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0일
아름다운 교육,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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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2/20 01:06 | 교욱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

# by | 2009/12/20 01:06 | 교욱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2)
일전에 참된 경쟁은 반드시 승패를 갈라야 하는 살벌한 쟁투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달성함이며 오히려 협동과 배치되지 않는 개념임을 살펴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신자유주의와 함께 강요되고 있는 한 줄 세우기 학력 경쟁은 사실상 경쟁의 본뜻을 벗어나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경쟁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가 따지는 것은 한가로운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어차피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무한경쟁에 들어선 지금 왜곡된 경쟁이라도 그것에 적합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강요하는 교육에서의 경쟁도 이런 식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참되고 바른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요악으로서 경쟁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지만,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냉혹하게 말한다. “어릴때 부터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공정택의 저 뻔뻔한 얼굴을 보라.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변화된 세계의 경제 지평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논리로 매우 “경쟁력을 저해하는” 논리다. 즉 “경제 이데올로기”을 주창하는 집단이 정작 경제에 무지한 것이며, 글로벌 경쟁을 말하는 집단이 글로벌 기준을 전혀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1세기의 경쟁력은 창조력과 소통능력이다.
물론 글로벌 경쟁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토록 살벌한 것이라면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력은 세계 경제가 현재 도달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다. 요컨대 지금이 13세기라면 이 경쟁력은 농업과 관련된 것이며, 19세기라면 산업과 관련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세계 경제에서는 어떤 능력이 경쟁력이 될까?
우선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요구하는 데로 타자보다 더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한 경쟁이라는 천민자본주의적 개념을 일단 받아들여보자.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가장 예리한 비판은 상대방 논리 외부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논리 한 가운데서 그들의 논리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력도 타자보다 더 잘 팔리는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쉽게 정의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윤의 합계 액수지 판매한 상품의 수량이 아니다. 소위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상품이 고부가가치 상품인가는 그 상품이 유통되는 사회적 배경에 따라 결정되며, 따라서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소위 경쟁력 역시 사회적 맥락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자동차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지만, 오늘날에는 GM이 미국 10대 기업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반대로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조선시대로 간다면 그는 전혀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상품은 무엇일까?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과 앨빈 토플러가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앞으로의 사회는 지식·정보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네트워크 사회라는 것이다. 지식·정보산업은 20세기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물질산업이 아니라 비물질, 관계 산업이며, 그 생산물은 ‘소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이 된다. 애초에 지식이나 관계는 거래 후에도 주인에게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특정한 지식이나 관계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 보유자와 접촉해야 한다. 그래서 판매량은 의미 없는 개념이 된다. 주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접속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뀌어나가면 당연히 경쟁력의 의미도 바뀐다. 20세기까지의 경쟁력은 매우 단순화 시켜 말하자면 주어진 시간에 남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노동능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을 접속시키는 능력이 바로 경쟁력이다.
많은 사람을 접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매우 독창적이고 유용해서 여기에 접속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양적으로 확장하고 질적으로 심화하는 것이다. 흔히 “상품이 아니라 감동을 판다.”에 해당되는 능력인데, 이게 단지 가식적인 웃음과 친절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 두 방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자는 창조성, 후자는 소통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21세기의 경쟁력은 창조력과 소통능력이다. 이미 지구적 분업이 활발한 상태에서 기존의 생산라인이 제3세계로 넘어간 마당에 창조력과 소통능력이 아니라 엉뚱하게 “소유”와 “재화생산”에 기반한 경쟁력을 외치는 것은 어리석다.
창조력과 소통능력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20세기까지는 자동화된 공장과 번쩍이는 기계들이 생산력과 번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이제 한 수 아래의 산업이 되었고, 부가가치도 매우 낮다.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 본사에는 공장이 없다. 그곳에서는 오직 연구와 관계망 관리만 한다. 그들은 특정한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어떤 삶의 방식, 삶 그 자체를 생산한다. 삶의 방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고도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작업이다. 필립스의 카피 문구인 “명품을 만드는 작은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21세기의 인재 양성: 창조와 소통에 기반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성찰과 여러 예술적인 능력들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반은 인문적 교양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진 자질이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교양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지만, 아직 현실에서는 삶 자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인간의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경제의 가장 강력한 생산수단은 바로 사람이다. 21세기에는 얼마나 많은 자본, 혹은 물질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가에 의해 경제력이 좌우되는 것이다.
