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교육,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40여 평생을 교육과 사색과 연구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보낸 평생에 후회도 없고 자랑스러움만 가득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교사로 16년, 대학 강사로 5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책도 네권을 냈습니다. 물론 안 팔리는 학술서적이지만요....

  원래 대문에 아카데미 학당 그림이 걸려 있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옛 철학자들이 토론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만, 잠시 일본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을 산책하고 있는 생존해 있는 철학자의 사진을 대문에 올려둡니다. 저 자세와 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창을 여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 들어오신 분들중 뉴라이트 계시면 잘 뒤져서 좌빨 어쩌구 하면서 고발을 하든가 말든가 하시고, 들어 오신분들 중 개념 탑재하신 분들은 이 글에 댓글 달거나, 아니면 방명록 남겨주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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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12/20 01:06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 | 덧글(44)

한 교사의 시국 선언 - 신성한 교육의 장을 이념으로 더럽히지 말라

지난번에는 블로거로서 시국선언을 하였고, 이번에는 교사로서 시국선언을 합니다.

나는 신성한 교육의 장을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질 시키고자 하는 일체의 세력들에게 결연히 맞서, 교육을 통한 대한민국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며, 정부 역시 이들 편향된 이념 세력에게 휘둘리지 말고 신성한 교육의 장을 지켜 줄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1)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학생들에게 계승시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일부 이념 집단들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419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 독재 정권을 미화하며 이러한 관점을 이른바 현대사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국고를 탕진해 가며 졸고 있는 학생들 앞에서 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런 과격한 이념집단들을 신성한 교육의 장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이념집단을 이용해서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현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합니다.
 
2) 나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일부 집단들은 87년 6월 항쟁의 소중한 민주개혁의 성과를 좌파니, 좌빨이니 하면서 이념적으로 몰아 붙이면서 편향된 반공, 냉전 이데올로기를 신성한 교육의 장에 덧칠하려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망각하고 동족간의 대결과 전쟁을 선동하는 주장에 동조하라고 교단을 흔들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편향된 이념집단들에게 철저히 맞설 것이며, 이런 이념 집단들의 준동을 방치한 정부에게도 그 책임이 있음을 묻고자 합니다.

3) 나는 학생들이 장차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자의 기회를 균등히 가지고, 각자가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고자 합니다. 이리하여 이들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게 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런데 일부 시대착오적 특권층은 정당한 기회 균등을 자신들의 특권의 박탈로 여기고, 각자가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것을 마치 천민들이 감히 자기들 영역을 넘보는 것 처럼 알러지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리하여 이들은 계속해서 비싼 비용이 드는 고등학교를 만들려 하고 있으며,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대학 등록금도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회 균등이 정상이며 차등이 비정상이라는 이 진리를 전도하여 기회균등은 비효율, 차등은 경쟁적 효율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포장하여 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신성한 교육의 장에 시장판에나 어울릴 경쟁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4) 나는 상기한 바와 같은 과격한 이념집단들이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것이며, 이들의 준동을 방치 내지는 조장하는 정부에게도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자 합니다.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나의 이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에 의해 보장됩니다. 물론 기본권도 제한될 수 있으나 나의 이 행위가 헌법 제37조의 국가안전, 공공복리에 저해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이런 생각을 다른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지하철의 기독교 선교단처럼 듣기 싫어 하는데도 떠들어 댄다면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나 홀로 선언한 것은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제한될 수 없습니다. 그 점은 나 보다 앞서 시국 선언을 한 17000명의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교과부와 각시도교육감은 자신의 양심과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징계하려 드는 탈헌법적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이나 교사들이 원하지 않는대도 근현대사 특강이라는 이름의 편향된 이념교육을 강행했던 행동이야 말로 징계감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주장들은 모두 대한민국 헌법을 인용한 것입니다. 요컨대 나는 헌법준수 서약을 한 것입니다. 나를 징계하려면 헌법을 개정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6월 29일 풍성중학교 교사 권재원

부기: 나는 나의 이 선언이 널리 퍼져서 교과부 귀에까지 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펌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

by 부정변증법 | 2009/06/29 21:47 | 교육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22)

나의 자부심을 돌려달라 -부정변증법의 시국선언

나는 작금의 상황에 전율한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향해 절규한다. 그리고 나는 작금의 상황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무슨 이념 때문도, 무슨 이익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현 정부가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자부심과 자존감을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 그것은 무릇 모든 인간의 기본권들 중에 가장 중심에 위치한 것이다. '존엄(dignitas)'. 이것은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는 증거다. 오직 인간만이 생명보다 존엄을 더 중요시 한다.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달리 말하면 존엄을 박탈하거나, 존엄을 손상시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거나 하급인간으로 내려 앉으라는 가장 잔혹하고 비열한 행위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신체, 자기 정신, 그리고 양심의 정당한 주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양심을 침해하지 않는한 여기에 대한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1학년 사회책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따라서 자신의 신체, 정신,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만약 정부가 이것을 억압한다면 이는 시민들을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설마 신이겠는가?

