, 정신교육, 신체 단련, 기술 훈련 등의 결합을 통해 노동자 계급은 상류 및 중류 계급을 훨씬 능가하게 될 것이다.

9세 부터 17세까지의 모든 사람이 야간 노동이나 건강에 해로운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법률에 의해 엄격히 금지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읽기) 그리고 나서 마르크스는 점차 노동자계급이 재전유해야 할 교육의 상을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프로이센 정부의 교육 목표는 충성스러운 군인을 기르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한 마디로 지덕체가 균형을 이루고, 여기에 사회를움직이고 있는 생산의 각 분야의 기초적인 기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지덕체야 그렇다고 치지만, 기능교육에 유념해야 한다. 이기능교육은 직업교육이 아니다. 즉 이것을 익혀서 취업을 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다만 사회 각 분야의 생산의 원리를 실제 해봄으로써 알게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분업을 통해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한 예방주사다. 어릴때 부터 맡은 바 일이 아니라 일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단지 머리가 아니라 직접 해봄으로써 알게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의 전 과정, 그리고 가능하면 생산의 모든 분야를 이론으로나 실제로나 두루두루 알도록하자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필경 노동자에 의한 자주적 생산관리, 협동조합적 생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훗날 그는 "협동조합에관하여"라는 문건에서 "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의 물건을 소비하는 것 보다, 생산하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의 목표는 오매불망 분배의 평등이 아니다. 그건 속류 좌파다. 그의 목표는 생산과정에서의 자주성이다. 그런데 생산과정에서자주적이려면 생산과정을 꿰뚫고 있어야 하며, 또 그 분야가 사회적 분업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아야 하기에, 사회의 총 생산과정,전 산업 분야들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실제 육체노동을 통한 작업기능이 있는 경영자"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교육을 통해 육성하기를 희망하는 다음 세대 노동자다. 반면 자본가의 2세는 육체노동 경험 없이 단지 경영자의 능력만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중 더 경쟁력 높은 쪽은 노동자의 2세들이다.


이는 이른바 정신적인 교육만 치중하여 유약하고 퇴폐적이 된 지배계급을, 실제 작업과 이론을 결합하고, 구체적인 작업을 통해 추상적학설을 학습한 실천적 지성인들의 육성을 통해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자고 말한 존 듀이의 교육학과 그대로 연결된다. 바로이 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존 듀이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프레네 학교의 구호가 "프롤레타리아 교육"인 이유를 알게된다. 혹은우리나라의 작업장 학교, 풀무학교 같은 학교의 교육이 전교조 서울지부 남부지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 발언을 수업시간에 자주하는 교사들보다 훨씬 노동자계급의 편에 서 있는 이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왜냐고? 마르크스는 여기서 계급의식을 직접 가르치자는 주장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균형잡힌 지성과 건강한 신체,그리고 생산의 전 과정을 살피는 폭넓은 기능교육만 말하고 있다. 그는 암암리에 제대로 지성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본주의의문제점을 꿰뚫어 볼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듀이나프레네 학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어떤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을 거부한다. 스스로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훈련, 현실속에서 문제를 발견해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런 경험을 자라면서 한 학생들은 장차노동현장에서도 결코 눈멀고 귀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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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8/10/30 21:57 | 마르크스 읽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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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띠현정 at 2008/10/31 10:45
맑스에 대한 사유. 나는 이 사람을 '영제국의 한복판'을 살다간 사람으로 보고자 합니다. 나는 맑스보다, 베른슈타인이 더 한국현실에 적합하다고 보는데, 맑스가 1883년 세상을 떠난 것을 생각하면 그렇죠.

맑스 생존시기가 리스트 국민경제론에 입각하여 독일이 제1차 산업혁명에 바탕한 비약적 경제성장의 시점이었다면, 베른슈타인의 생존시기는 바로, 제2차 비약적 경제성장의 시기였고 전기와 화학을 중심으로 세계 산업의 중심국가가 독일과 미국으로 전환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영국이 이를 못견디고 전쟁으로 간 것이고.

님의 아래 "실천교육학 수립을 위하여" 란 글에 나왔듯, 제1차 비약적 산업화를 거치고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던 시점에서 한국의 교육운동이 일어났지만 제대로 해 내지 못한 것입니다. 나는 진보정치의 수립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바로, 운동의 정치를 제도의 정치로 전환시켜야 했는데, 민주노동당에 '인민주의자'들이 틈입된 순간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는 맑스보다 베른슈타인 같이, 박정희 시기의 비약적 경제성장이 아니라, 민간민주정부 시기의 디지털 경제로 전환과 '금융화'에 천착하여, 운동의 정치를 제도의 정치로 바꿔갈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아요. 전교조 독자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될 일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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