물론 이 인재는 20세기의 인재와 전혀 의무가 다르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주어진 규율을 잘 준수하는가, 혹은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가 등은 인재의 기준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반복되는 규율적인 작업은 기계가 할 일이며, 지식 그 자체는 인터넷에 공유되어 있다. 세계적인 초국적 기업일수록 도리어 노무관리가 느슨하고, 일터와 쉼터의 구분이 모호해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재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며, 그것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또한 이렇게 창출된 삶을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공유(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사실 필자는 그리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학교 교육이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면, 그 인재는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갖춘 인재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기르는 교육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창조의 경험과 소통의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다. 즉 학교가 창조와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창조력과 소통능력은 매우 민감하고 예민한 능력이라 조금이라도 억압이나 제한이 느껴지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1년간 매우 활발했던 학급이라도 교사가 1주일만 억압하면 화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교육은 경쟁력을 잠식한다.
21세기의 새로운 경쟁력 측면에서 볼때, 현재 한국의 공교육은 매우 심각하다. 게다가 이 심각한 상황을 도리어 강화하자는 주장이 경쟁력의 이름을 걸고 태연히 나오기까지 하고 있다.
지식을 화석처럼 암기하는 수업,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시험, 그리고 그 시험 점수를 더 받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은 한 눈에 봐도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은 단지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해악을 끼친다.
우선 암기식의 수업은 교과서에 주어진 지식을 절대화 한다. 또한 이러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기계적인 두뇌작용이다. 따라서 주어진 한계 너머를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활발하고 유연한 두뇌를 필수조건으로 하는 창조적인 능력을 크게 훼손한다. 또 암기식 수업은 학습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만든다. 수업은 교사의 독백으로 진행되고, 학생들 역시 개별적으로 교사의 말을 습득한다. 학습과정에서 협동이나 소통의 경험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는 창조적인 능력 뿐 아니라 소통능력도 훼손한다.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것은 시험이다. 시험은 교육의 결과를 수치화하여 측정하는 절차다. 그런데 창조력은 기존의 것을 넘어섬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측정 가능해진 순간 이미 그것은 더 이상 창조적이지 않게 된다. 학생이 창조적이 될수록 시험은 망칠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시험 점수가 높아질수록 그 학생은 자신의 창조성을 상실할 것이다. 또한 시험은 소통을 차단한다. 시험에서 소통행위는 곧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시험은 모든 소통을 단절한 완전한 침묵과 고립 속에서 치뤄진다. 따라서 소통능력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시험을 견디기 어려워하거나 부정행위를 할 것이다. 반대로 시험을 잘 치는 학생일수록 매사를 혼자 처리하려 할 것이며, 소통능력에 심각한 결함을 보일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이 시험 점수를 근거로 등수를 매겨 경쟁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학생들은 교과서적인 지식과 시험의 틀을 넘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포기하게 될 것이다. 또한 등수를 다투어야 하기 때문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질투”가 교실을 지배하게 되며, 결국 소통의 경험은 시험 뿐 아니라 모든 학습과정에서 단절되고 말 것이다. 누가 잠재적인 경쟁자와 유의미한 정보를 소통하겠는가? 또한 경쟁은 창조적 사고를 위해 필수적인 모험심을 거세한다. 사소한 실수도 바로 석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기존의 틀을 벗어난 모험을 감행하겠는가? 결국 시험 점수를 근거로 서로 경쟁하는 교육은,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가는”인성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주어진 틀에서 누가 덜 벗어나는가를 겨루는 퇴행적인 경쟁을 조장한다. 즉 누가 더 경쟁력을 죽이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아니면 누가 20세기 식의 경쟁력을 더 많이 갖추고 있나 경쟁하는 것이다.
참교육이야 말로 경쟁력 있는 교육
지금까지 21세기의 경쟁력은 결코 고립된 학습경쟁을 통한 시험 점수 올리기로 얻을 수 없는 창조력과 소통능력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능력은 주어진 틀을 벗어나는 다양한 경험과 고차적인 문제들을 동료들과의 협동을 통해 해결하는 그런 학습과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경쟁보다 협동을, 획일화보다 다양화를 추구하는 교육은 전교조가 창립이래 계속 요구해왔던 그런 교육이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참교육이라 불렀다. 물론 우리가 아직 참교육의 구체적인 상과 다양한 모델들을 개발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협동과 소통에 기반한 비경쟁적 교육이라는 기본 정신은 항상 유지해 왔다. 그러니 우리는 교육경쟁력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미래형 교육경쟁력을 주장해왔던 것이다. 우리가 표준화된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하고, 입시교육을 강화할 소지가 있는 일체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세계와의 경쟁을 회피하는 쪽은 이명박, 공정택의 교육정책이다. 학업성취도 점수를 높이기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며 밤잠을 설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매우 치열하고 대견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경쟁력을 갉아먹고, 세계와의 경쟁 대신 옆자리 친구, 옆의 학교와의 경쟁을 선택한 옹졸한 모습인 것이다.
# by | 2008/08/20 14:41 | 교욱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 by | 2008/08/20 00:3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2) | 덧글(39)
# by | 2008/08/19 14:10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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