나는 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최소한의 영역인 이 절대적인 자유를 뒤흔드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들이 우리에게 짐승되기를 강요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그대들을 짐승으로 대접하겠다고.

보라. 저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자신들의 생각을 밝힌 교사들에 대해 소소한 법규를 들이대며 징계를 들먹인다.
보라. 저들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한 언론인의 사생활을 사방에 까발리고, 그의 모든 노고를 한낱 편파적인 거짓 보도라고 악의적인 선동을 하고 있다.
보라. 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짐승만도 못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보라. 저들은 자기들에게 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자유를 들먹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안보를 들먹이고 있다.
보라. 저들은 우리에게 생각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되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댓가로 잘 먹여 주겠다고 사탕발림을 하고 있다. 잘 먹여주니까 잘 따라다니는 근성은 저 길바닥의 잡종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저들은 우리에게 개가 되라고 하고 있다. 심지어 그러면서 여물통 마저 반토막을 만들었다.
보라. 저들은 예술가들에게 생각없는 기능인이 되라고 한다. 생각은 위에서 할테니 예술가들은 그 생각을 기술적으로 표현만 하라고 한다.
보라. 저들은 교사들에게 정해진 내용, 주어진 내용이나 기계적으로 가르치고 그 결과를 기계적인 일제고사로 평가받으라고 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각은 계획은 자기들이 짤테니 천한 백성 따위는 그냥 시키는대로 살아라 한다. 이건 마치 고대 노예주와 같은 발상이 아닌가? 더 기가 막힌 것은 고대 노예주들은 나름대로 고결한 지식인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과 계획을 대신 걸머지겠다고 나설만큼 유식하지도 못하다.

그러니 나는 정부에게, 그리고 여권에게 간곡히 청한다. 혼자 생각하지 말고 국민과 함께 생각하라고. 당신들은 유별나게 똑똑하지도 유식하지도 않으며 국민들의 뭉친 지혜가 그대들을 능가할것이니 귀를 열고 말을 들으라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며 몽둥이로 누를 것이 아니라 논리를 들어 정식으로 반박하라고. 한 마디로 제발 선진화 좀 되라고.

그럴때 국민들은 자신들이 사람이며 존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존엄한 국민들의 지도자가 될때 노예들의 주인이 되는 것 보다 한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유명한 비유도 있지 않은가? 그대들이 국민들의 지위를 하찮게 만들면 만들수록, 그대들은 하찮은 국민들의 일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국민을 높이는 길에 그대들을 높이는 길이 있으다. 그 길은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 중도,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정책은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반대하는 정책은 재고하는데 있다.

이 정도의 온건한 말 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정부라면 부득불 나는 내가 짐승이 될 수 없기에 그대들을 짐승으로 볼 것이다.

-여기까지는 블로거로서의 시국선언이고, 며칠 뒤에는 교사로서의 시국 선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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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6/28 00:17 |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 | 트랙백(1) | 덧글(0)

사회과 교육과정에 대한 간단한 비판(정치 영역)

그 동안 제가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거의 포스팅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째 새 포스팅이 없는데도 늘 100회 이상의 히트수가 나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은 그 동안 했던 일들의 작은 결실중 하나를 공개합니다. 사실 저는 요즘 기존의 제도권 교과서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렸습니다. 그건 그저 저의 물질적 기반을 위해 해 둘 뿐입니다(돈벌이의 어려운 표현^^) 저의 실제 꿈은 제도권 교과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도권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교조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기를 늘 기다려 왔지만, 전교조 기다리다 내가 늙어 죽겠습니다. 그래서 전교조는 저 뒤에 남아 있으라 하고 뜻 맡는 몇몇 분들과 먼저 튀어 나갑니다.

1. 정 치

 

1.1. 제도권 교육과정 분석과 문제제기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정치’ 과목을 1)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2)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의 원리를 파악하며, 3) 정치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개설된 과목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결국 “정치현상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정치현상에 대한 고찰(탐구)→ 정보 획득, 탐구 능력 및 의사결정 능력 함양→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 시민의 태도.” 로 요약되며, 능동적 참여의 태도는 명백히 종속변인이며 정치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인지영역이 독립변인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지식? 다음의 표를 보면 정치학의 개론서적 지식과 정치현상에 대한 정보습득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구성표를 보면 마치 이러한 내용들이 투입되면 민주시민으로서 능동적 참여의 태도가 산출될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여기에서 우리의 두 가지 문제의식이 출발한다.

영 역

내용 요소

민주 정치의 발전

정치의 의미와 기능/ 정치적 권위와 정통성/ 민주 정치의 발전 과정 민주주의의 이념과 유형/ 정치 문화와 정치 사회화/우리나라 민주 정치의 특성과 과제

국민의 권리와 의무

헌법의 정치적 의의/ 국민 주권과 입헌주의의 원리/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원리/ 국민의 정치적 권리의 내용과 한계/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적 의무/국민 주권 실현의 과제

국가의 조직과 통치

국가와 정부/우리나라의 정부 형태/국회와 입법부/대통령과 행정부/법원과 사법부/민주주의와 지방 자치의 발전 과제

정치 과정과 참여

정치 과정/정치 참여의 의의와 유형/이익 집단과 시민 단체의 정치 참여/정당과 정당 정치/선거와 투표/여론/우리나라 정치 참여의 현실과 과제

국제 사회와 정치

국제 사회의 특성과 변화/국제 사회의 행위 주체/국제 사회의 협력과 갈등 /국제 사회의 여러 문제/우리나라의 외교 정책과 과제/민족 통일의 과제

 

Q1 여기에 투입되는 지식과 정보는 과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의 태도를 길러낼 수 있는 원재료로서 정당한 것들인가?

 

어떤 지식과 정보도 일의적인 상태로 투입될 경우에는 능동적 참여가 아니라 순응적 태도만을 만들 뿐이다. 특히 정치학에서 사용된 개념들은 일의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이것들을 철저히 일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주권 같은 매우 다의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은 교묘하게 선거절차 속으로 축소되고 고정되고 있다. 이것은 교묘한 이데올로기 장치로 보아야 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학생들은 정치를 일의적 개념들로 구성된 객관물로 바라보게 된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객관물에 대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에 거스르지 않는 것 뿐이다.

 

Q2 보다 근본적으로 능동적 참여 경험(간접적인 경험이라도) 없이 인지적인 조작만으로 민주시민의 태도가 길러질 수 있는가?

  

결국 이런 상태에서 학생들이 습득하게 될 참여 방법은 법에 호소하는 것, 그리고 선거에 참여하거나 합법적인 단체에 가입하고 진정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는다. 정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은 역동적인 참여는 애초에 배제되고 있다.

 

Q3. 정치의 주체는 시민 뿐인가?

 

이건 보다 심각한 물음이다. 지금 이 교육과정은 정치의 주체로서 사회계약의 테두리 내에 있는 사람들만을 상정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홉스 -로크- 루소의 전통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는 사회계약 외부의 사람들을 ‘다중’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계약에서 배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 교과서의 ‘시민’이라는 말 속에는 다분히 질서와 계약에 순응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을 거부하여 스스로 외부자가 되거나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그렇다면 어떤 권리의 주체도 아닌가? 아감벤, 랑시에르 등은 오히려 그들에게서 정치적인 것을 찾고 있지 않은가?

 

Q4. 국가는 갈등 없이 움직이는 시계장치인가?

 

저 교과서에서 상정하고 있는 정치 모델에서 국가기구는 매우 중립적이다. 어떤 것이 투입되느냐에 따라 산출이 결정되며 국가 자체는 순수 객관적 기계장치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가가 그렇게 보이는 것 자체가 실상은 갈등속의 역동적 균형이 아닐까? 그리고 이 갈등 속에서 국가 기구는 그야말로 통치기구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1.2. 무엇을 할 것인가?

 

기존의 교과서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와 내용범위를 담고 있는 형태이면서, 그 구성과 내용을 다음과 같이 대체하는 새로운 교과서를 개발한다. 이 교과서는 내신용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정치학의 최신동향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①정치적(Political)인 것의 실제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의 정치교육과정은 너무도 정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시끄러운 것이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정치는 노동, 작업, 행위 중 행위의 차원이며, 행위는 기본적으로 차이, 다양성의 드러냄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분출하는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찾아가는 역동적 과정으로서 정치. 이렇게 바라 볼 때 정치와 행정의 차이가 포착된다.

 

②민주주의를 구성적(Constructive)인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도록 한다.

민주주의는 어떤 제도나 법규로 환원될 수 없다. 현행 교과서는 민주주의를 몇몇 특정한 선거제도나 대의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일종의 이념형이다. 민주주의를 어떤 제도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규범적 차원으로 파악함으로써 여러 나라의 정치, 혹은 한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민주화의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③독재와 전체주의를 가르치자.

현재 교과서는 독재, 전체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만큼이나 독재, 전체주의, 파시즘의 이념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부분이 민주적이며 어떤 부분이 전체주의적인지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④정치 기구 등에 대한 정보는 직간접적인 경험 속에서 터득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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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정변증법 | 2009/06/18 23:12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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